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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만능주의 파산과 규제 풀린 신자유주의 종언이라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지금, 미국 정부 최후의 대책이라고 할 구제금융법안 발효를 분기점으로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경제 침체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연 7000억 달러 투입으로 1년 넘게 지속된 금융위기를 잠재우고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한국 정부는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미국식 모델을 여전히 밀어붙일 수 있겠는가. 새사연과 오마이뉴스는 공동기획을 통해 구제금융 법안 이후의 미국 경제를 짚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에서 제63차 IMF/WB 연차총회에 앞서 열린 G-20회의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 발언하고 있는 강만수 장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1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에서 제63차 IMF/WB 연차총회에 앞서 열린 G-20회의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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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장관의 워싱턴 현장 체험 효과

미국 금융위기나 우리 경제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상식선 이상의 낙관적인 전망을 가졌던 인물이 바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강 장관이 10월 13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차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위기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현장체험 결과가 10․19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이었다. 내친김에 부동산 거품 방지를 위한 마지막 안전핀이었던 대출규제를 사실상 풀어버리는 10․21 부동산 부양정책까지 발표했다. 미국 월가의 말투를 빌려 "선제적(Preemptive)이고, 확실한(Decisive), 그리고 충분한(Sufficient) 시장 안정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우리 정부가 마련한 정책들이다.

주요 내용은

① 외국은행으로부터 차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은행의 대외채무를 총 1000억 달러까지 3년간 지급보증하고(현재 국내은행 대외채무는 약 800억 달러),

② 은행들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미 지원 결정을 한 150억 달러 이외에) '외환보유고를 동원하여 300억 달러'를 직접 은행에 공급하며,

③ 원화 유동성마저 막혀버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융시장에서 환매조건부 채권(RP), 국채 직매입, 통안증권 중도상환을 통해 원화를 공급하고,

④ 3년 이상 가입한 장기보유 주식과 채권 펀드에 대해 소득 공제나 비과세 등 '세제 지원'으로 일반 펀드가입자의 손실보전을 해주며,

⑤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기업은행에게 정부가 보유한 주식, 채권 등 '1조 원 상당의 금액을 현물 출자'한다는 것이다.

주로 시장을 통해서 달러와 자금수급을 조절해왔던 이전의 방식과 비교해, 달러와 원화를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점은 워싱턴 방문 효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아울러 내년 경제성장률이 4퍼센트 이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해 눈높이도 상당히 낮아졌다.

미국조차 내던진 '시장 자기조정' 기대 못 버린 강만수 장관

사실 9월 접어들면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공황 국면으로 치달은 금융파국을 막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동안에, 한국의 쟁쟁한 보수 두뇌집단들은 첨단 금융시스템을 운영해온 미국이 이를 슬기롭게(?) 조기에 수습하리라고 믿고 낙관적인 전망으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과신해온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을 경험하고 그 이후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 다양한 대응기법과 장치들을 만들어왔던 미국이 설마 이 정도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겠는가 하는 기대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후진국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불투명하고 원시적인 대출을 마구잡이로 남발해 지금의 금융위기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가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은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미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믿는 동안, 미국 정부는 '정부의 관리 능력'이 아니라 '시장의 조정능력'을 믿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표면에 떠오르고 1년 가까이 미국이 한 것이라고는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오직 금리인하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것 뿐이었다. 지난 3월 14일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뒤늦게 공적자금 3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때만 해도 "시장에 맡기고 간섭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눌려 더 적극적인 예방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연이은 메릴린치, AIG보험이 무너지는 걸 목격하면서 서둘러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을 내놓았지만 그 때는 이미 상황이 손쓸 수 없이 악화된 뒤였다. 미국 정부는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보고서야 "시장이 자기통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인정했다. 시장 기능의 붕괴는 곧 미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 상실로, 그리고 한국 정부와 보수세력의 예측능력 상실로 전이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 방문을 하고 돌아온 강만수 장관이 의욕적으로 발표한 10·19 금융안정화 대책들은 시점을 놓치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위기 대응책을 다시 한 발 늦게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미국과 유럽이 이미 은행 부분 국유화까지 주저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는 신용경색에 몰린 은행들의 어떤 자구책도 담보하지 않고 자금을 풀어주는가 하면, 감세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시장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고와 국민세금을 쏟아 부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발상이다. 미국도 버린 '시장에 대한 신뢰'를 우리 정부는 버리지 못하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신자유주의적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보이지 않은 손이 안 보이는 것은 그것이 없기 때문"이라며 보이지 않는 손(시장)을 맹신하는 경향을 통박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할 시스템 구축이 절실

