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뉴타운으로 유명한 은평구에 삽니다. 2005년부터 살기 시작했으니 이제 5년째 되어가네요. 태어난 곳은 봉천동입니다. 그곳에서 이십여 년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회사와 가까운 용산에 첫 살림을 차렸습니다. 반지하 전세였죠.

 

반지하치고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창문 밖으로 지나는 사람들 발을 늘 쳐다봐야 한다는 게 참 싫었습니다. 길가로 난 창문은 제대로 열어본 적도 없어요.

 

 

그곳을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창문도 맘대로 열고, 낮에 불 안 켜도 되는 그런 2층 집을 꿈꿨죠. 그래서 과감하게 서울에 살면서도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은평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 둥지를 틀 때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진 돈으로 2층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북한산과 천이 많은 좋은 환경을 갖췄다는 것 때문에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은평구로 이사 와서는 가장 먼저 자전거를 샀습니다. 좋은 환경을 맘껏 누리기 위한 첫 출발이었죠. 자전거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많이 다녔는데, 아주 크게 공사하는 풍경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은평 뉴타운'은 말로만 들었지 아는 건 없었어요. 신나게 자전거를 타다가 저렇게 먼지 가득한 길을 만났을 때, 그저 기분이 참 나빴을 뿐입니다.

 

"뉴타운이란 게, 이렇게 큰 공사를 말하는 거구나! 거 참 보기 안 좋네, 저러다 산 다 깎아먹는 거 아냐?" 이런 정도 생각을 하며 가도가도 끝이 없는 저 길을 벗어나려고 마구 내달렸죠.

 

나를 감동시킨 아름다운 마을도 결국에는...

 

최지우랑 조한선이 주연으로 나온  <연리지>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거기에 배경으로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한양주택>이죠. 영화 배경이었다니까 혹 해서는 좀 멀긴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습니다. 2006년 일이네요.

 

직접 보니 와~ 마을이 정말 예쁘더군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감탄에 빠져 있던 저를 일깨운 건 여기저기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었습니다. '거주의 자유권을 보장하라', '물건지 조사를 거부한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한양주택도 '재개발' 광풍에 휩싸인 곳이라는 것을. 그곳에 살지도 않으면서 왜 그렇게 안타깝던지요.

 

나를 감동시킨 아름다운 마을, <한양주택>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2007년 모습입니다. 한양주택 주민들은 개발 무효소송이 기각되고, 문화재청에 요청한 근대문화재등록 재심청구도 무산되자 어쩔 수 없이 협의를 했다고 합니다. 가본 지가 좀 돼서 지금은 저 공간이 어찌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잠시 지나친 제 마음도 홀딱 빼앗았던 저 마을, 오래 살았던 주민들이 떠날 때 마음이 참 아팠을 거예요.

 

추억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2009년 이야기입니다. 한 달쯤 전에 집에서 가까운 백련산에 갔습니다. 낮은 곳이라 산책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집을 나섰는데 제 눈앞을 떡 하니 가로막은 건, '경축-응암 8구역 관리처분 계획인가'라는 현수막이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됐습니다. 주변이 온통 난장판이고 이주대책, 투쟁 어쩌고 하는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왜 '경축'이라고 한 건지 말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재개발'에 대해 워낙 아는 게 없었거든요. 그나마 주워들은 건 있어서, '경축' 현수막을 건 쪽이 아무래도 눈에 거슬리기는 했습니다. 오랜만에 가본 백련산 근처, 갑자기 달라진 풍경에 즐거운 마음은 잔뜩 무거워졌고요.

 

은평에 사는 덕 톡톡히 보느라고 근처 산에 열심히 다니는 저, 얼마 뒤에는 '산 속'에서 놀라운 장면을 만났습니다. 북한산성 쪽이었는데, 산에 들어서자마자 저런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습니다.

