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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씨가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문화생산자 프로젝트 "꿈꾸는 20대, 심심하지 않니?"'(연세대 문화인류학과·<오마이뉴스> 주관)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문화생산자 프로젝트 "꿈꾸는 20대, 심심하지 않니?"'(연세대 문화인류학과·<오마이뉴스> 주관)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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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산자'를 꿈꾸는 20대 대학생 60여 명이 40대의 소설가 공지영과 영화감독 변영주에게 길을 물었다. 25일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연세대 종합관 강당에서 열린 '문화생산자 프로젝트'에서였다.

이날 강의는 질문을 적은 포스트잇을 강연자가 읽고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포스트잇에는 작가나 영화감독이 되는 방법을 묻는 진로상담부터 "매일 정해진 양의 글을 쓰나요", "알코올은 독일까요 약일까요" 등의 궁금증까지 다양한 질문이 담겨 있었다.

공지영씨와 변영주씨는 각각 2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두 "문화생산자가 되려면 소비부터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책을 읽어 '제껴라'"고 주문했다. 또한 둘 다 "20대부터 데뷔하겠다고 서두르지 마라, 인생은 길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에서 도태될까봐 두려워서 성급하게 인생계획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장의 특성을 살려 Q&A 형식으로 강의를 재구성해 정리해보았다.

"이해 안 돼도 취향 달라도, 일단 읽어 '제껴라'"

Q. 작가/영화감독이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
공지영 "책을 무지무지무지 많이 읽어라. 대학시절 외에는 사는 데 효용성이 없는 책을 마음껏 읽을 때가 잘 없다. 나는 하루에 두세 권씩 읽었다. 도서관에서 고전을 5권 빌렸는데 이틀에 한 번씩 새로 대출받았다.

서른다섯 살 이후에 데뷔한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책 읽고 관찰하다 보면 '삘'이 온다. 책 몇 권 들고 산에 (글 쓰러) 올라가는 것은 폐병약이 없어서 20대에 요절하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오래 산다. 안 쓰고는 못 살겠을 때에 회사 그만둬라. '삘'이 안 오면? 계속 돈 열심히 벌면서 책 읽으면 된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소설가 공지영씨.
 소설가 공지영씨.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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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대학생들은 꿈이 우리 때보다 구체적이어서 1학년 때부터 감독이 되겠다고 하는데, 뭘 만들고 싶은지는 모른다. 일단 (문화생산물을) 폭식해야 한다. 특히 문학을 많이 읽어라. 문학은 당대의 가장 중요한 고민을 담고 있다. 예술을 창작하든 아니든 읽어라.

여러분 때는 취향이라는 게 없다. 지금은 (취향 따지지 말고) 먹어 '제껴라'. 젊은이들 개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청소년영화제 출품작은 취향이 거의 비슷하다. 신입생 OT에서 조별 장기자랑할 때 보안유지하면서 만드는데 결국 똑같은 공연 하지 않나? 똑같은 것(문화생산물)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요즘 20대는 얼른 해내지 않으면 도태될 것처럼 생각한다. 나는 재작년에 마흔살이 됐는데, (60세까지 산다고 쳐도) 아직 20년 더 살아야 한다. 벌써 인생 건설해 버리면 여러분은 40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이제 막 어른이 됐는데, 어른으로서 계획이 다 세워진 것만큼 재미없는 인생이 있을까."

변영주 감독.
 변영주 감독.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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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최신작이 가장 예쁘고, 변영주는 최신작이 가장 부끄럽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공지영 "초등학교 5학년 막내가 형제 중에 누가 젤 예쁜지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인데, 나는 바람둥이처럼 마지막에 쓴 책이 가장 예쁘다."

변영주 "늘 지금 만드는 작품에 애착이 가고 바로 이전 작품이 가장 부끄럽다. 만들 때는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못 견디니까. 만들고 4개월이 되면 슬슬 슬퍼지고 6개월이 되면 나 같은 애가 왜 영화를 만들까 싶다가 8개월 되면 한 작품 더 해보고 싶어진다."