새사연은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가 극단적 신용경색과 금융공황으로, 그리고 한국의 외환위기로 현실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단 10퍼센트만 되어도 그 후과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대다수 서민들에게 최소 수 년 이상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당국자들의 표현대로 "선제적이고 확실하며 충분한 조치"를 시급히 실행해야만 한다. 하나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인 외부의 금융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국민경제를 살릴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밑으로부터 붕괴되어가는 내수기반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현재 우리 금융시장은 외국발 금융변동에 대한 어떤 완충기제도 없이 거의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밤사이 뉴욕증시가 폭락하면 바로 다음날 우리 증시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폭증하고, 환율이 치솟는 일이 몇 달째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투기세력마저 제한 없이 들어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국내외 자본이동에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어 환율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요동치고 있으며, 기업들이 도대체 수출입 대금결제 시점을 잡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는 150억 달러 이상을 시장에 풀어서 환율 폭등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 효과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정부의 외환대책은 환투기 세력과 시장에 '호구 잡힌' 모양새며, 외환보유고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급기야 외환 스왑시장 등에 150억 달러를 풀고 추가로 300억 달러를 은행에 직접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달러 거래는 막혀버렸다. 환율은 1300선 밑으로 내려올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동안에도 키코(KIKO)가입 수출중소기업들의 도산 위험은 더 높아지고 있고, 수입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하며, 외국인의 주식매도와 달러 송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외환시장의 극심한 불안정성이 시사하는 바는, 국내외의 경제 여건으로 볼 때 우리가 지금 외환시장의 완전한 개방과 제약 없는 자유변동환율제를 능동적으로 운영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에 의한 안정적인 조절기능이 상실된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림 1] 세계 각국의 환율제도 변동 추이
 [그림 1] 세계 각국의 환율제도 변동 추이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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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98년에 입법되고 1999년에 시행된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외환시장이 자유화되고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뀐 것은 외환위기로 인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 때문이지 내부적 여건 성숙에 따른 결과라 보기 어렵다. 그리고 현재 금융규모와 금융관리 능력이 우수한 나라들을 제외하고 외환시장 자유화와 완전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는 나라는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외국환거래법을 고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외환시장이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한 지금, 심각한 외부 금융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에 자금을 푸는 방식을 뛰어넘어 충격을 완충시킬 '시스템적 기제'는 필수적이다.

정부는 예를 들어 ① 칠레 등에서 이미 실시한 바 있는 외화가변예치제도와 같이, 일정 규모 이상의 단기 외화자금의 유출입에 대해 일정한 지연 또는 예치를 통해 급격한 외화유출입을 완화하는 방안, ② 주식시장의 사이드카 발동과 유사하게 일일 환율 변동폭을 일정한 범위로 묶어두는 조치를 일정기간 시행하는 방식, ③ 그리고 현행 외국환거래법에서 허용하는 재정부 장관의 권한을 최대화하여 시스템 차원에서 외환거래와 유출입이 안정화될 수 있는 조치 등을 다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외환시장 자유화가 대세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인데, 여기에 역행한다고 망설일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모든 것이 대전환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것이 대세이고 어떤 것이 스탠다드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어떤 심각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이다. 아이슬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외환위기가 터지는 국면이 아닌가.   

내수기반 붕괴 막는 '선제적 대응'만이 살 길

세계 경제위기의 소용돌이로부터 우리 경제를 살리는 가장 시급한 일이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할 시스템적 기제를 확보하는 것이라면, 이와 동시에 내수기반의 붕괴를 막고 장기적인 불황에 대비해 내수경제를 중심으로 내성을 키우는 일이 급하다. 이는 향후 세계 실물경기 침체 여파로 수출마저 한자릿수로 곤두박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강만수 장관은 우리 금융기관들이 미국과 달리 파생상품 부실도 미미하고 재무건전성도 좋아서 아직 위기 국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가 다른 것은 이것 뿐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내수기반 경제와, 수출 대기업과 단기수익 추구에 몰두한 거대 금융기업들로 양분된 경제이다. 이 두 경제는 사실상 별개의 세계를 형성해 상호 가치사슬 체계가 끊어진 지 오래다.

