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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딴 포도를 운반하는 아만샤의 위구르 중년인. 아만샤에서 포도 재배와 수확은 철저한 공동 작업에 의해 이뤄진다.
 갓 딴 포도를 운반하는 아만샤의 위구르 중년인. 아만샤에서 포도 재배와 수확은 철저한 공동 작업에 의해 이뤄진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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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30여㎞ 떨어진 토욕구 유적지. 화염산 자락에 위치한 토욕구는 불교, 마니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투르판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30여㎞ 떨어진 토욕구 유적지. 화염산 자락에 위치한 토욕구는 불교, 마니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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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여름은 뜨겁고 황량하다. 강렬하게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사막 위를 걷다 보면 발아래 짓밟히는 모래가 천근 쇳덩어리마냥 육중함으로 다가온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중앙부에 위치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걷는 느낌이 딱 이러하다.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땅' 타클라마칸 사막. 타클라마칸의 가장 최북단에 자리 잡은 오아시스 도시 투르판은 죽음의 땅을 지난 여행자에게 복음과 같은 곳이다. 위구르어로 '팬 땅'이란 뜻을 지닌 투르판은 총면적 5만㎢ 중 80%인 4만㎢의 고도가 해면보다 낮다. 투르판 남쪽에 있는 아이딩호의 수면은 해발 -154m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392m의 사해 다음으로 저지대다.

여름 평균 기온이 50℃를 오르내리고 지표면은 최고 83℃까지 올라가는 불의 땅. 연평균 강수량은 16.6㎜에 불과하고 증발량은 강수량의 180배인 3000㎜에 달하는 건조한 모래의 땅. 멀리 톈산산맥에서 찬 공기가 몰아쳐 내려와 지난 2월에는 강풍으로 달리는 열차가 탈선하여 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친 사고까지 일으킨 바람의 땅.

투르판은 중국에서 가장 낮고, 가장 덥고, 가장 건조한 땅이다. 이런 혹독한 자연 환경을 지녔지만, 투르판은 돌궐어로 '풍요로운 땅'이라고도 불렸다. 그 이유는 척박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고대 투르판인들이 건설한 인공 지하수로 '카레즈'가 내린 축복에 있다.

한삽 한삽 흙파서 만든 5000㎞의 피와 땀

투르판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싼 톈산산맥. 톈산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은 카레즈를 통해 투르판 곳곳에 이른다.
 투르판 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싼 톈산산맥. 톈산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은 카레즈를 통해 투르판 곳곳에 이른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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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 3대 역사(役事)라 불리는 투르판 카레즈. 오직 원시적인 도구로 건설된 인공 지하수로이다.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 3대 역사(役事)라 불리는 투르판 카레즈. 오직 원시적인 도구로 건설된 인공 지하수로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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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톈산산맥에서 흘러내린 물은 카레즈를 통해 투르판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카레즈는 페르시아어로 '지하수'에서 유래된 말로,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2000여 년 전부터 건설된 것으로 추측되는 카레즈는 고대 투르판인들이 간단한 삽과 곡괭이로 한 삽 한 삽 지하 땅굴을 파서 만들어진 대역사다.

극심한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카레즈를 고안한 투르판인들은 한 사람이 모래를 파고 다른 사람이 바구니에 흙을 옮기며, 지상에 있는 사람은 지하로 뚫린 구멍으로 바구니를 두레박에 담아 퍼올렸다. 이렇게 극히 원시적인 방식으로 건설된 지하수로는 총연장 길이가 5000㎞로, 베이징에서 항저우에 이르는 대운하(3200㎞)보다 훨씬 더 길다.

오늘날 확인된 것만 해도 1000여 갈래에 이르는 카레즈는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서 물의 증발을 최소화했다. 모래와 강풍의 위협까지 수질을 보호하여 투르판을 옥토로 변모시켰다. 톈산산맥에서 흘러온 질좋은 물은 1년에 맑은 날이 300일 이상으로 강렬한 태양이 작열하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날이 268일인 투르판의 자연환경과 더해서 과일의 '여왕'인 포도의 재배를 가능케 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카스피해를 기원지로 꼽는 포도는 기원전 2세기 장건이 서역에 사신으로 파견되면서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투르판 일대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은 300여 가지에 이르고 포도나무 평균수명은 150년이나 된다. 9월 23일 중국 국영 <CCTV>는 "투르판의 포도 재배 총면적은 24만무(畝)에 달하고 한 해 총생산량은 50만여 톤에 달한다"면서 "생산되는 포도는 껍질이 얇고 육질은 풍성하며 당도는 최고 25%에 달하는 강한 달콤한 맛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고 보도했다.

