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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를 중심으로 인류의 과학과 역사를 들여다본다.
 인체를 중심으로 인류의 과학과 역사를 들여다본다.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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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인간사에서는 ‘몸’이 화두다. 어디 예술과 문학뿐이랴? 과학의 발전도 ‘몸’이 추동력이 되어 끌고나간다. 질병과 죽음이라는 눈앞의 무시무시한 적을 위해 인류는 만사를 젖혀두고 ‘몸’에 ‘올인’해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환경오염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질병을 생각해 본다면 그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터. 교회의 위협에도 과감하게 해부에 뛰어들었다가 쓸쓸한 최후를 맞은 중세 의학자 베살리우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규명하기 위해 균을 직접 원샷한 배리 마셜, 혈액형 연구에 여념이 없다 실험실에서 생을 마친 란트슈타이너 같은 수많은 의학자들이라면 못마땅할 터다. 어찌 그리 ‘몸’ 귀한 줄 모르느냐고.

연세대학교 원주 의과대학 예병일 교수가 쓴 <내 몸 안의 과학>은 인체를 중심으로 과학의 발전 과정을 훑어보는 책이다. 역사와 철학, 과학, 의학적 지식이 한데 맞물려 흥미로운 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대체 인간은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이 여정은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최근의 의·과학적 고민까지 영역을 넓힌다. 몸의 탄생, 해부, 뇌, 얼굴과 피부, 내장기관, 혈액, 성, 유전자 총 8개의 키워드가 이러한 인체 탐험의 중심이다.

사람의 척추는 목뼈 7개, 가슴뼈 12개, 허리뼈 5개, 엉덩이뼈 5개로 구성되는데, 그 사이사이로 신경이 빠져나간다. 기호는 목신경c, 가슴신경T, 엉덩이신경S을 의미한다.
▲ 피부 절편지 사람의 척추는 목뼈 7개, 가슴뼈 12개, 허리뼈 5개, 엉덩이뼈 5개로 구성되는데, 그 사이사이로 신경이 빠져나간다. 기호는 목신경c, 가슴신경T, 엉덩이신경S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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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1 - 몸의 탄생] 엎드려라 네발짐승이 된다?

제목만 보고 도발적인 내용을 기대하지 마시라. 1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네발짐승’임을 알 수 있는 증거로, 신경 분포를 나타내는 피부 절편지를 꺼내 든다.

말초신경 하나하나가 담당하는 부위를 피부 면에 표시할 때, 사람이 서 있는 상태에서는 그 분포 모양을 쉽게 알 수 없지만, 엎드리게 한 뒤 분포 모양을 표시하면 네발짐승처럼 머리 위에서 엉덩이 쪽으로 신경분포가 순서대로 위치한다.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키워드 2 - 해부] 오, 나의 이발사 선생님

인류가 인체를 ‘직접’ 들여다보기까지는 녹록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중세 교회가 인체 해부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직접 바라보는 것만이 대상의 진실을 알게 해준다 믿었던 몬디노 같은 용감한 교수들은 제자들을 이끌고 해부학 실습에 나섰다.

그런데 웬일인지 뒷짐 지고 다들 바라보고만 있고,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나타난 이발사 선생님이 해부를 집도하신다. 그 당시 ‘칼’을 잘 다뤘던 이발사들은 해부뿐 아니라 수술대에까지 그 기량을 발휘했으니, 그 전통은 지금도 이발소 삼색등에 남아 있다. 파란색은 동맥, 붉은색은 정맥, 흰색은 붕대를 뜻한다.

[키워드 3 - 뇌] 인간 개조를 꿈꾸었던 그들

1949년 포르투갈의 과학자 모니스는 정신병자의 이마엽 일부를 자르는 ‘뇌엽절제술’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인간을 수술로 ‘개조’할 수 있다는 이 위험천만한 기술은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1939년부터 1951년 사이에 미국에서만 1만 8000건의 수술이 행해졌다. 하지만 성공률은 1/3. 정신병을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을 때의 완치율과 똑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사람이 이 수술을 받아, 때론 나아졌고 때론 죽었으며 때론 정신능력이 심각히 훼손되고 말았다. 일부 국가에선 행동교정술의 하나로 사용한 무시무시한 ‘치료술’이었다.

