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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나라가 부도위기에 몰리고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자 유권자들은 당시 김대중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구호에 일정 부분 동조했다.

 

올 미국 대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조짐이다. 연초부터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진이 되살아나고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이 확실해지면서 유권자들이 움츠러들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몇 주 전만 해도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던 힐러리 클린턴의 미국판 '준비된 대통령'론이 유권자 사이에서 공감을 얻는 분위기다. 뉴햄프셔주에 이어 네바다주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연승을 거둔 배경에는 불과 몇 주 사이 급변한 이런 경제상황이 있었다.

 

실제로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햄프셔와 네바다주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은 주로 연소득 5만달러 이하의 서민층에서 큰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서브프라임 사태와 경기침체의 충격에 가장 민감한 계층이다.

 

이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힐러리 클린턴은 지난 2주간 주로 경제문제를 언급하는데 유세의 태반을 할애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망의 메시지와 패기에 의지해야 하는 오바마로서는 유권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믿을 만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심는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22일 <뉴욕타임스>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녀의 경제관과 집권 후 펼칠 경제정책을 상세히 피력해 눈길을 끈다.

 

힐러리는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 재임 중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과도한 연봉을 챙기고 조세정책 역시 부유층에 압도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반면에 중산층의 생활수준은 저하됐다"고 평가했다. 이런 이유로 경제성장 속도 역시 원래 잠재력만큼 빠르지 못했다는 것.

 

그녀는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효율적이고 강력한 정부와 역동적이지만 적절한 규제를 받는 시장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며 정부규제와 시장의 조화를 역설했다. 또 "그간 우리는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체계적으로 무력화했고 이에 따라 시장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며 부시 정부의 경제정책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이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입장을 반복한 것이지만 그녀가 집권할 경우 시장 대신 '정부의 역할'에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힐러리는 집권할 경우 크게 3가지 경제정책을 내세우겠다고 말했다. 우선 연소득 20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부시 정부가 내린 감세 혜택을 철회하고 저소득자에게 그 혜택을 돌려준다는 것. 또 금융시장과 미국 내 외국정부의 투자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며 일자리 창출에 정부 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힐러리는 "고속도로 건설, 우주 개발 등 과거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를 늘린 적이 있다"며 "정부의 계획과 투자만 따른다면 양질의 수 백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녀는 "미국에 불평등이 커지고 중산층은 늘지 않고 있다"고 미국 경제의 상황을 진단하고, 집권할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이율을 최장 5년간 동결하는 등 서브프라임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것임을 시사했다.

 

버락 오바마 역시 경제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등한 관심을 의식한 듯 최근 유세에서 서민경제에 대한 언급을 부쩍 늘리고 있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치러질 26일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당원대회는, 흑인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오바마의 벽을 뚫고 힐러리의 '준비된 대통령'론이 지속적인 탄력을 받을 수 있을 지 보여줄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태그:#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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