척박한 자연을 이겨낸 투르판인의 달콤한 포도

어머니를 도와 포도 따기에 바쁜 한 위구르인 소녀. 8, 9월 포도 수확기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농사일에 바쁘다.
 어머니를 도와 포도 따기에 바쁜 한 위구르인 소녀. 8, 9월 포도 수확기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농사일에 바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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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는 아만샤 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이다. 오늘의 풍요를 이루기 위해 주민들은 각고의 피땀 어린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포도는 아만샤 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이다. 오늘의 풍요를 이루기 위해 주민들은 각고의 피땀 어린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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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기자가 방문한 투르판시 피찬현 루크춘진 아만샤촌도 전형적인 포도 재배 마을이었다. 아만샤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일부인 쿰탁 사막과, 손오공이 요괴의 방해로 불이 타는 투르판을 파초선으로 부쳐서 만들어졌다는 설화가 깃든 화염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흔히 투르판의 포도를 떠올리면 시 중심에서 동북쪽으로 6㎞ 떨어진 포도계곡을 연상한다. 화염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길이 8㎞, 폭 2㎞에 달하는 포도계곡은 투르판의 대표적인 포도농원이지만 관광객을 위한 명소일 뿐이다.

그와 달리 투르판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60여km 떨어져 있는 아만샤는 극소수 공무원과 공안을 제외한 주민의 99% 이상이 위구르 사람인 조용한 농촌마을이다. 아만샤에서 포도는 수백여 년 전부터 재배되었지만 오랫동안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카레즈의 물줄기가 아만샤까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

투르판 일대에서도 빈곤한 농촌마을로 손꼽혔던 아만샤가 오늘날 같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린 건 20여 년 전부터였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숨죽여 살아오던 마을 주민들은 개혁개방정책 이후 토지 사용권이 집안 가족 수에 따라 분배되자 가난을 몰아내기 위한 사업에 돌입했다.

주민들은 공동 투자와 작업을 통해 아만샤까지 물파이프를 연결하고 발전기를 구입하여 카레즈의 물을 아만샤까지 원활하게 공급했다. 아블릭 파하티(43)는 "온 주민이 가난을 이겨내고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다"며 "지금은 사시사철 공급되는 물 덕분에 쿰탁 사막 바로 앞까지 포도농원을 일구었다"고 회고했다.

"우리 주 수입원은 포도,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건포도로 만들기 위해 건조동에서 갓 딴 포도를 널리는 작업을 하던 우마르(63)는 "지금도 아만샤 사람들은 포도 재배기나 수확기에 주민간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서로 농사일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자식이 없어 3무의 토지 사용권을 분배받은 우마르는 "마을에서 비교적 가난한 소농에 들지만 한 해 수입이 1만 위안(한화 약 120만원)에 달한다"면서 "수확철에는 일거리가 많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의 수확을 도와주면서 부수입을 올린다"고 말했다.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을 운영하는 하와 한(38)은 "하나밖에 없는 딸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민박을 하지만 주 수입원은 여전히 포도 재배에서 얻는 소득"이라며 "포도는 신이 투르판 사람들에게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이다"고 자랑했다. 그는 "투르판 위구르인들의 소득 수준은 신장자치구에서도 최고 수준"이라며 "안정된 경제 기반을 지녀서인지 다른 지역 위구르인보다 타 문화에 대한 포용성도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신장 시간 아침 6시부터 시작된 고된 포도 널리기 작업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우마르. 아만샤에서 여성은 포도 따기, 남성은 운반과 포도 널리기로 분업 작업을 한다.
 신장 시간 아침 6시부터 시작된 고된 포도 널리기 작업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우마르. 아만샤에서 여성은 포도 따기, 남성은 운반과 포도 널리기로 분업 작업을 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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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에서 생산된 건포도량은 12만 톤을 초과했다. 투르판 건포도는 발달된 물류 덕분에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있다.
 투르판에서 생산된 건포도량은 12만 톤을 초과했다. 투르판 건포도는 발달된 물류 덕분에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있다.
ⓒ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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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 포도는 위구르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 줄뿐만 아니라 투르판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 6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올해 투르판 포도 수확량이 대풍년을 이뤄 건포도 생산량이 12만톤을 웃돌았다"면서 "우수한 품질의 건포도는 중국 각지 뿐만 아니라 미국·호주· 러시아 등지까지 팔려져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CCTV>는 "투르판 포도주는 전국적으로 아직 많이 유통되지는 않지만 생산업체는 11개에 달한다"면서 "지속적인 투자와 발전이 이뤄진다면 중국 포도주 산업의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카레즈의 맑은 물과 맛이 빼어난 포도의 향기가 깃든 투르판 포도주를 찾는 이가 중국 내에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당나라 시인 왕한이 '야광 잔에 가득 담긴 향기로운 포도주를 마시려니 비파 소리 말을 재촉하네. 그대여, 내 취해서 사막에 쓰러져도 비웃지 말게(葡萄美酒夜光杯, 欲飮琵琶馬上催, 醉臥沙場君莫笑)'라 읊었던 투르판 포도주. 건포도와 함께 세계인의 식탁 위에 놓일 날을 꿈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내 대부분 인명과 지명은 위구르어 현지 발음대로 적었습니다.



태그:#신장위구르, #투르판, #카레즈, #타클라마칸,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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