 

 

산에서 저런 모습 보기는 또 처음이어서요. 내용을 보니 북한산성 상가세입자 분들이 철거에 대항하는 중인 듯했어요. 어떤 일인지 딱히 물어볼 분도 없고 해서, 신기하고 이상한 마음에 사진만 찍어 놓았습니다. 저 현수막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요새 이상하네, 왜 가는 곳마다 철거가 어쩌고, 재개발이 어쩌고 이런 풍경들 뿐이지? 이것도 다 뉴타운하고 관련된 건가?"

 

아슬아슬하게 지은 집들, 이런 집들은 방치해 두고...

 

한번은 무척 색다른 풍경도 보았습니다. 또한 최근 일인데요.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마을을 지났습니다. 처음엔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재밌어서 여기저기 써 있는 글들을 보았죠. 현수막이랑 글 내용만 보았을 땐, 이곳 주민들은 '이주'를 원하는 것 같지요. '철거 반대' 이런 현수막만 보다가, '이주가 좋다'는 글을 보니 헷갈리기 시작했죠.

 

고개를 들어 마을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아슬아슬하게 지은 집들이 많더군요. 잘은 모르지만, 이런 집들이야말로 다시 지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요즘 내가 가는 곳마다 왜 이러나, 다시금 곱씹으며 길을 걷는데 그 마을에서 조금 내려가니, 이게 웬 걸요?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더군요.

 

'아! 개미마을은 뭔가 수익이 안 나서 개발이 필요한데도 오히려 방치하고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몇 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동네 풍경이 그렇게 다른 까닭이 무엇일지, 저로선 알 도리가 없어서요.

 

요즘 본 풍경들 때문일까요,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참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용산은 제가 회사 생활이랑 결혼 생활까지 합쳐 5년 정도 살기도 했고, 지금은 시댁 식구 몇 분이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설 명절 날, 시댁에 다녀오면서 사망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가서 추모도 드릴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 저는 '뉴타운'으로 최고 명성을 날리는 은평에 살고 있는, 주거세입자잖아요. 제 사는 모양새를 보자니, 사는 동안 내 집을 마련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구요. 때마침 전세 계약이 끝나는 때도 다가와서, 계약할 때 딱 한 번 얼굴을 본 집주인이 전화를 다 주셨더군요. 어찌할 거냐고. 집 주인은 여기 안 살고, 경기도 어느 비싼 동네에 살고 있다는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어요. 말 안 해도 뻔하겠죠? 제가 사는 다세대주택은 집주인한테 좋은 말로, 부동산 재테크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라는 사실요.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지금 사는 곳이 저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요. 은평 곳곳에 친한 분들도 많이 생겼구요. 그 분들이랑 촛불집회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산도 가고, 집에도 놀러가고 하면서 '공동체'까지는 아녀도 그 비슷한 기분을 잔뜩 느끼고 있거든요. 처음엔 머쓱한 사이였지만 그들은 어느새 내 삶에서 참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답니다.

 

갑자기 이곳에서 강제로 떠날 일이 혹시라도 생긴다면, 정든 사람들이랑 헤어진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요. 북한산 자락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만약 재개발이 시작된다면 제가 사는 전세 값으론 여기서 맘에 드는 집 찾기란 진짜 어렵겠다는 걸 이젠 알겠거든요.

 

"강제퇴거는 인권에 대한 중대한 위반"

 

그래서 미리 준비도 할 겸, 더불어 용산 사건을 두고 '상식'으로만 보아도 틀린 게 분명해 보이는 내용을 떠드는 정부나 언론들한테 제대로 반박해보고 싶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또한 도대체 재개발이 뭐고, 철거는 뭐고, 경비용역은 뭐고, 관리처분은 뭔지, 알아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전에는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나도 언젠간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슬금슬금 밀려와서요.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를 먼저 봤습니다. 법을 말하는 부분들이 좀 어렵긴 해도  얇은 책이라 여러 번 들춰보니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하나를 알면 둘이 궁금해지는 게 '스스로 공부'가 갖는 힘인가 봐요. 책과 인터넷을 두루 살피며 이것저것 궁금한 내용을 계속 살펴보는 중입니다. 짧은 공부지만, '개발 사업은 재산권 행사라는 측면에서 사업의 효율성과 비용만을 따질 뿐, 세입자대책이나 주거권 보장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개발사업의 문제는 사업 자체를 넘어서 지역과 빈곤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세입자대책에 대한 요구는 그 시작일 뿐, 다만 너무나 절박하고 힘겨운, 그래서 소중한 시작이다.'

