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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세대 연구가 아주 활발한 나라다. 각 세대의 특성을 연구하면 사회 현상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은 베이비붐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 등이다.

 

최초의 컬러TV와 비틀스, 미니스커트와 영화 <졸업>, 베트남전쟁이 베이비붐세대의 목록이다. 반면에 X세대는 M-TV와 영화 <ET>,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점의 세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Y세대는 인터넷과 리얼리티 TV, 그리고 9.11테러 뉴스를 지켜본 세대다. Z세대의 목록은 현재 진행 중이다.

 

시드니에 있는 맥크린들 연구소는 호주 세대 연구의 메카 같은 곳이다. 이곳의 연구부장이자 Z세대 전문가인 제프 길링(39)이 최근 한국 10대와 호주 10대를 비교하는 분석을 내놓아 그를 인터뷰했다.

 

한국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제프 길링은 "한국 10대들이 광우병과 같은 국가적 사안에 관심을 두는 것도 특별한 사례인데, 촛불 시위에 대거 참가해 기성세대에게 경종을 울렸다는 사실이 경이롭다"면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침묵의 세대' 돌연변이가 한국에서?

 

호주에서는 Z세대를 '풍요롭지만 잊힌 세대'로 규정한다. 그들을 '잊힌 세대'로 규정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베이비붐 세대는 1965~1979년, X세대는 1980년~1994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이고, Z세대는 1995년 이후에 출생한 연령 그룹을 통칭한다.

 

그러나 나이 구분을 다르게 하는 학자들도 있다. 호주 정신의학 연구의 권위자인 시드니 대학교 이안 히키 박사는 Z세대를 17세 이하의 세대로 규정했다. 히키 박사는 Z세대를 '제드스(Zeds)'로 맨 처음 호칭한 학자다. 그는 "Z세대는 신체적으로 아주 건강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그들을 '새로운 침묵의 세대'로 규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침묵을 깨트린 '돌연변이 Z세대'가 한국에서 출현한 것. 침묵하는 대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한국의 10대들은 누구인가?

 

"촛불 시위 보며 한국으로 다시 가고 싶었다"

 

첫 대면의 딱딱한 분위기부터 누그러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제프 길링에게 "정말 한국에 갈 예정인가?"라고 물었더니 "물론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 촛불 시위를 준비하고 실천하는 Z세대를 만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어서 "한국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지금으로 치면 Y세대에 해당되는 한국 청소년들을 만나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초고속망 인터넷을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해놓고, 수평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외계인처럼 보일 정도였다"면서 웃었다.

 

그는 "그런데 그 다음 세대인 한국의 Z세대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국가적 사안을 놓고 촛불 시위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다시 한국으로 가서 현장을 봐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고 털어놓으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Z세대의 특성 중 하나가 아주 복잡하고 다원적인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등의 환경 관련 주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첫 세대가 Z세대다. 그런데 한국의 Z세대들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라는 끔찍한 목록을 하나 더 추가시켰다."

 

다음은 제프 길링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알파벳이 Z로 끝나는데 그 다음 세대는 뭐라고 이름 붙일 것 같은가? 그리고 Z세대는 언제까지인가?

"Z세대 다음은 아마 'A1세대'쯤 되지 않을까 싶다. Z세대는 2020년까지로 추정하고 있다. 1995년생이 25살이 되는 해다."

 

- 한국 10대들의 촛불 시위 뉴스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한마디로 경이로웠다. Z세대가 포함된 10대들이 국가적 문제를 놓고 시위를 벌인 건 전 세계적으로 살펴봐도 아주 드문 사례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등의 큰 주제를 놓고 10대들이 시위를 벌인 사례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위를 주도한 그룹이 아니고 소수의 별쭝난 10대들이었다."

 

- 2007년 11월 시드니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 당시 호주 10대들이 반(反)부시 시위를 벌이지 않았나.

"그렇다. 그러나 그들도 소수였다. 또한 반부시 시위보다는 환경 파괴 반대 시위에 더 열을 올렸다. 단언하기 어렵지만, 그들이 미래를 살아야할 세대이기 때문으로 보였다. 한국의 10대들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그들이 최대 피해자가 될 세대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한국과 호주의 10대들이 국가적 관심사를 놓고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선진국인 한국과 그렇지 못한 호주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얼마 전 호주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파티 보이' 코리 사건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해프닝이었다."

 

한국과 호주 10대의 공통 고민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제프 길링은 "한국과 호주 10대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의식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그들을 똑같이 짓누르고 있다"고 정리했다.

 

청소년 대상 잡지 <돌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호주 10대의 40% 이상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돌리>는 "호주 10대들이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고 있지만, 그게 스스로 이룩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돌리>의 기사에는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호주 10대들은 야망이 넘치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이기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는다. 또한 기성세대가 전혀 누리지 못한 엄청난 성과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게 오히려 그들 개개인을 옥죄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제프 길링은 "그런데 이번에 한국 10대들이 촛불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Z세대가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특히 그들이 복잡한 사안을 단위(unit)별로 명료하게 묶어내는 특기를 발휘하면서, 엄숙주의가 아닌 축제 형태로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탄복했다"고 말했다.

 

"한국 10대에 탄복했다"

 

제프 길링은 인터뷰를 끝낸 다음, 몇 차례 망설인 끝에 기자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청소년 문제를 상담하는 국가기관에 근무할 때 만난 한국 10대 유학생이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학생은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유학생이 버릇없이 군다는 이유로 두들겨 팼다고 한다. 엄연한 범죄 행위였지만, 그는 그게 한국의 전통이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했다는 것. 결국 그 학생은 처벌을 받고 한국으로 추방됐는데, 그 한국의 전통이라는 것이 아직도 궁금하다고 했다.

 

난감했지만, 기자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까지 들먹이면서 어정쩡하게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곰곰이 따져보니, 그 학생만큼이나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 정부가 10대들에게 촛불을 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어른들만 모르는 건 아닐까? 아니면 다 알면서도 어설픈 변명과 강경 대응 등의 구태를 벗지 못해, 앞으로 활기차게 걸어가야 할 10대들의 발목이나 잡고 있는 건 아닐까?

 


태그:#촛불 시위, #10대, #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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