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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100분 토론>의 주인공은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였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대선 3수'입니다. 권영길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자주파의 지원을 업으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않은 논란도 많았고, 민주노동당 내 일부 좌파 계열은 아직도 권영길 후보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기류도 강합니다.

 

2007 대선은 권영길 후보의 당선 유무를 떠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기로'나 다름없는 시기입니다. 경선 과정에서 자주파와 좌파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달았으며, 회계 부정 비리 의혹이나 그로부터 비롯된 맥주병 구타 사건, 뿐만 아니라 당직자들에게 지급할 월급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 민주노동당 자체의 기반이 흔들릴 위험도 수없이 감지됐습니다.

 

권영길 후보 본인은 "300만 표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불가능해보입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다양한 위험들을 감안했을 때, 일정 수준의 득표를 하지 못한다면 당 자체가 통째로 흔들릴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동안은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함께 구체적인 집권 계획 수립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의 현실로서는 '현상 유지'가 더 벅찰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권영길, '보수언론 타격'에 집중했어야

 

패널들은 민주노동당에 관한 세간의 이미지를 처음부터 거론하더군요. "집회와 파업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거나, '민주노총'과의 연관성,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면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변한 게 없지 않느냐"는 질문, 이런 이야기들이 주로 거론됐습니다.

 

최근 '삼성 은행소유 의혹'이나 '삼성 비자금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은 심상정·노회찬이라는 스타 정치인을 앞세워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원내정당이 아니었던 시절부터 민주노동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학교 급식 조례' 개정 등을 감안해보면, "민주노동당이 생각보다 하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권영길 후보는 애초에 '노무현'이 우리 사회에서 '진보'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와 더불어, 의회에서의 민주노동당의 역할을 역설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러한 사안들이 대중적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뭘까요? 예, '보수언론의 민주노동당 차별'입니다.

 

보수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은 아주 귀찮은 존재입니다. 한나라당을 정통 보수로 상정해놓고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범여권을 '진보'나 '좌파'로 상정해 정치면을 꾸미는 것이 그네들의 전통입니다. 이 구도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극좌' 이미지나 '파업 정당' 정도로 묘사됩니다. 보수언론의 구독자수를 감안하면, 그네들의 이미지 상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언론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었을듯합니다. 애초에 노무현 대통령도 '안티조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과거를 참고했어야 했습니다.

 

권영길 후보는, 그러면서 본인이 '만인보'에 나서 어느 노인에게서 들었다는 호의적인 평가를 앞세워 본인과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지만,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만으로 한방에 반격당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런 식의 이미지 부각,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너무 많이 써먹어서 식상한 일면도 있습니다.

 

기존 보수정당과의 차별화에 역점을 둔 포지션 설정은 2002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유효할 것이므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미시적인 당 홍보, 그리고 전반적으로 '권영길'이라는 이름 석자에게서 느껴지는 '뭔가'가 없다는 것을 깊이 고민하고 출연했어야 했습니다. 후보 개인의 차별화된 이미지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출현으로써 어필의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지했어야 합니다.

 

권영길 특유의 '물타기 발언', 앞으로는 자제해야

 

예전에 블로거 간담회에서 직접 대면했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권영길 후보는 노회한 정치인입니다. 다소 과장해 표현하면 '능구렁이'같다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왜였을까요? 할 말이 없거나, 대답이 다소 궁색하다 싶은 질문은 교묘하게 회피하는 기색이 확실하게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패널들은 권영길 후보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는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100만 민중대회'나 '북한과의 관계 설정'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주파의 지원으로 후보 위치를 확정지었기 때문에, 눈에 띄게 그네들의 요구를 들어준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대표공약이라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통일방안이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패널들이 좀 봐줬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통일방안에는 우리 국민들이 알면 깜짝 놀랄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죠. 권영길 후보 본인도 당내 자주파 관련 단체 강연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강하게 주장했던 적, 분명히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것을 별다른 대책없이 주장했다는 것 자체에서, 그리고 권영길 후보 본인이 <100분 토론>에서 '한미 군사동맹 (점진적) 해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북아시아, 화약고입니다. "평택 미군기지는 대 중국기지 아니냐"는 발언, 아마도 "우리가 왜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에 휘말려야 되느냐"는 진의가 숨어 있을텐데요. 이 문제는 결코 순진하게 생각해선 안될 문제입니다.

