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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계동의 한 어학원에서 열린 국제중 입시 대비반 설명회의 모습. 많은 입시 학원은 최근 국제중 대비반을 신설 확대하고 있다.
 서울 중계동의 한 어학원에서 열린 국제중 입시 대비반 설명회의 모습. 많은 입시 학원은 최근 국제중 대비반을 신설 확대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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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A어학원에 들어서니, 학생이 아닌 학부모들로 만원이다. 70명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에는 이미 빈자리가 없다. 책상과 책상 사이 통로에 간이의자가 놓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간이의자마저 꽉 찬다. 직접 설명회에 나선 윤아무개(32) 어학원장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과학고 입학하기에는 내신 때문에 국제중학교가 결코 유리한 건 아닙니다. 외고나 국제고 입학하기에는 좋겠죠. 하지만 작년 청심국제중 입학생 중 약 20% 정도가 적응 실패로 이탈했습니다. 이런 점도 학부모님들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학부모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젖먹이를 안고 온 엄마가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손을 잡고 온 아버지도 있다. 필기는 필수고, 진지함은 기본이다. 부모님을 따라온 초등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마치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교실과 흡사한 모습이다.

설명회가 열린 교실 창가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수막에는 A어학원 출신으로 2008년 입시에서 청심국제중학교에 입학한 이주은 학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박혀 있다. 윤 원장의 설명에 이어 인근에서 수학, 과학을 전문으로 강의하는 강사가 나섰다.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국제중에 입학할 수는 없는 상황. 강사는 국제중 입학을 위해 A어학원과 연계된 수학, 과학 프로그램을 열심히 설명한다. 자녀를 '포스트 이주은'으로 만들고 싶은 학부모들의 태도에는 흐트러짐이 없다. 

국제중 대비반 설명회, 학원가는 벌써 '대목'

23일 오전 학원가로 유명한 서울 중계동의 A어학원에서 열린 국제중학교 입시반 모집 설명회의 모습이다. 서울시 교육청이 최근 국제중학교 두 곳(대원, 영훈)을 새로 선정하자 학원가는 그야말로 '대목'을 맞았다.

바야흐로 많은 학원들은 '국제중 모드'로 변신하고 있다. 발빠르게 국제중 대비반을 신설하거나 기존에 있던 반을 확장하며 설명회를 열고 있다. '공부 좀 하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이들 학원의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국제중 입시 전형에서 영어 비중이 높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적어도 설명회 현장에는 없는 듯했다. 윤 원장은 "10월에 발표되는 국제중 입시 요강은 교육청 발표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영어는 기본이자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간단한 윤 원장의 설명이 끝나고 질문답변 시간. 학부모들 여럿이 손을 번쩍 든다. 한 학부모는 "서울에 있는 국제중 입시에 분당이나 일산의 아이들도 도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학부모의 아이는 현재 초등학교 2학년. 벌써부터 다른 지역의 경쟁자가 걱정인 것이다. 다른 학부모들 역시 적지 않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윤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그 동네 아이들이 전학 올까 봐 걱정 되느냐"며 "교육청에서 적절하게 제한을 두지 않겠느냐"고 학부모들을 안심 시켰다.

1시간여의 설명회가 끝난 뒤에도 학부모들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윤 원장이나 다른 선생님들을 붙잡고 이런 저런 상담을 이어갔다.

오후 1시부터는 현재 카이스트에 재학중인 B씨의 강연이 이어졌다. 학원 곳곳에는 B씨의 강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B씨의 강연에는 약 50여 명의 학부모들이 참석했다. 초등학생 십여 명의 모습도 여럿 보였다.

"아이가 공부 잘 해서 국제중 갈 수만 있다면..."

B씨는 이들에게 oo과학고 재학시절 학년 전체 151명 중 146등이었던 사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스트에 합격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B씨는 "내게 있어서 노는 건 목숨을 걸 만한 일이었다"며 "놀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런 절박감을 갖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한 여자 초등학생은 "놀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는 B씨의 말을 자기 노트에 정성스럽게 적었다. 이 학생은 "공부하는 게 힘들 때마다 열어 보며 자극을 받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확실히 시대가 바뀐 것일까.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1991~1993)에도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입학한 선배들은 자주 강사로 우리 앞에 섰다. 그들은 B씨와 똑같이 자신의 공부 비법과 대학 시절을 들려줬다.

그 때와 지금이 다른 건 하나. 그 시절에는 고등학생이 학교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지금은 초등학생이 학원 선배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연령이 초등학생까지 떨어진 것이다.

한 학원 강사는 "예전에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못해도, 중학교 때 잘하거나 고등학교 때 엄청 성적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성적 역전'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중 입시를 위한 사설 학원비는 거의 비슷하다. 교육청이 학원비 상한선을 정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A어학원의 경우 영어, 수학, 과학, 국어 등을 배우는 국제중 대비반 수강료는 1개월에 87만 5000원이다. A어학원은 '국제중 입시의 기본체력 만들기'라는 형태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부터 수강생으로 받는다.

한 사설 입시학원장은 "기본적인 영어 준비를 비롯해 다른 과외까지 받으면 국제중을 준비하는 초등학생 1명에게 사교육비로 매월 약 200여만 원이 들 것"이라며 "강남의 소규모 그룹 과외를 받으려면 이 비용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여러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김아무개(40)씨는 "아이가 공부 잘해 국제중만 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해서라도 교육시키겠다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는 오후 3시께 끝났다. 한 여학생은 학원 선배 B씨의 사인을 받아갔다. 그 학생에게 '우상'은 B씨처럼 일류 대학에 입성한 사람인 듯했다. 설명회가 열린 교실 창가에 걸린 또 다른 우상 이주은양은 변함없이 웃고 있었다.


태그:#국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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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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