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7일 '얼굴의 지도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 사망.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들으며 불현듯 13년 전 일이 생각났다. 
 
지난 1995년 여름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현지 적응 훈련 기간 중, 현지 공무원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수랏노(Suratno)라 불리던 집주인은 체육 청소년성 소속 공무원으로 부인 역시 공무원이었다. 중학생 딸 아이 둘을 둔 부부는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면, 소형 승합차로 출근을 하며 나를 현지어 교육이 진행되던 건물까지 데려다 주었다. 퇴근길에도 혼잡한 도심 형편을 감안하여 혼자 다니기 힘들다면서 데리러 오곤 했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가는지 마는지 모를 만큼 막히던 퇴근길 차 안에서 나는 수랏노 아저씨에게 현직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서툰 인도네시아어로 물어봤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삼빠이 떼와스"라고 답하고는, 내가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했던지 "Tewas means to be killed in action(‘떼와스는 사고로 죽다’는 뜻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나는 현지어 교육 기간 중 '죽음'을 의미하는 '서거, 운명, 사망, 돌아가시다'는 등등의 단어를 사전을 찾아가며 의미를 확인하고, 현지 국문과 교수들에게 설명을 들어가며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 확인했던 터라, '떼와스'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단어의 뉘앙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말은 사고사 등에 많이 쓰이는 단어로 ‘비명횡사’한다는 뜻이었다.
 
수랏노 아저씨의 말에서 전해진 느낌은, "뒈질 때까지 (대통령하지 않겠어?)"라는 것이었다.
 
현직 공무원의 입에서, 그것도 말단 공무원이 아닌 공직 생활을 이십여 년 이상 한 사람의 입에서, 부부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집안의 가장이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아무리 철권통치를 하며 온갖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곤 하지만, 자국 대통령에 대해 외국인인 나에게 답한 그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라고 할만치 파격이었다.
 
그 이후 금기라 할만큼 정치에 대해 현지인들과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며 2년을 지냈다. 그런데 종종 해 떨어지기 전에 버스가 끊기는 시골 마을에서 살면서 현지인들로부터 종종 수하르토 대통령에 대한 칭송의 소리를 들을 때면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어제(27일) 또 한 번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의 폭의 다양함을 경험했다. 
 

오후 5시경에 문자 메시지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보내 온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그가 보내 온 문자 메시지에는 "인도네시아 시각으로 13시 10분 인도네시아 민족의 아버지, 수하르토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메시지를 옆에 있던 인도네시아인에게 보여 주었다. 그 메시지를 본 그의 순간 반응은  “길라(미쳤군)!”라는 말이었다. 대체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두고 누가 민족의 아버지라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역시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인가?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보니, 집집이 거실에 큼지막한 액자로 만든 대통령 사진을 걸어놓고 살만큼 대통령에 대한 경외가 강한 시골 사람들과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현직 공무원에 대한 새삼 13년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져 몇몇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다시 물어보았다. 사망한 이에 대한 폄하를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지 않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점잖음 때문이었는지 대답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순박함이 쉬이 느껴지는 시골 출신들이었다.

 

한참의 질문이 있고 난 후, 마지막으로 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나온 사람에게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아느냐고 물어 보면서,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죽은 사람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게 뭐예요. 사람이 죽었으니 죽었구나 생각하면 되지."
 
세월 앞에 장사 없고, 제 아무리 많은 재물을 숨겨 놓고 권력을 향수했다 해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그는 조용하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대답이 현명하다고 느껴진 이유였다.


태그:#수하르토, #사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