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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9일 오전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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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시교육청은 결국 국제중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특성화중학교 지정 계획'이라는 이름이다. 그 보도자료 제목 바로 위에는 'Vision 2010 행복·감동·보람 주는 세계 일류 서울교육'이라는 문구가 써있는데, 나에게는  '강남 Vision 2010, 부자에게 행복·감동·보람 주는 서울교육청'으로 읽혔다.

무작위 공개추첨 야바위?

서울시교육청의 계획대로 한다면, 당장 오는 11월부터 대원국제중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에서 신입생을 각각 160명씩 선발하게 된다. 서울지역 초등학생만 응시할 수 있고, 2007년 서울지역 초등 5학년이 11만 4554명이었으므로, 단순하게 계산하면 경쟁률은 358 대 1 정도이다.

물론 분기별 수업료가 120만원이니, 1년 수업료는 480만원이다. 여기에 학교운영지원비나 급식비, 각종 학부모부담경비 등을 합하면 1년에 들어갈 돈이 1천만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성적도 좋아야 하지만, 자가용도 2대 이상 굴릴 정도의 경제적 조건도 필요하다.

더구나 선발 전형이 가관이다. 3단계로 하면서 내신도 보고 면접도 한다는 건 그럴싸 한데, 최종선발에서 480명을 놓고 무작위 공개추첨을 하여 160명을 추리겠단다. 야바위도 이만한 야바위가 없다.

물론 추첨이 가장 민주적이고 현명한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 땅의 교육현실에서 가당키나 할까. 추첨결과에 항의하는 학부모와 줄소송은 어찌 감당하려는지 모르겠다.

1964년 경기중학교 입시 때에는 '무즙 파동(1965년도 중학교 입시 문제에서 무즙과 관련된 문제에서 복수 정답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던 사건)'이 있었는데, 40년이 넘은 지금은 '야바위 파동'이 등장할 판이다.

내신이면 사교육비 안 든다? 교육부는 바보인가

이미 YTN의 '돌발영상'을 통해 서울시교육청은 내신으로 뽑으면 사교육비가 안 든다고 말해 큰 웃음을 준 바 있다. "5년 전의 외고 설립 때도 사교육비 이야기 나왔지 않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 때는 내가 여기 없었다"라는 서울시교육청 담당자의 답변 역시 연말 코미디 대상감이다.

영어 사교육 억제 방안으로 내신 위주 전형을 내놓은 건 역시 최강 코미디다. 평준화 중학교 체제에서 '잘 나가는 학교'를 만들고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면, 평준화가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교육비도 당연히 올라간다. '학교별 입시'와 '평준화'는 반대말이고, '학교별 입시'와 '사교육비'는 사실상 동의어이다.

입시를 내신으로 하느냐 별도 시험으로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만약 서울시교육청의 말대로 내신 위주 입시가 사교육비 억제방안이라면, 대학입시로 인한 이 땅의 사교육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 공 교육감의 말대로 한다면, 지금까지 60년 동안 대학입시정책을 담당해왔던 수많은 교육부 담당자들은 다 바보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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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입시가 있느냐 없느냐다. 입시가 있고 경쟁률이 치열하면 사교육비는 바늘에 실 따라가듯 함께 온다. 특히, 학교별 입시는 통합전형보다 경쟁률이 높을 가능성이 많다.

영어몰입중학교를 세워놓고 사교육비 억제방안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이미 지난 10년 동안의 초등학교 영어수업의 효과를 톡톡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 영어가 우리에게 안긴  상처가 사교육비 말고 뭐가 더 있나.

추첨이 마지막 관문이니, 영어가 조금 부족해도 운좋게 국제중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치자. 국어·국사를 제외하고는 다 영어로 수업할 텐데, 그걸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결국 영어를 익히기 위해 학원을 찾고, 뒤처진 교과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사교육 봉고차에 몸을 실어야 하지 않을까.

사교육비 규모(통계청과 교육부의 2007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 2008년 2월 22일 발표)
 사교육비 규모(통계청과 교육부의 2007 사교육비 실태조사 결과, 2008년 2월 22일 발표)
ⓒ 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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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통계청이 조사한 '사교육비 평균' 자료를 보자. 초등학생은 월 25만원, 중학생은 31만원, 고등학생은 38만원 수준이다. 물론 평균치다.

그런데 공정택 교육감은 국제중학교를 세워 앞으로 초등학생의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울 것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고교다양화 300을 본격적으로 실시, 잘 나가는 300개 고등학교로 중학생의 사교육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국제중-자사고·특목고-일류대로 이어지는 '하이패스 구간'이 완공되면, 아무래도 첫 관문인 국제중이 중요해지는 만큼, 사교육비 평균은 초등학생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평균을 더 초월할 수도 있다.