 

권영길 후보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뭔지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동북아시아 정세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공부하길 바랍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왜 주한미군을 평양에 주둔시키려 했는지, 그것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자신의 지원세력의 요구를 전적으로 들어주는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권영길 후보는 최악의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밀어줬기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자주파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자주파와 좌파가 합쳐져 용광로가 됨으로써 민주노동당이 유지되며, 열띤 토론으로써 상호견제가 가능하다"는 권영길 후보 본인의 발언은, 민주노동당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코웃음부터 칠 말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것을 알기에 2007 대선은 민주노동당의 기로이며, 성장은커녕 '유지'부터 걱정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를 전제한 것입니다. 권영길 후보가 일정 수준의 득표마저 이루지 못하며 참패할 경우에는, 민주노동당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의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북한 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권영준 경희대 교수의 질문에 대해 철저하게 '물타기'로 일관했습니다. 권영길 후보로서는 딜레마죠.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싶어도 자주파가 본인을 지원했기에 그럴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제시한 대답이 바로 송두율 교수 방식의 '내재적 접근법'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건 학자가 할 이야기이지 대통령을 노리는 정치인이 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백만 민중 대회'와 관련해서는 시민논객과 '교통수단 논쟁'을 벌였죠? 이 소모적 논쟁과 함께, 권영길 후보 역시 어렵게 얻은 <100분 토론> 출연 기회를 확실하게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총평으로 정리했습니다.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이미지 유지는 성공

 

물론,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서민'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이 특히 긍정적입니다.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즉 세금은 누가 다 내느냐"는 권영준 교수의 질문에 대해 "세금은 월급쟁이가 다 냈는데, '이건희'나 '이명박'이 세금 제대로 낸 적이 있느냐. 세금을 제대로 거둬야 하며 이걸 하려면 (민주노동당의 집권으로써)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발언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심상정·노회찬 등의 스타 정치인을 앞세운 '대 삼성 폭격'을 권영길 후보가 편안하게 인용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은 장점입니다. 0.3%의 지분으로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언급은, 기존 보수정치와 대립각을 세우기 좋은 언급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구체성'입니다. 권영길 후보가 제시한 일자리 대책 '일자리 공개념'은 역시나 총체적인 설득력이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으며, 한미 FTA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동북아 북방대륙 경제권', 이건 역시나 권영준 교수가 "한미 FTA와 한일 FTA 중 어느 것이 더 어렵겠느냐"는 질문에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거론되던,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의 고질적인 약점은 경제에 대한 무지, 구체적인 경제정책 대안 제시와 실현 가능성에 대해 믿음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언하자면, 심상정·노회찬이라는 그나마 실물경제에 밝은 스타정치인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앞날에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권영길을 3%로 묶는 장벽,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는 홍세화씨의 전매특허입니다. 너무 자주 언급해서 식상해졌을 정도죠.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내걸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차례입니다.

 

권영준 교수 말마따나 "서민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면서 그 서민들은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너무 뼈아프면서도 그 의미를 잊지 말아야 할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파 간의 소모적인 갈등, 그로부터 비롯되는 비리 의혹, 1980년대식 시위문화로 비춰지는 민주노동당의 낡은 이미지를 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보수언론 프리즘'에 갇힌 대다수의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민주노동당 자체가 '운동권 정파' 성향이 강한 이유로,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좌파 계열 중 일부는 아직도 대중을 1980년대식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색도 있으며, 자주파는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21세기에 걸맞은 세련된 대화법과 실물경제에 대한 해박한 인식,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것입니다. '사람 중심 진짜 경제'라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슬로건에 이미 많이 흔들린 것으로 압니다. 그런 흔들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한, 민주노동당의 도약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선공약, #100분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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