Q. 공지영씨는 안티팬도 많다고 들었다.
공지영 "작가 중에 안티 제일 많을 것 같다. (언론에서) 제 이혼경력이 계속 따라붙는다. 편향적이냐면, 남성 작가 중에서도 성이 다른 아이 키우거나 이혼 두세 번 한 사람 많다. 그런데 공지영의 이혼경력만 말한다. 상황이 이러니까 다른 여성 작가는 밝히지도 못한다. 나머지 안티는 그래도 고맙다. 내 책을 읽고 (비판글을) 쓰니까."

Q. <발레교습소>를 찍은 윤계상·이준기는 어떤 연기자였나.
변영주 "그때 고3을 연기할 배우가 딱 2명, 원빈과 류승범밖에 없었다. 장동건이나 송강호는 무리잖아? 그런데 둘 다 거절해서 신인으로 가보기로 했고 그 범주에 윤계상, 이준기가 있었다. 청춘영화가 원래 신인을 발굴하는 영화다. 준기는 나한테 혼이 많이 나서 날 미워할 거다. 나중에 후회도 했다. 그렇게 잘될 줄 알았다면(웃음)."

"우리를 빨아 먹어라, 그리고 버려라"

Q. 2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작가 공지영씨
 작가 공지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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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첫 번째, 코피 터지게 연애해라. 잠도 안 오고 밥도 못 먹어서 코피 나는 연애는 20대 때밖에 못 한다. 지금 안하면 영영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 두 번째, 대학 도서관의 책을 다 읽겠다고 도전해 봐라. 읽었을 때 이해를 못해도 지식은 몸 어딘가에 쌓인다. 세 번째, 혼자서 최소한 열흘 이상 여행을 가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여행이 주는 고독을 만끽할 때가 많지 않은데 그때가 20대다."

변영주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라. '그냥'이라는 대답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남들에게 비판받거나 틀린 얘기해서 쪽팔리는 것을 겁내지 마라. 우리 세대를 따라오려고 하지 말고, 공지영·진중권·변영주 다 빨아먹어라. 그리고는 의심해보고 내버려라. 싫어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보라. 젊었을 때 쿨한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면서 촌스럽게 살아라."

Q. 진정한 위로는 무엇인가.
공지영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 어린 시절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때 누군가 '열흘만 있으면 잊힐 거야, 괜찮아' 그랬다면…. 그런데 여러분 주변에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책이다. 필요할 때 펼쳐보면 된다."

Q.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지영 "'사랑하는 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도 동물이어서 '영역'이 필요하다. 나도 애정을 가장해서 대학생인 큰딸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 그게 너무 싫었다. 여러분은 부모와 (서로 지킬 약속의) 선을 계약 맺어라. 마지막 순간에 엄마가 이해를 못하면? (자신의 뜻대로 할 수밖에) 어쩔 수 없다. 대신 책임을 져야 한다."

"가족은 '사랑하는 남'... 부모와 계약 맺어라"

Q. 정치에 관심 없는 요즘 젊은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변영주 감독.
 변영주 감독.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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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대학생이 안 나가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안 나가도 괜찮다. 집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을 의심하는 것이 정치다. 왜 글로벌리더가 돼야 하는지, 왜 부모를 존경해야 하는지 사소한 것부터 의심하라."

Q. 공지영씨는 <우행시>를 쓰면서 교도소에 많이 다녔는데, 느낀 점은?
공지영 "사형제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짜 피해자를 생각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작 유가족 지원하는 활동은 (정부가 아니라) 사형제 폐지운동하는 사람들이 하고 있다. 연쇄살인 일어나서 폴리스라인 쳐진 채로 집에 피딱지가 앉았는데, 나중에 유가족이 직접 청소해야 한다. 경찰이 초기에 범인 못 잡아서 연쇄살인 못 막았으면, 치안 제대로 못했다고 보상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도소 다니면서 사람은 변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정말 인간이 안 변하는 존재라면, 소년원 들어갈 때 무기징역 선고해야 한다. 싹수 노란 것 아니냐.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연쇄살인범도 더 많아진다."

Q. 여성주의나 여성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공지영 "약자 순대로 배려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기본적으로 여성이 신체적으로나 출산으로 인해 갖는 핸디캡을 배려해야 한다."

변영주 "여성부 폐지냐 존속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여성부 없어도 된다고 본다. 장관이 여성학 공부 하셔야 할 분인데…. 중요한 것은 왜 여성부가 필요한지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보라."


태그:#공지영, #변영주,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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