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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을 안다고 얘기하지 말라. 그대가 안개를 아느냐? 비를 아느냐? 바람을 느꼈느냐? 그러하니 침묵하라. 중산간 들녘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씨를 뿌리고 거두며 뼈를 묻는 토박이 들뿐이다." - 김영갑 두모악갤러리에서

 

4년 전 두모악 갤러리 회상

 

2004년 8월 17일, 제주시 성산읍 삼달리 두모악 김영갑갤러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갤러리 뜨락은 빗물에 흠뻑 적셔 있었지요. 갤러리라기보다 시골 학교의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 났습니다. 

 

파란 잔디 대신 울퉁-불퉁-각양각색의 현무암덩어리로 모양새를 갖췄던 정원이었지요. 그 정원은 루게릭으로 투병하던 고 김영갑님이 손수 돌을 날라 쌓았던 흔적이었습니다. 그 흔적은 바로 삶의 욕구와 희망이었지요.

 

입구에 설치해 놓은 갤러리 간판은 아주 작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삼달 1리  길가에서 갤러리 입구를 찾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모자람이 운치는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요. 폼 나진 않았지만 자연 그대로가 묻어나는 순수라고나 할까요? 그게 아니었다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진작가에 대한 동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얀 교실은 작은 궁전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궁전 안은 갤러리라기보다도 휴식 공간 같았지요. 몇 평되지 않는 초등학교의 교실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제주들녘 미치광이의 꿈

 

당시 갤러리 전시관에서 처음 접한 것은 그가 카메라에 담아온 제주 중산간 오름의 아름다움이었지요. 사실 제주에서 20여년을 살았지만 제주의 중산간 풍경은 낯선 풍경이었거든요.

 

그런데 갤러리에 걸려있는 사진 몇 점은 그가 제주 들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가 제주들녘에 얼마나 미쳤었는지 그리고 그가 제주 오름에 얼마나 넋을 잃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난 지금도 제주의 안개와 제주의 바람, 제주의 비를 모르는데 말입니다.

 

당시 그 작은 갤러리에서 본 것은 얼굴 모양이 각기 다른 목각인형과 항아리 속에 피어나는 습지식물 그리고 갤러리 한 켠에 자라나는 잡초 같은 작가의 오기였지요. 불치병에서 탈출하고 싶은 오기 말입니다.

 

내가 만난 그는 뼈만 남은 시체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동그랗던 눈동자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앙상한 손가락으로 제주중산간 삼달리 마을 폐교학교에 돌멩이를 주워 정원을 만들었던 그였습니다. 그 정원은 희망이 꿈틀거렸지요.

 

쭈글쭈글 주름 잡힌 손으로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 주었지요. 그 책은 제주 섬 중산간 마을 오름 위에 나부끼는 안개와 비, 바람을 말했던 게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제주들녘을 미치광이처럼 떠돌던 사진작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그 이듬해인 2005년 9월, 그는 결국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두모악 정원에 한 줌의 재가 되었습니다.

 

올레꾼과 함께 걸었던 영혼의 올레

 

2008년 9월 27일 오후 2시 10분, 제주올레꾼과 함께 찾은 제주시 성산읍 삼달리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는 가을 햇빛이 가득했습니다. 올레꾼들 피곤한 다리로 갤러리 뜨락을 걸었습니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두모악은 '페허 속에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더군요.

 

예전과 달리 입구 갤러리 간판부터 달랐습니다. 현대적이 감각이 다소 폼은 났지만 왠지 어설프더군요. 차라리 4년 전 그 촌스럽던 간판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22km 올레9코스에 나선 올레꾼들 두모악 갤러리 뜨락에 깔린 파란 잔디를 밟았습니다. 영혼의 잔디였지요.

 

희망과 꿈틀거림 나무에 가려

 

그가 떨리는 손으로 쌓았던 돌무더기는 어디로 갔는지. 나는 궁금하여 뜨락을 거닐며 돌무더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4년 전 보았던 돌무더기는 감나무와 대추나무에 가려져 이젠 그 존재가 너무 작아보였습니다.

 

나그네들을 쉬게 하는 벤치에 올레꾼 부부가 앉아있더군요. 그렇듯 올래길에서 만난 두모악 갤러리는 나그네들의 쉼터로 변했습니다. 그의 아픔과 희망이 솟아나던 4년 전 뜨락은 온데간데 없더군요. 애석했습니다. 

 

"4년 만에 이렇게 수목이 자랄 수 있었다니!"

 

4년 전 내가 두모악에서 보았던 희망과 꿈틀거림이 한 마디로 정지된 느낌, 멈춤 상태 같았습니다.

 

"누가 그에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바쳤을까?"

 

하지만 유일하게 다시 피어나는 것이 있더군요. 감나무 아래 뜨락을 가득 메운 개모밀덩굴이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그에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바쳤을까요? 하지만 개모밀덩굴은 그의 분신이겠지요.

 

그는 죽은 후 한 줌의 재가 되어 두모악 갤러리 감나무 아래 묻혔으니 다시 야생화로 태어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루게릭병으로 제주를 사랑하다 가신 고 김영갑, 그 님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작지만 아름답고 위대했던 생명이 살아 있었던 당시의 작은 갤러리가 왜 그렇게 멈춤 상태로 느껴졌을까요?

 

 

"그가 우리 곁을 떠나갔기 때문이에요.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동행한 한 선생님의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의 영혼은 꽃이 되어 피어있는데, 갤러리는 왜 그리도 적막하고 허전했던지. 올레꾼과 함께 걸었던 올레9코스, 제주시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갤러리는 그저 영혼의 올레길이었습니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쉼 없이 셔터를 눌렀을 고 김영갑님의 영혼의 길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9월 27일 올레9코스 도보기행입니다.


태그:#제주올레,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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