지난 7월 중순 이후 사교육업체들의 주가는 떨어지고 있었다. 업계 1위 메가스터디를 비롯하여 주요 사교육업체들의 2분기 영업실적이 기대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어닝쇼크(Earning shock)' 수준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공정택 교육감이 긴급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교육감 당선으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바 있는데, 이번 국제중학교 역시 중장기적으로 호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2월에 '메가스터디 엠베스트 주니어(엠주니어)'로 초등부를 만들었던 메가스터디와 작년 중등부 위주로 설립한 삼성 계열의 크레듀엠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말로 예정된 100개 자사고 근거 법안을 이명박 정부가 차질없이 시공하면, 이명박 대통령과 공정택 교육감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똑똑한데 노력을 안 해"

서울에 2개 국제중이 만들어지면, 경기와 부산에 이어 모두 4개의 국제중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서울이 물꼬를 텄으니 다른 지방에서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국제중-자사고·특목고-일류대로 이어지는 트랙이 완성된다.

이는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이나 유럽을 주름잡던 복선형 학제와 유사하다. 분명 21세기인데, 한반도의 시계만 40·5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물론 입시를 치르던 나이가 만 11세였던 영국에 비해(중학교 입시를 '일레븐 플러스 시험'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보통 만 12세로 1년 정도 늦으니 조금 낫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중학교 입시는 그 연령 때의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시련이다. 그 자체가 비교육적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잠재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 국제중 입시에서는 성공자보다 실패자가 많을 게 뻔한데, 그 경험이 아이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는 입시 결과가 나온 이후에, 얼마나 많이 자신감에 생채기를 입을까. 그게 쌓이고 쌓여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아충족감과 자기효능감(말이 어려운데 그냥 자신감이다)이 학업성취도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정설에 비추어 보면, 일단 이후의 공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공부뿐이겠는가. 어쩌면 아이의 삶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때 아비와 어미는 "우리 아이는 머리는 똑똑한데 노력을 안해"라고 읊조려야 할까.

서울 중계동의 한 어학원에서 열린 국제중 입시 대비반 설명회의 모습. 많은 입시 학원은 최근 국제중 대비반을 신설 확대하고 있다.
 서울 중계동의 한 어학원에서 열린 국제중 입시 대비반 설명회의 모습. 많은 입시 학원은 최근 국제중 대비반을 신설 확대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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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이 국제중학교를 설립하는 이유도 가관이다. '국가경쟁력 제고'니 하는 말이 있는데, 이거야 요즘 시대에 '민주주의 신장'과 유사한 용도로 쓰이는 말이니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 다음 이유로는 '장기 해외거주 귀국 학생에 대한 교육연계성 구축' '국제분야 교육 기회 제공으로 유학 욕구 수용'이 전부다. "조기유학 갔다가 돌아오는 학생들, 조기유학 가려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절실하다"는 것인데, 강남 주민이나 부자를 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유학수요 대체'가 워낙 유행이라서, 영어마을을 우후죽순으로 만들 때도 그렇고, '경제자유구역에 외국교육기관을 세우겠다'고 할 때도 그렇고, 제주 영어교육도시를 만들 때도 그렇더니, 이제는 서울에 국제중학교를 세우는 데에도 온간 이유를 갖다 붙인다. 나라가 온통 강남이나 부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 분들 미국을 참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미국을 본받았으면 싶다. 방식과 철학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가 있기는 하나, 그래도 부시 대통령의 교육개혁은 "단 한 명의 학생도 낙오시키지 않겠습니다(No Child Left Behind, NCLB)"라는 멋진 이름이나마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예 대놓고 가진 자만을 위한 학교를 만들겠단다.

희망이란 부자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노동자도 서민도 좋은 대학에 아이를 보내고자 하는 꿈을 지니고 있다. 사교육도 그래서 시킨다. 그렇다면 나랏님들은 노동자나 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공부보다 간판으로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정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사교육 받지 않아도 되게끔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나랏님들은 국민의 희망과 꿈은 저버리고, 오직 강남이나 부자의 욕구만을 챙긴다. 아무리 우리나라 헌법 제31조 제1항의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이 현실에서는 '모든 국민은 부모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로 바꾸고 있기는 하나, 나랏님들이 나서서 그러면 안된다. 

덧붙이는 글 | 송경원 기자는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



태그:#국제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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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고 지금은 정의당 정책위원회에 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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