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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개봉하는 <올 더 킹즈맨>

다들 큰 관심을 보이시진 않겠지만, 오는 11월 3일에 아주 흥미로운 영화가 단관으로 개봉합니다. 숀 펜 주연의 <올 더 킹즈맨>이죠. 미국 정치영화의 교범으로 평가받는 <모두가 왕의 부하들>(1946)의 리메이크작입니다.

올곧고 성실한 어느 지방 재정관 '윌리 스탁'이 매일같이 목격하는 상류사회·관료집단의 부정부패에 분개하면서 정계에 진출합니다. 마침, 그가 매일 같이 경고했던 '학교 건설 입찰 비리'의 해당학교가 소방훈련 과정에서 붕괴해 3명의 아이들이 죽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죠. 이런 비극 뒤에는 '스타'가 탄생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그를 '꼬드기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시장 선거, 그리고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에까지 출마해 압도적으로 당선됩니다. 하루 아침에 미국의 대권도 노려볼 수 있는 주지사가 된 것입니다.

<모두가 왕의 부하들>은 정치인들이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개혁'이 어떻게 무뎌지고 용두사미로 전락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신인 시절에는 '굳은 의지'로 표출하는 개혁 의식까지 완전히 무너져 오히려 본인이 구태정치인으로 돌변하는 모습 역시 여과없이 보여주죠.

"사람은 뭔가를 너무 간절히 원하면 그 자체가 욕망이 돼서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잊어버리곤 해."

<올 더 킹즈맨>에서 '윌리 스탁'을 맡은 숀 펜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대사입니다. '개혁'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부정부패'를 추방해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개혁을 실천하려 합니다.

하지만, 개혁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주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며, 그에 걸맞은 '세금'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막히는 것입니다. 부패정치인이 득시글한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리는 만무하며, '세금'을 제대로 걷으려면 부자들을 타깃으로 삼는 것은 순리에 가깝습니다.

"편집장님은 그를 찍지 않았다. 우리 신문사 사주도 그를 찍지 않았다. 이 사람(스탠다드 오일사 사주)도 그를 찍지 않았다. 이들(법조인)도 마찬가지. 석유회사의 애완동물인 주의원들도 찍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찍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윌리가 추진한 도로와 교량 건
설, 학교 신축 등의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은 부자들에게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윌리 스탁을 내쫓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면, '부당한 방법'을 활용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척결하리라 마음먹었던 '부패 정치인'이 됩니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언더그라운드>(1995)가 썩어빠진 구체제가 어떻게 끝까지 살아남는지를 보여줬다면, <모두가 왕의 부하들>은 개혁적인 신인 정치인이 어떻게 '구체제'가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개혁? 그래서 쉽지 않은 거죠.

1946년작 <모두가 왕의 부하들>의 리메이크작으로서, '부패 척결'을 내건 정치인이 어떻게 구태에 물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올 더 킹즈맨> 1946년작 <모두가 왕의 부하들>의 리메이크작으로서, '부패 척결'을 내건 정치인이 어떻게 구태에 물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스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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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란, 부패한 구체제가 부당하게 소유한 것을 바른 위치로 돌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가진 자'들이 이걸 놓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제'들은 개혁을 시도하려는 세력을 말살하려 하거나, 인간의 내면에 숨은 세속적인 욕망을 건드리면서 그네들의 체제로 편입시키려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애초에는 개혁을 표방했다가 자신이 '가진 자'가 되면서 본래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건 역사의 순리입니다. 역사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개혁 세력들, 그들이 끝까지 목표를 추구했다면 사회가 단 한걸음이라도 전진했던 긍정적인 사례도 발견될 것입니다만, 고작 해야 '왕조의 교체'가 전부였던 경우도 허다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안남았죠? 무관심층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역사 속의 체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개혁' 외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그것이 제대로 실천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죠. "제 아무리 깨끗하다고 외치는 놈들도 결국 나중에는 다 썩지 않았느냐, 누가 되든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왕의 부하들>, 원래는 퓰리처 상까지 수상했던 로버트 펜 워렌의 소설이죠.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의식의 근원을 파헤친 작품입니다.

'건설 비리', 과연 척결될 수 있을까

바로 그 대통령 선거에서, '재벌의 하도급 비리'를 척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후보가 있습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하도급 거래를 투명화하겠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사안으로는 '재벌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의무보고제의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소송제를 공정거래법에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가 "건설비리 척결해 연 70~125조원을 절감"하겠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건설비리, '담합'이나 '개발수주비용 부풀리기' 등의 다양한 비리수법이 존재하며, 여기에는 지역 토호들이나 조직폭력배들까지 연계된 메커니즘이 탄탄히 구축돼 있습니다.

그는 '부패 건설재벌·부패 관료·부패 학자·부패 정치인·부패 언론'을 이른바 '개발 5적'으로 분류했습니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가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라는 책으로 엮은, 자신의 동생 김헌동 한국건설정보 대표와 나눈 대화에서 분류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혁파하기 어려운 '부패·비리 메커니즘'은 2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문국현 후보가 언급한 '건설 비리', 그리고 또 하나는 '사교육 비리'입니다.

여기에는 정관계·고소득층이 직접적으로 얽힌 경우가 허다하고, 그렇기 때문에 2003년 12월 말에 시도됐던 '강남 일대 불법학원·고액과외 단속'에서처럼 관계기관에서 미리 단속정보가 새는 경우도 직접적으로 이를 증명합니다. 결국 그 당시의 '단속'도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죠.

