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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민심은 있는데, 정부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만에 내각 및 청와대수석 일괄 사의표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후임 인선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광우병 쇠고기' 사태는 물론 13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 고유가 사태 등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나오지 않아,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내각과 청와대가 비어있는 틈에 한나라당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부와 여당 사이에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문제 등을 두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등 정책 혼선까지 빚어졌다.

 

정부 여당 안팎에서 하마평에 오르는 새 인사마저도 '그 밥에 그 나물'이 될 공산이 커지면서 이 대통령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예고된 파업 막지 못한 건 '방치한 청와대-미온적 정부'

 

16일로 한승수 총리를 비롯한 전 내각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표를 낸 지는 11일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후임 인선의 폭과 시기는 윤곽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구체적인 인사의 폭과 시기를 놓고 최종적으로 확고한 게 서 있지 않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후임 인선이 지연되면서 각종 현안에 대한 대처도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핵심 관계자는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13일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방장관과 국토해양부장관이 말할 것"이라며 책임을 정부측으로 떠넘겼다.

 

그러나 화물연대의 파업은 이미 한달 전부터 예고돼 왔다. 게다가 화물연대의 요구조건은 지난 2003년이나 2006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파업사태는 청와대와 정부의 '직무유기'에서 기인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전에 해결책을 마련했다면 전국의 물류 마비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이를 방치했고, 정부는 정부대로 미적대는 바람에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차원의 갈등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근본적 제도개선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처와 청와대 관련 수석비서관들이 상호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부처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부측에서 화물연대와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게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덤프트럭 기사 2만여명도 파업에 들어가 건설공사도 당분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특히 공공기업들과 민노총이 잇따라 '야구타자식' 파업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국정장악력을 상실한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청와대·정부 흔드는 집권여당 "그러길래 잘 좀 하지"

 

청와대와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한나라당이 공기업이나 수돗물 민영화, 대운하 문제 등 중요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 6·4 지방선거 재보선 참패 이후 "청와대가 못하면 우리만 피해 본다"는 불만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집권 초기니까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틀린 얘기"라며 "집권 초기에는 보통 지지율이 높으니까 개혁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고 말했다. 특히 임태희 의장은 "한전과 수돗물 등은 민영화가 안된다"며 "수돗물을 민영화해서 가격을 정상화하면 폭동이 난다"고 우려했다. 임 의장은 지난 11일과 14일에도 "공기업 민영화는 국정 후순위 과제"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임태희 의장의 우려는 '7월 이전에 공공기관 개혁안을 발표해야 한다'는 청와대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청와대측은 경제 불황을 '공공기관 개혁'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대운하 추진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은 청와대·정부와 다른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당·청 간에 불협화음은 정책 문제를 넘어 인사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인사가 지연되면서 여당 내 각 계파가 흘리는 하마평이 또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여당은 류우익 대통령실장 교체를 비롯해 전면적이고 대폭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스타일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노출하고 있다.

 

특히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이상득 의원 등의 2선 퇴진을 주장하며 인적 난맥상에 직격탄을 날리자, 이명박 대통령이 매우 언짢은 심기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여당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흔드는 것에 대해 불만이 팽배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한나라당 일각에서 내각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 "인사 괴담이 떠돌고 있다" 등의 불만을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각 총사퇴 이전부터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박근혜 총리설' 역시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청와대로서는 박 전 대표의 총리 기용에 대해 보수세력 결집 이상의 효과를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에게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부분 내줘야 한다는 점 때문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논의조차 하지 않은 일로 인해 박 전 대표측은 "또 말만 무성했지, 진정성이 없다"며 반발, 양측간에 불신의 골만 더 깊어지고 말았다.

 

박 전 대표에 이어 이번에는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의 총리 기용설이 나오자,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인적쇄신의 방향을 가늠하느라 일손을 잡지 못하고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주 중 가닥 잡힐 것"... 또 '강부자·고소영' 될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6일 내각 및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관련 "금주 중에는 큰 가닥이 잡힐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여러가지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개봉박두'라고 할까, 그런 분위기는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시절 인사에서 너무 뜸을 들이다가 인사를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선자 시절에도 1월 말이나 2월 초로 인사 발표를 예고했다가 결국 2월 20일에 명단을 발표했고, 그 결과는 '강부자 내각'에 '고소영 수석'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총리나 대통령실장 등을 비롯해 새롭게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강부자, 고소영' 비판을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인적쇄신, #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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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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