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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그물로 막아놓은 철길
 새그물로 막아놓은 철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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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뭐야? 설마 저 새그물에 막혀 철마가 멈춘 건 아니겠지?"
"아니야? 우리 국토를 두 동강 낸 이념이나 체제라는 것도 어쩌면 저 새그물 같은 것일지도 몰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선을 그어놓으면 그 선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 철저하게 차단해버리거든."

열차에서 내려 북쪽을 바라보자 저 앞쪽 철길을 가로질러 막아 놓은 것은 푸른 빛깔이 도는 합성수지 실그물이었다. 열차가 달리는 철길을 가로막아 놓은 새그물이 참으로 어설퍼 보인다.

분단의 상징처럼 철길을 가로막은 새그물

민간인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북단의 산이라는 경기도 연천의 고대산을 찾은 것은 지난 5월 6일이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 달릴 수 있도록 놓인 철길이 경원선이다. 그러나 이념이라는 쇠톱으로 허리가 잘린 국토의 남쪽에서 북으로 달릴 수 있는 최북단 마지막 역은 신탄리역이다.

신탄리역은 작고 아담한 역사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경원선은 옛날에는 청량리나 성북에서 신탄리까지 운행되었었다. 그러나 작년에 서울에서 동두천까지 전철이 개통된 후 일반열차는 동두천에서 신탄리까지 1시간 간격으로 연결 운행되고 있었다.

철도 중단역 경원선 신탄리역
 철도 중단역 경원선 신탄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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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산 오르는 길의 칼바위능선
 고대산 오르는 길의 칼바위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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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밖으로 나서자 등산객 몇 명과 함께 고무장화를 신고 커다란 배낭을 멘 노인들이 앞장을 선다.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산으로 산나물을 채취하러 가는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의 뒤를 따라 산으로 향했다. 주차장을 지나 큰길을 따라가는 길가에는 봄갈이하지 않은 논에 둑새풀이 이삭을 내고 흐드러졌다.

"저 둑새풀, 저거 옛날 흉년들었을 때 바구니로 털어서 볶아먹었던 것 아냐?"
"맞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저 둑새풀 씨앗을 털어다가 먹고살았던 때도 있었지."

산나물 채취 노인들을 보며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다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라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의 그 혹독했던 가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그 시절 시골에서 자란 일행들 몇은 그 가난했던 춘궁기 보릿고개를 둑새풀 씨앗을 털어 허기를 달랬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 둑새풀 뒤덮인 논을 지나 나물 채취하러 산을 오르는 노인들의 모습이 문득 옛 시절의 그 가난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고대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3개의 코스가 있었다. 우리는 제2코스로 올라 제3코스로 내려오기로 작정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신록이 우거진 산길은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전방지역이어서인지 서울 근교의 산들과는 달리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길가에는 작고 노란 제비꽃들과 함께 남색 붓꽃,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저마다 귀여운 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취나물을 비롯한 산나물들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저 봉우리가 고대산 정상
 저 봉우리가 고대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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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부근 텅 빈 초소 너머로 저 멀리 철원평야가
 정상 부근 텅 빈 초소 너머로 저 멀리 철원평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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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분을 올라 능선에 이르자 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따뜻할 것이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세찬 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었다. 등산로 곳곳에는 군사용 벙커와 이동통로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이 전방지역임을 실감케 한다.

바위등산로 양편에 밧줄이 설치된 칼바위능선은 이름만큼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양쪽으로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등산로는 대체로 어려움이 없었다. 대개 흙길인 데다 가끔 만나는 바위길도 별로 험하지 않았다. 그 능선을 타고 잠깐 오르자 첫 번째 봉우리인 대광봉이다.