우리의 경우 미국의 GM과 같은 대기업이나 메릴린치와 같은 금융회사가 부도에 몰리고 있지는 않다. 600만 자영업의 몰락과 중소기업의 도산 위기는 11년 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심각한 국면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미국에 비해 크지 않더라도 내상은 곪아가고 있었다.

새사연은 그동안 미국발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동시에 한국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기반붕괴를 집요하게 이슈화시켜 왔다.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과 극심한 소비부진으로 매출실적에 타격을 입은 이들은 최근 금융위기로 자금조달 길마저 완전히 막혀버린 데다가, 이미 대출받는 자금의 이자 부담도 치솟고 있어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자영업과 중소기업들은 현재 사채 이외에 자금조달 길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이니, 적어도 이들에게 우리나라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부도난 거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던 정부가 10월 초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연장하거나 추가 대출을 해주도록 후선에서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고, 최근 기업은행에 1조 원 현물출자를 통해 자금을 확충해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우리·신한 3개 금융기관은 중소기업이 신보의 보증서를 갖고 가도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할 만큼 철저히 사익을 추구하는 일반 시중은행들에게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하는 것은 사실상 '지원 대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자금지원으로 시중은행들만 좋은 일 해주는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림 2] 2008년 시중금리 변동 추이 (* 자료: 한국은행)
 [그림 2] 2008년 시중금리 변동 추이 (* 자료: 한국은행)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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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국책은행으로 남아있는 기업은행이 그나마 대출을 해주고 있는 형편이다. 1조 원 자본확충으로는 턱없이 부족한데다가, 대출 조건이나 대출이자 부담에 대한 추가조치가 없는 한 고금리 상황에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구제금융과 공적자금 투입은 거대 금융기관이나 재벌 대기업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정부 자금을 직접 지원해주는 은행들에게는 해외자산 매각, 대주주 배당금 지급 일시 중지 등 강력한 상응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자영업과 중소기업을 위해 훨씬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구제금융과 공적자금을 기업은행을 경유해서, 또는 특별 기금관리기구를 만들어 직접적으로 자영업과 중소기업에게 지원해주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야 할 때다. 

동시에 자금 지원 시 일반 시중금리가 아닌 이보다 훨씬 낮은 정책금리를 적용함으로써 이자부담을 줄이고 기존 대출을 갈아탈 수 있는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지출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비용을 줄이는 방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두 가지, 피해야 할 세 가지

외부 금융충격이 이미 내부로 전달된 뒤에 은행 자금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외부 금융충격을 완충시킬 시스템을 신속히 마련하고, 동시에 자영업과 중소기업 기반 붕괴를 막기 위해 강력한 공적자금 투입을 시행하는 것이 현재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제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정부가 절대로 피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감세조치, 부동산 거품 확대, 금융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① 감세

정부는 이미 지난 9월 1일 법인세율을 5퍼센트 인하하여 약 9조 원의 세금을 감면하고 소득세 3조 6000억, 재산세 5000억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바 있고, 현재에도 이를 수정하지 않은 채 강행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감세를 통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금을 낮춘다고 개인소비나 설비투자가 당장 살아나기 어려운 시점… 섣부른 감세정책은 재정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소득세나 법인세는 한번 낮춰주면 재인상이 어려운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매일경제> 10월 22일)고 지적한 초교텐 국제통화연구원 이사장의 주장을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황당한 것은 정부가 감세정책을 고집하면서도 동시에 최근 경제위기 대처를 위해 상당히 많은 재정지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만수 장관은 "재정은 OECD 국가 중 건전하니까 감세정책과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수출 위축에 따른 것을 내수가 커버"해야 한다고 지난 10월 17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부터 성장률이 3퍼센트 초반을 넘나들고, 이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소득세와 재산세, 법인세 등이 늘어나지 않을 것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는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그 전제로 감세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향후 장기적인 국면을 감안할 때, 감세를 안 하고도 현재 국가 채무 300조 원을 넘는 추가적인 적자재정 편성을 해야 할 상황조차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 3] 주요 국가 GDP 대비 국가 채무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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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부동산 거품 확대