'부패 청산'은 정치인으로서 응당 시도해야 하는 책무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듯 조직적인 반응과 혹시 모를 저항 등은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왕의 부하들>의 '윌리 스탁'처럼, '개혁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으려고 하다가 그 자신이 부패 정치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주 의회가 주지사를 '탄핵'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개혁'에 대한 구태정치인들이나 비리의혹 당사자들이 벌일 수 있는 저항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 아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옳은 개혁'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패 청산'이 옳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입니다. "저항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초심을 잃는 타락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이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정치인이 늘상 이야기하는 '개혁'을 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어차피 당신도 곧 썩지 않겠느냐"거나, "당신 혼자서 뭘 하겠다는 거냐"는 냉소가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입니다.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건설 담합 비리'를 거론했던 드라마 <모래시계>

<모래시계>는 18~21회분을 통해 조직폭력배가 연계된 '건설업체 담합 비리'와 그를 수사하는 강우석 검사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 <모래시계> <모래시계>는 18~21회분을 통해 조직폭력배가 연계된 '건설업체 담합 비리'와 그를 수사하는 강우석 검사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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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가 하필이면 '건설 담합 비리'를 다룬 적이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죠. '강우석(박상원) 검사'가 광주지검으로 부임해, 자신이 수배령을 내렸던 조직폭력배 두목 '이종도(정성모)'가 주도하는 '건설 담합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을 18~21회에서 보여줍니다.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건설 담합 비리'는 꽤 흥미진진합니다. 건설업체들은 조직폭력배 두목을 '업무 상무'로 고용합니다. 바로 이 '업무 상무'들이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공사 입찰 단계에서 '장난'을 치는 거죠. 자신들의 카르텔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들은 아예 입찰 과정에서 제외하면서, 사실상 공사를 '나눠먹으면서' 입찰 과정 자체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킵니다.

'이종도'는 바로 이 '카르텔'의 배후조종자로 등장합니다. 지역의 대형공사는 모두 그의 손가락질 하나하나에 의해 움직여집니다.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김태동 교수가 분류한 '개발 5적', 미처 거론되지 않은 대상이 하나 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폭이 건설 담합에 참여해 이권에 개입한다는 것은, 이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다뤘던 소식입니다.

김근태 의원도 열린우리당 당의장 시절이었던 2006년 11월 20일에 "경기 화성 동탄 신도시 건설업체들이 분양가 부풀리기를 통해 1조2000여억원의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을 거론하면서 "정부도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야 한다. 아파트 건설현장과 조폭들이 날뛰는 분양현장, 아파트 골목골목에서 투기와 담합이 이뤄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수수방관만 할 것인가. 탁상공론식 대책으로는 투기를 근절 할 수도 없고 투기꾼들의 비웃음만 받을 뿐"이라고 지적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는 수사관들로 하여금 '업무 상무'들에게 "적당히 반성문 정도로 끝내겠다"고 하게 한 뒤, 이들을 일시에 한 자리에 모아 '반성문'과 '비리의 일체 전말'을 작성케 한 뒤, 한꺼번에 구속시켜 버립니다.

물론, 평소 지역언론 기자들을 '잘 관리했던' '이종도'의 언론 플레이에 의해 온갖 압력 속에서 한방 먹는 듯싶기도 했지만, 지난 범죄 사실까지 엮어 '이종도'까지 구속합니다. 여기서 선보여지는 지략이나 과단성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흥미진진하다 하나, 현실 속의 '건설 비리'는 이처럼 쉽게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와우아파트'와 '우암아파트'가 무너지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음에도 '하도급 비리'와 '담합 비리'는 결코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 '건설 비리'들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현실이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혁'을 믿지 않는 국민들, '개혁'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많은 국민들이 '개혁'을 입에 담은 정치인들이 어떻게 현실 정치에 물들어가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개혁' 자체를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뿌리깊은 부패'에 대한 개혁은 결코 무리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일이며, 단면만을 파헤치기 보다는 칼끝을 '카르텔'에 겨눠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갖춰야 할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번뜩이는 지략입니다. 이런 게 갖춰져 있지 않으면,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 채 무너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을 선출할 때, '현실적인 힘'을 중시합니다. 개혁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힘든 것이 '개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노회한 국민들입니다.

아니, 노회하다 못해 '개혁' 자체에 염증을 느껴버린 국민들도 많습니다. '규제를 풀 것을 약속하면서 뭐든 손만 대면 성공할 것 같은 이미지'의 모 대선후보가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다고 너무 굳게 믿게 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개혁을 이루려면 '어떻게'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본'을 중시하는 게 중요하죠. "외국인 투자자들이 강성 노조 때문에 한국 투자를 꺼려 한다"는 주장이 보수언론·경제언론을 통해 국민들을 세뇌시키려 하지만,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게 됐음에도 그네들이 투자를 꺼려 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부패 구조'라고 합니다.

악역 '이종도(정성모)'는 바로 지역 건설업체 담합을 주도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등장합니다.
▲ <모래시계>의 한 장면 악역 '이종도(정성모)'는 바로 지역 건설업체 담합을 주도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등장합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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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리핀에서도, "2005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판매세율 인상을 결정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필리핀 정부의 움직임을 재정적자를 줄이고 부패를 척결할 의지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또 다른 노력으로 전력회사를 민영화했고, 외국기업의 광산투자를 장려했다"는 다분히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정책도 있었지만, '부패 척결 의지'가 외국인 투자자들을 자극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부패 척결', 어렵디 어려운 것은 사실이며 '타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누군가는 그리고 언젠가는 실현해야 할 '상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선공약, #모래시계, #올더 킹즈맨,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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