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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농부가 트랙터로 벼를 베고 있다. 대청호 주변.
 한 농부가 트랙터로 벼를 베고 있다. 대청호 주변.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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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활양식은 농경문화에서 나왔다

지난 일요일, 등산을 갈까 하다가 그만두고 들판을 쏘다니는 걸로 대신 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청호 가까운 들판으로 나갔다. 들판 여기저기에선 벌써 벼를 베는 농부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낫이 아니라 트랙터로 벼를 베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콩쥐가 팥쥐 엄마 쳐다보듯 낯설기만 하다.

아직 베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황금빛 들녘이 아름다웠다. 문득 조선 숙종 연간, 대전 송촌에서 살다간 여류시인 호연재 김씨(1681~1722)가 떠올랐다. 그는 현재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된 송용억가에 살았는데, 바로 집 앞에까지 논배미들이 잇닿아 있었다.

이 여장부는 가을이면 문을 활짝 열고 논에서 일렁이는 황금빛을 바라보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와는 달리 아들은 문 앞 논에다 연못을 파려고 했지만 끝내 허락지 않았다(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들은 기어이 연못을 파고 말았다). 호연재 김씨는 그렇게 화려한 꽃보다는 수수한 열매가 더 값지고 아름답다는 것을 안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의 시 세계가 조선시대 어느 여류시인보다 훨씬 폭이 넓고 깊은 것은 그의 그런 성품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벼는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한 식물이다. 1994년, 한국선사문화연구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발견한 볍씨를 방사선 탄소 측정을 했다. 생육연대가 지금으로부터 4천3백~5천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에게 쌀은  단순히 식량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구심점이기까지 하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활양식이 농경문화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 어렸을 적엔, 가을이 와 들판에 나락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그냥 놀게 놔두지 않았다. 허다 못해 노란 양은 주전자에다 먹을 물이라도 떠오게 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방과 후엔 새를 보러 논으로 나가야 했다.

따가운 가을 햇볕을 가리려고 논두렁에 조그맣게 지어 놓은 새막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참새떼가 날아들면 "새야 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말고 우리 밭에 앉지 말고 훠어이, 훠어이" 소리지르며 멀리 쫓았다.  "따악딱딱" 소리를 내도록 대나무를 쪼개 만든 기구로 새를 쫓기도 했다.

그밖에도 모찌기, 모내기, 벼베기, 타가 등 농사일이라고 생긴 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과 군대 시절엔 일손이 부족한 마을에 가서 단체로 모심기나 벼베기를 하기도 했다.

내 어쭙잖은 농사 경험 안에서 가장 짜증 나고 힘든 농사일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옷 속으로 까칠까칠한 나락 까락이 들어가서 질색했던 타작은 질색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태풍에 쓰러진 벼를 다시 일으켜 세워 묶는 일이 가장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스무 살 후반 이후엔 점점 논일에서 멀어졌다. 이젠 머릿속에 남아 있는 추억이라곤 집에서 먹는 밥보다는 들밥이 훨씬 맛있었다거나,  모내기를 끝낸 사람들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소 등에 올라타고 날라리를 불고 꽹과리나 장구 등 풍물을 치며 돌아오던 기억뿐이다.

익어가는 벼에서 민중의 참모습을 보다

시집 <우리들의 양식> 표지.
 시집 <우리들의 양식> 표지.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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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랜만에 이성부의 시집 <우리들의 양식>을 꺼내 읽었다. 1974년 9월에 샀던 책이다. 30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시집의 속지들이 벌써 누렇게 떴다.

이성부는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으로 등단했다. <백제행>, <전야>, <빈 산 뒤에 두고>, <지리산>등의 시집이 있다. 그의 시는 민중에 대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역사 속에서 짓밟히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껴안으려고 한다.

그렇게 공동체 삶의 가치와 도덕성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자꾸만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하는 시의 욕구를 차분히 누르는 것은 시가 내포한 서정성이다. 그의 시는 한껏 목소리를 낮춤으로써 읽는 사람의 공감을 더 크게 끌어낸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서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시 '벼' 전문

시 '벼'는 1973년 <문학과 지성>에 처음 발표된 시다. 시인은 벼라는 작물이 지닌 특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벼의 특성에서 민중의 참모습과 역량을 유추해낸다.

쭉정이는 고개를 빳빳하게 쳐든다. 그러나 잘 익은 벼는 고개를 점점 더 아래로 숙인다. 숙이면서 다른 벼에게 슬쩍 몸을 기댄다. 다른 벼는 못 이기는 척 이 어리광을 받아준다. 그렇게 벼는 겸손과 아량이 몸엔 밴 식물이다. 서로 의지하며 어우러져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시인의 찬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벼는 삶이 안겨주는 서러움에 결코 물들지 않으며 오히려 그 서러움에 맑게 자신의 영혼을 씻을 줄 아는 식물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바람 한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을 줄 알지만 제 가슴이 더운 줄 모르는 건 결코 아니다. 더운 가슴을 식히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벼의 삶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때가 되면 들판을 떠나면서 사람들의 목숨을 위해 쓰일 알곡을 남긴다.

이 땅의 농민과 민중에게 바치는 헌사

벼의 생리를 살펴보면 영락없이 민중의 행태를 닮았다. 민중이란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다.  서로 서로 몸을 묶으면 더욱 튼튼하게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사람들이다.

인간이 짓는 작물인 벼가 인간에게 설하는 가르침은 무엇보다 혼자 떨어져 살아갈 때보다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갈 때 더 큰 힘과 사랑을 갖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의 고비마다수레바퀴를 진전시킨 것은 극소수의 엘리트들이 아니라 민중이다.

제 한 몸의 희생을 통해 승리를 쟁취해본 경험이 있는 민중들은 새삼스럽게 자신들이 가진 힘을 각성하게 된다. 그리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더라도 끝내 피묻은 그리움에 도달하는 힘을 비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벼의 힘이자 민중의 힘이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희망이 좌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다란 열망으로 되살아오는 것이다.

시집 <우리들의 양식>은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 가운데 하나로 이 세상에 나왔다. 시집 속엔 다섯 편의 '백제'연작과 여덟 편의 '전라도'연작도 들어 있다. 그 옛날 백제의 땅이었던 전라도는 수탈의 공간이면서 희망의 공간이다. 1942년 광주에서 태어난 이성부 시인의 시편들 속엔 알게 모르게 이러한 유민(遺民) 의식이 녹아 있다.

시집 <우리들의 양식>에 실린 이성부의 시들은  80년 5월 광주 이후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속엔 처음으로 5월 광주를 시로 형상화했던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땅들아 하늘아 많은 사람아> 등 '5월시' 동인집이 갖지 못한 미덕이 있다. 목소리를 내리깔수록 호소력이 더욱 커진다는 것은 역설이다.

이성부의 시 '벼'는 수난의 세월을 말없이 견뎌온 이 땅의 농민과 민중에게  바치는 사랑과 존경의 노래다.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시가 절창이라서 더욱 그런가? FTA라는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양식이자 혼인 쌀의 존재가 위협받는 오늘의 시점에서 읽어보는 시 '벼'는 내 가슴에 알싸한 아픔을 남긴다.

이제 곧 가을 들판은 추수를 끝낼 것이다. 그러면 허수아비가 지키는 텅 빈 들판은 얼마나 쓸쓸하고 황량할까. 그때 우리는 새삼스럽게 벼가 가득한  들판의 초록빛과 황금빛이 봄과 가을에 걸쳐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빛과 위안을 던져주었는지를 깨닫게 되리라.


태그:#이성부 ,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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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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