지금의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장본인이 미국 부동산 거품임을 모르는 이는 현재 없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06년을 정점으로 부동산 거품이 상당하며, 현재 거품이 빠지고 있다. 이미 전국 아파트 미분양 가구가 16만 채에 이르며 건설사들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연체율이 저축은행 기준으로 14퍼센트를 넘어섰고, 시중은행들 연체율도 급증하고 있다. 고정금리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10퍼센트를 넘어서서 기 대출자들의 가계 부담도 위험해지고 있다. 거품이 급격히 빠지지 않고 연착륙하도록 유도하면서 이미 엎질러진 과잉공급과 대출부담을 해소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른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우고 투기를 부활시키려는 우려스런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재건축 규제완화를 요지로 하는 부동산 부양대책을 지난 8월 21일 내놓은 데 이어 종부세를 완화하더니 10월 21일에는 사실상 대출규제를 풀어버리는 투기지역 해제를 다음 달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부동산 위기를 피하고 있는 것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통해 대출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 억제를 위한 최후의 안전핀이라고 할 대출규제를 수도권 중심으로 풀어버려 우리 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현재의 고금리 상태가 대출규제완화에 어떤 작용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일정 시점에서 은행들이 적극적인 대출영업을 강행할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강부자 정권의 10.21 조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1일 정부의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방안 대책에 대해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강부자 정권의 10.21 조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1일 정부의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및 구조조정방안 대책에 대해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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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금융 규제완화

전 세계적으로 자유시장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특히 금융에 대한 규제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유독 우리 정부만 지난 10월 13일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전격 발표하는 등 금융 규제완화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 정부가 이미 파산한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을 모델로 추진해온 '자본시장통합법' 역시 모델이 사라져버린 지금에도 우리 정부는 고수하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금융 규제완화를 보류하라는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정부는 '위기는 기회'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참에 우리 금융이 세계적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아 금융 규제완화와 금융혁신의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온다. 금융 선진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이미 파산한 투자은행 모델이었다. 잘못된 준비였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백번 맞는 말이지만 다른 나라들에게는 기회가 아니고 우리나라만 기회인가. 다른 나라들은 기회가 아니라서 금융규제를 검토하는 것인가.

그래도 굳이 금융 규제완화와 금융선진화를 하고 싶다면 현재의 금융혼란이 진정되고 여타 국가들에서 금융시스템이 재편되는 결과를 보면서 해도 늦지 않다. 고려대 박영철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개편이 어느 정도 추진되어 한국의 경쟁상대 투자은행의 형태와 기능의 윤곽이 잡히는 단계에서 제도 개편을 시도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박영철, "미국 금융위기와 한국의 대응", 2008/9/30). 이는 최소한 보수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보수여! 가치 체계를 뜯어 고쳐라

조순 전 부총리는 10월 16일 "정부가 은행 주식을 반(半)국유화 하는 경천동지할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등 지금 시기는 역사적인 시간"이라며 "더 많은 파장을 가져올 것이고 그 결과는 경제구조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에도 상당히 영향을 끼치는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주가와 환율변동에 어지러움을 느끼지만, 지금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보아도 경제사적으로 대변동의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동안의 우리 경제구조 변화를 보건데 경제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이 보수의 주장처럼 좌파정책을 펴왔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신자유주의 보수 경제노선 때문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정부 역시 실제로는 보수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 상황을 악화시켰다.

신자유주의와 결별해야 할 시점에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선 우리 역사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지금 한가하게 좌우파 이데올로기 논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권의 지지기반을 챙기고 있을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앞으로 수년 동안 나라와 국민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시는 11년 전의 외환위기와 이어진 국민의 고통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고통을 줄이고 생존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어떤 이데올로기도 어떤 정책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의 보수가 상식선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낡은 가치체계를 미련없이 버리는 것이 상식에 닿는 일이다.

"보수여! 시장을 너무 믿지 말아라. 시장을 믿으면 선제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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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http://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새사연 연구센터가 썼습니다.



태그:#10.19금융안정화대책, #10.21부동산대책,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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