 

책에서 본 이 문구는 글자 그대로 너무 절박해서 용산 철거민들이 그렇게 농성을 할 수밖에 없던 심정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그 투쟁이 얼마나 정당한 생존권 투쟁이었는지도.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강제퇴거는 인권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선언했다는 내용까지 보자면 그 깨달음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며칠 전 열린 진보신당 주거대책 토론회에서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 거주자·주민을 위한 정책이 되도록 100% 공영개발 ▲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법적 권리 부여 ▲ 주거기본법 제정 등 사람 중심의 법제도 정비를 근본적인 주거대책 방향으로 제안했습니다. 이 내용들도 어느새 부드럽게 제 것으로 소화가 됩니다.

 

오늘 만날 분이 있어서, 용산 살인 철거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있는 순천향 병원에 갔습니다. 순천향 병원은 저한테 참 특별한 곳입니다. 13년 전 아버지가 암 말기 선고를 받고 끝내 장례까지 치른 곳이거든요.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처음 가보는 길이었습니다. 한남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제 마음은 마구 흔들렸습니다. 평소에 '순천향 병원'은 이름도 안 들으려고 애써온 저였거든요. 이름만으로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나도 언젠가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순천향 병원을 찾아 걸어가는데 어쩌면 길이 그대로더군요. 벌써 십년도 훌쩍 넘은지라 생각 안날 줄 알았는데, 소복 입고 울며불며 걸었던 그 길들이 차츰차츰 떠오르는 거예요. 병원도 그때랑 많이 다르지 않았어요. 경찰이랑 전경차가 떡 하니 버티고 있어서 기분이 좀 나빴지만, 순천향 병원 여기저기서 아버지의 혼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아버지의 육신이 명을 다한 공간이라 그랬을 테죠.

 

병원에서 볼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아버지 생각에 마음 곳곳이 뻐근하기도 했고, 드문드문 검은 옷 입은 유가족 분들을 보면서는 13년 전, 그것도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아파하는 내 모습이 배부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런저런 마음들 사이에서 허우적대며 병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부동산 계급사회>를 꺼내 읽었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용산 거주, 은평 뉴타운이라는 재개발, 세입자, 아버지 장례를 치른 순천향 병원….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은 이렇게 여러 면에서 내 삶과 교집합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저만 갖는 교집합은 아닐 거예요. <부동산 계급사회>를 보면 우리 나라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841만 가구가 집 없이 전세나 월세, 사글셋방에 살고 있다고 나오거든요.

 

다만 조금 더 많은 교집합을 갖고 있는 저인지라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전해주는 충고가 더 깊이 다가오는 중입니다. "당신도 언젠가 삶이 담기는 그릇이자 터전인 집을 빼앗기는 철거민이 될 수 있다"는, 겁마저 들게 만드는 충고 말이죠.

 

하지만 마냥 겁만 주는 건 아닙니다. 가야 할 길도 조금씩 보여 주고 있으니까요. 어떤 길이냐고요?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에서 엿본 길 몇 개만 살짝 알려드릴게요. 나머지 길은 앞으로 함께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개발이 필요해서건 불필요해서건 지역운동이 탄탄히 만들어지는 것이 개발 사업 대응의 관건이다. 마을이 변하지 않기 위해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기 위해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 주거권이나 개발에 한정되지 않은 다양한 활동들, 주민들 일상과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활동들, 인권의 실현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활동들 등 이미 당신이 하고 있는 바로 그 활동이 개발 사업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완전한 정답은 없으며 모든 도전이 답이다. 다만 도전이 없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태그:#용산철거민, #은평뉴타운, #재개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