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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것이 강화도다
▲ 영종도에서 바라본 강화도 저 멀리 보이는 것이 강화도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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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짧아진 2008년의 가을. 그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그냥 두고 보기 어려워 길을 나섰다. 비록 주말마다 잡혀있는 결혼식에 시간은 여의치 않았으나 그렇다고 이 찬란한 하늘을 두고 어찌 방바닥만 굴러다닐쏘냐. 어디론가 뜰 수밖에.

인천에서 있던 결혼식을 끝내고 친구와 함께 향한 곳은 영종도였다. 평소 공항이다, 을왕리다 해서 심심치 않게 들렀던 영종도였지만, 이번에는 영종도에만 머물지 않고 배를 타고 신도나 무위도, 실미도를 가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에서 내딛었던 발걸음이었다. 이렇게 날이 좋으니 바다와 하늘 모두 모두 볼 수 있는 섬이 제격 아니겠는가.

영종대교를 건너 도착한 영종도 삼목 선착장. 그곳에는 시도와 신도·모도 등으로 향하는 배가 있었다. 큼지막한 지도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기 위해 그 섬에 지어진 드라마 <풀 하우스>, <천국의 계단> 등의 세트장을 언급하고 있었지만 별 효과는 없어 보였다. 이미 끝난 드라마 세트장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문경 세트장처럼 계속해서 사극에 사용되거나, 실미도처럼 세트장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모를까.

그러나 섬을 가자고 했던 나의 호기를 가장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건 역시 돈이었다. 개인당 3600원에 자가용을 타고 가려면 2만 원 별도. 강화도의 석모도 행 배 삯 등을 생각해보면 훨씬 비싼 돈이었다. 게다가 석모도는 보문사라는 유서 깊은 볼거리라도 있다지만 이곳은 그것마저 불확실한 상태, 또다시 포기하고 말았다. 다행히 친구가 을왕리도 안 가봤다지 않은가.

많은 이들의 추억이 서린 그곳
▲ 을왕리 해수욕장 많은 이들의 추억이 서린 그곳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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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몰아 을왕리로 향했다. 예전에 갈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던 그 길이 이미 반질반질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부쩍 늘어난 해수욕장 주변의 모텔과 식당들. 어느 지역이 유명세를 타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버리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장면이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호젓함은 분명 우리가 잃어야 할 기회비용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도착한 을왕리 해수욕장. 차를 대기 위해 해변을 기웃거리니 여기저기서 삐끼들이 나와 연신 굽실거리며 자기네들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코자 했다. 정신없는 손짓과 정신없는 소리들. 물론 그 모든 것이 저 수많은 식당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어지는 촌극일 테지만, 그와 같은 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가슴 아플 뿐이었다.  

비록 음식점의 땅은 아니었지만 영업 중인 식당 앞에 버젓이 차를 세우기도 민망해 저 멀리 있는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해변으로 걸어갔다. 여느 바닷가와 다름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밀물 때인지 갯벌은 보이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파도 앞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낚시를 하던 그곳
▲ 길 아닌 길 많은 이들이 낚시를 하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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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낚는 그들
▲ 강태공 세월을 낚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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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에 들를 때면 매번 해수욕장 오른편, 둑이 바닷물에 잠기는 곳까지 걸었었는데 이번에는 해수욕장 왼편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의 끝에 어느 음식점이 있는지 노면은 온통 그 식당에 대한 화살표로 얼룩덜룩해 있었다. 아까 주차할 때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공간을 사적소유인양 주장하는 많은 문구들. 아직 우리 사회가 공과 사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탓이려니.

그 길가에는 유독 낚싯대를 들고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소위 똥물로 불리는 인천 앞바다에 무슨 고기가 있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묵묵히 낚싯대를 세워 놓은 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하는 이 시대에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들. 아마도 이와 같은 강태공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한층 여유로워질 것이다.

길 끝의 허름한 음식점을 확인한 뒤 발걸음을 되돌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물은 더 들어와 있었고, 길의 일부는 좀 센 파도가 칠 때마다 물 속으로 잠겼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파도에 발을 적셔야 했는데 사람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영종도 바닷가
▲ 영종도의 선녀바위 아름다운 영종도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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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
▲ 영종도의 가을 가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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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과 노을
▲ 영종도의 노을 억새밭과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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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들어가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 을왕리를 나와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영종도 해변을 따라 차를 몰다가 아름다운 곳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하기를 몇 번째, 어느덧 서서히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서해 영종도니까 으레 해가 지려니 했지만 날 맑은 날 영종도에서 바라본 노을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그러나 노을보다도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시대의 거대한 역사, 인천대교였다. 두 달 전 송도 하늘에서 봤을 때도 그 거대함에 입이 떡 벌어졌건만, 영종도에서 바라본 인천대교 역시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워낙 날씨가 맑은 탓에 잘 보이는 송도국제신도시와 어울러져 인천대교는 책에서나 보아오던 미래도시를 연상케 했다.

영종도와 저 멀리 인천 송도를 잇는 다리
▲ 인천대교 영종도와 저 멀리 인천 송도를 잇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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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도로를 따라 얼마나 갔을까. 영종도 구선착장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아마도 영종도가 다리로 연결된 이후 그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 쓸쓸한 항구가 거기 있겠거니 추측할 뿐이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는 쇠락한 풍요로움이 화석이 되어 나를 맞아줄 것이다.

그러나 웬걸, 영종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비록 항구 옆의 번화했을 법한 시장은 쇠락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항구는 여전히 적지 않은 차량과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인천월미도와 영종도를 오고가는 배를 이용하려는 인파인가?

영종도가 섬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인
▲ 월미도 - 영종도 간 선박 영종도가 섬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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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 보니 영종도 선착장에서 인천 월미도까지 배타고 15~20분, 배 삯이 1500원이라 하였다. 월미도에서 차를 몰고 영종대교를 건너려면 최소한 1시간 30분에 통행료 3600원이니 사람이 붐빌 수밖에.

어쨌든 영종도의 오래된 선착장이 아직 죽지 않고 활기차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본래의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꺼울 뿐이었다. 역사의 단절이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지 않는가. 그리고 어쩌면 저 배는 단순히 인천과 영종도를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영종도가 섬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한다. 끝까지 보지 못하는 바다 위 붉은 태양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리고 가는 길에 마주친 영종도와 어울리지 않은 아파트 건설 현장이 생뚱맞았지만 어쨌든 난 그렇게 차를 몰아갔다. 이제는 너무 변해버려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할 영종도를 옛 모습을 그려보며.

섬이라고 아파트 광풍을 빗겨 나갈수는 없다
▲ 생뚱맞은 아파트 섬이라고 아파트 광풍을 빗겨 나갈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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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영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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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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