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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유난히 눈부신 오월! 해마다 이맘때면 '울산공단문학회'에서는 문학기행을 떠납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진행되는 동안, 어디로 가야할지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은 부산시 기장읍 일대를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리 지역에 대한 반성(?)과 지역발전을 위한 첫걸음으로 시작하려는 의도, 그렇게 행선지가 결정되자 일정까지 잡히고 예정대로 떠나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떠나는 날인 지난 17일 아침, 홀가분한 마음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정말 모처럼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1차 집결지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음은 설렜습니다. 몇 십 분이 지나자 함께 갈 일행이 소형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회원님도 있고, 낯선 회원도 몇 있는 듯했습니다.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했는 듯 먹을거리도 있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시인으로서, 울산향토사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계신 전 울산문인협회 회장님도 함께 하셔서 기행의 일정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냥 밋밋한 여행으로 끝나며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한 삼십 여분을 달려 먼저 도착한 곳은 '두모포진성'과 '죽성리왜성'이었습니다.

 

'두모포진성'은 아직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조선전기 수군이 주둔하였던 군사기지 즉 진(鎭)의 하나로 한반도 해안을 노략질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시설이었으며, '죽성리왜성'은 1595년 일본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가 남해안에 장기간 주둔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 곳에 대한 자료가 없다면 잘 알 수 없는 위치, 다른 해안가처럼 별 의미 없이 묻혀 있었습니다.

 

특히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인 '두모포진성'이 존재하였던 곳에 침략의 또 다른 흔적인 왜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많은 흔적이 사라지고, 지형이 변화되어 그 형체를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때의 상황이 어떠하였으리라는 생각은 충분히 기억 속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두모포진성'을 조금 지나 '죽성리왜성'으로 올라가기 전, 일행이 들른 곳은 고산 윤선도가 이태백, 도연명 등 많은 시객들이 찾아 놀던 양자강 하류의 '황학루'입니다. '죽성리왜성'에서 바다 쪽으로 가면 마을 중간쯤에 30여 그루의 해송이 자생하고 있는 자그마한 언덕배기가 바로 그 곳입니다.
 

그렇게 넓은 터는 아니지만 저 멀리 바라다 보이고, 가까이 작은 어선들이 다니는 아주 평화로운 해안마을. 강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생활을 노래한 시조 '어부사시사'가 생각났습니다. 일행은 '황학대'에서 잠시 고산 윤선도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고 '죽성리왜성'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죽성리왜성'은 1959년 일본이 장기간 주둔한 곳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았습니다. 그때 일본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보았을 사람들의 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왜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죽성리해송'을 향했습니다.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온 6그루의 소나무가 한 곳을 향해 자라면서 그 모습은 마치 한 그루의 소나무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놀랄 만한 천연기념물이며, 수령은 약 250년~300년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대변항 '대원군척화비'로 향했습니다.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41호. '대원군척화비'는 대변초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교문 옆에 위치하고 있어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척화비는 원래 대변항 방파제 안쪽 동해 바다가 굽어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항을 넓히면서 일본 관리들이 비를 뽑아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후 1949년경 마을의 청년들이 인양하여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대변항은 멸치로 유명합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멸치축제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대변항을 쭉 이어 펼쳐진 멸치회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대원군척화비'가 세워진 그 곳에서 잠시 머문 뒤, 서둘러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인근에 접해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유적들을 보고 난 후, 점심은 우럭매운탕과 멸치회였습니다. 모처럼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문학기행이라는 색다른 느낌도 들고, 참여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하면 식사를 하고 난 뒤 다음 행선지를 향해 서둘렀습니다. 배도 부르고 노곤한 봄기운을 이겨내며 들른 곳은 '삼성대(三聖臺)'였습니다. '삼성대(三聖臺)'는 고산 윤선도가 기장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고산유고(孤山遺稿)>에 나와 있는 지명입니다.

 

현재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의 일광해수욕장 백사장의 한가운데쯤에 있어서 그 곳을 지난다면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 윤선도는 자신을 찾아온 동생과 만난 뒤, 헤어지면서 멀리 떠나가는 동생을 바라보았다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오영수 선생의 소설, <갯마을>의 주인공 해순이가 살았던 마을이 있었습니다. 소설 <갯마을>의 배경이 된 마을, 해순이가 살았던 집이 온전히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문학회원들의 마음은 새로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소설 속 해순이의 삶을 생각하며, 일행은 그 곳에서 유명하다는 붕장어회를 한 점 먹고 울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있어도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라면 뭔가 머릿속이든 마음속이 가득 하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회원들은 말이 없습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회원님의 문학을 향한 그 길에 오월 햇살처럼 따뜻 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문학기행, #기장죽성리왜성, #해송, #멸치, #기장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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