골상학회에서 발표한 이 지도에는 인간의 능력이 머리의 어느 부분에 자리하는지 그려져있다.
▲ 골상학 지도 골상학회에서 발표한 이 지도에는 인간의 능력이 머리의 어느 부분에 자리하는지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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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4 - 얼굴과 피부]
머리 모양이 운명 결정

19세기,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실루엣은 허리도 다리도 아닌 바로 ‘머리모양’이었다. 골상학자들은 사람의 뇌 27군데가 인격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 믿었고 이것이 개인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결혼 상대자를 찾을 때 조언을 듣고자 골상학자를 찾았다. 골상학자들은 어린이들이 커서 누구와 결혼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골상학으로 판단했다. 운명을 바꾸려면 머리 모양을 바꾸어야 하는 ‘골상학의 시대’였다.

[키워드 5 - 내장기관] 들어봤나요? F형 간염?

초등학생 때면 정기적으로 맞는 B형 간염주사. 혈액형이 B형인 사람만 걸리냐는 황당한 질문을 하게끔 하지만, 놀라지 마시길. 간염에는 A형, C형, D형, E형, F형, G형이 있다.

게다가 F형 간염은 유전자가 발견되었지만, 바이러스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인체의 비밀이 첩첩산중이듯 발생하는 질병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 다국적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인류가 걸어갈 길은 멀기도 멀다.

[키워드 6 - 혈액] 신도 깜짝 놀랐다, 인공 혈액

헌혈인구가 많지 않은 탓일까? 대한민국은 ‘피가 모자라는’ 나라다. 요즘 의·과학계에서는 ‘인공혈액’을 개발 중이다. 혈액의 모든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혈액은 ‘가능하지도’ 않고 연구 중이지도 않다.

세밀한 범위의 인공혈액이란 적혈구의 산소운반 기능을 대신하는 물질로, 미국과 일본 정부가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선바이오사에서 인공적혈구를 개발 중이다.

[키워드 7 - 성] 모든 것은 X염색체에 달렸다

X염색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는 전체 유전자 가운데 약 4퍼센트에 지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3199가지 유전질환의 9.6퍼센트인 307가지는 규명할 수 있다. 유전병의 키를 X염색체가 쥐고 있는 셈이다.

흔히 혈우병을 일으키는 인자가 X염색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남자만 혈우병에 걸린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보통 염색체에 존재하는 혈우병C가 있어, 여성도 혈우병 환자가 될 수 있다. <들장미 소녀캔디>의 데이지가 혈우병 환자로 나온 설정은 너무도 사실적이었다.

DNA를 둘러싼 각종 '연구'는 자본과 맞물려 언제나 이슈거리를 만들어냈다.
▲ DNA 분자구조 모형(왼쪽)과 x선 회절사진(오른쪽). DNA를 둘러싼 각종 '연구'는 자본과 맞물려 언제나 이슈거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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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8 - 유전자]
자본과 과학기술이 펼친 ‘빅 쇼’

사람의 염기서열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인류의 야심찬 도전이었던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과학계와 정치권, 기업 여기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 팀과 과학자 벤터가 이끄는 민간기업 셀레라 지노믹스가 경쟁하면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대단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날에 연구결과를 발표해 승부는 가리지 못했지만, 인간의 유전자가 3만 개 정도라는 사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체가 1.3퍼센트만 다르다는 점 등이 밝혀졌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완료된 뒤 가장 가시적인 변화란, 생명공학과 관련 있는 기업의 주식이 치솟았다는 점이다. ‘유전자의 발견’이 인류 구원의 메시지인지, 자본의 대대적인 흥행 보증수표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터다.

<내 몸 안의 과학>이 주는 최종적인 메시지는 인체 지도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다. 그러나 ‘내’ 안에 ‘과학’ 있다는 이 단순명료한 결론 앞에서도 어딘가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옛날 바빌론 시대에는 아픈 환자가 생기면 거리에 눕혀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지나가던 행인들이 경험담을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바빌론의 어느 거리에 아픈 몸을 뉘이고 행인에게 답을 찾는 기분, 어째 익숙하지 않은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의·과학자들의 무용담보다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식의 처절한 생존본능에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지나친 비장함일까? 어찌 되었든 ‘몸’, 제대로 알고 논하시라!

덧붙이는 글 | <내 몸 안의 과학> / 예병일 지음 / 효형출판 / 1만 3000원

김금희 기자는 <내 몸 안의 과학>의 편집자입니다.



내 몸 안의 과학 - 탄생에서 유전자 조작까지 몸 지도를 그리다

예병일 지음, 효형출판(2007)


태그:#과학, #의과학,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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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월간 잡지에서 편집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기자로 등록합니다. 제 관심 분야는 주로 문학에 집중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책과 관련된 에세이를 쓸 생각입니다. 딱딱하기보다는 단단한, 쉽고 재미 있으며 삶이 녹아 있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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