대광봉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시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줄줄이 이어진 산줄기와 그 사이로 흐르는 골짜기들의 모습이 정겹다. 북쪽으로 아스라하게 내려앉은 작은 산들 너머로 철원평야가 바라보인다. 능선으로 이어진 저만큼에서 고대산 정상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대광봉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잠깐이었다. 중간 지점에 솟아 있는 삼각봉을 지나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시원하고 편안했다. 고대산 정상 바로 아래 지역에는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비무장지대와 북녘 땅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다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여자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군사지역에 여성들이 있을 리는 없고, 설마 북녘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러나 소리의 정체는 금방 드러났다. 헬기장 바로 밑에 있는 콘크리트 초소였다. 군사용 초소는 사용치 않고 방치된 지 오랜 모양이었다. 창문도 떨어져 나가고 낡은 초소 안에서 여성등산객 몇 사람이 점심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소리였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피하여 텅 빈 초소 안에서 점심을 먹는 모양이었다.

고대산 꼭대기의 정상표지석
 고대산 꼭대기의 정상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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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쌓인 텅 빈 벙커에 평화의 상징처럼 피어난 예쁜 꽃들
 낙엽쌓인 텅 빈 벙커에 평화의 상징처럼 피어난 예쁜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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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근처의 정상에 오르자 제법 넓은 공터 한쪽에 있는 바위무더기 위에 고대산 정상 표지석 한 개가 덩그렇다. 해발 832미터, 그 표지석 뒤로 바라보이는 높은 산은 철원여고 뒤편에 솟아 있는 금학산이었다.

주변에 있는 높고 낮은 산들은 대부분 능선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쪽으로는 낮은 산들 몇 개가 자리 잡고 있는 너머로 철원평야가 제법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저 아래쪽의 저 산이 아마 백마고지일 거야."

일행 한 사람이 아래쪽의 낮은 산 하나를 가리킨다. 6·25 한국전쟁 때 철원평야를 차지하려고 밀어붙이고 지키느라 벌인 거듭된 전투로 피아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그 유명한 백마고지를 가늠해보는 것이었다.

"저 철원평야 너머로 보이는 산들이 비무장지대고 그 앞쪽이 북녘 땅이겠지?"
"그럴 거야. 그래도 요 몇 년간 평화무드를 타고 남북이 오가고 있지만 언제 또다시 얼어붙을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곳이 바로 저 지역이지."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이어진 곳에는 우리 국군의 군사시설이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고대산 정상 일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등산로 옆의 모노레일
 등산로 옆의 모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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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중단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도 중단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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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이 바로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최북단의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던걸."
"우리들이 이렇게 이 산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 군사정권이 퇴진하고 민간정부가 들어선 이후 조성된 남북한 평화무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그 이전에는 감히 어림도 없었을 거야."

평화의 상징처럼 벙커에서 피어난 예쁜 꽃들

60년대 후반 그 팽팽했던 긴장감 속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일행들은 산 위에 올라 비무장지대와 그 너머 북녘 땅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았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은 다음 하산길로 나섰다.

제3코스로 내려오는 길 저 만큼에 군부대가 바라보인다. 등산로는 군사용 통행로로 사용하던 길이었다. 길가의 군사작전 이동통로 방벽으로 쌓은 돌과 마대자루가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길을 따라 설치된 모노레일도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저 꽃 좀 봐? 쓰지 않는 벙커 안에 피어 있는 모습이 평화의 상징처럼 보이지 않아?"

일행이 가리키는 돌로 쌓은 벙커 안에는 노란 제비꽃 한 무더기가 정말 평화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예쁘게 피어 있었다. 또 다른 벙커 위에도 입구로 늘어진 줄기를 타고 피어 있는 고운 꽃이 특별한 느낌과 함께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평화로운 풍경의 고대산 산촌마을
 평화로운 풍경의 고대산 산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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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이 만만치 않았지만 내려오는 길은 더욱 쉬웠다.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내려와 잠깐 신발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자 섬뜩하게 차가운 느낌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발이 시려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신탄리역으로 가는 길에서 다시 노인들을 만났다. 이 노인들은 오를 때 만났던 노인들이 아닌 다른 노인들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 분이 산나물이 가득 들어 있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앞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힘들게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힘겨워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신탄리역, #고대산, #비무장지대, #철원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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