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석을 하루 앞둔 날, 서울 하늘은 오랜만에 맑고 높았다. 고향을 향하는 발걸음은 흰구름 둥실 떠있는 맑은 가을하늘 덕분에 더욱 더 가벼웠을 것이다.

구리시 토평 한강둔치에는 계절마다 꽃들이 피어난다. 그것도 하나 둘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큰 물결을 이루듯 피어난다. 그 곳에 서니 하늘은 바다빛, 들판은 꽃물결이다. 야생의 꽃을 좋아하고 원예종 꽃을 은근히 차별하는 내게도 그들은 아름답게 다가왔다. 

바다를 닮은 가을 하늘에 백일홍이 두둥실 떠다닌다.
▲ 백일홍 바다를 닮은 가을 하늘에 백일홍이 두둥실 떠다닌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백일홍, 한 번피면 백일동안 화단을 장식해 주는 예쁜 꽃이다. 바다를 닮은 가을하늘에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새겨진 듯, 꽃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듯 하다. 하늘이 맑은 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아무리 하늘이 맑아도, 지천에 들꽃이 피어있어도 그들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아갈 때가 더 많은 세상이다. 가끔은 하늘도 바라보고 바다도 바라보고 강물도 바라보고 들꽃도 바라본다고 내 삶이 늦어지는 것은 아닐터인데 그렇게 쫓기고 살아간다.

한들한들 가을바람에 꽃파도가 몰아쳐 온다.
▲ 코스모스 한들한들 가을바람에 꽃파도가 몰아쳐 온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카오스를 잠재운 코스모스, 그의 꽃물결은 마치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같다. 작은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꽃, 분홍과 빨강과 흰색이 어우러졌을 뿐인데 세상의 모든 색깔이 다 모인 듯 하다.

그가 한 가지 색깔이었다면 얼마나 단조로웠을까? 여럿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은 신비다. 우리네 사람들도 각기의 색깔을 가지고 어우러져 서로의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을 터인데 자연을 떠나 살면서 자연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이 희망인 것은 여럿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 아침 이슬이 촉촉하게 맺혔을 때 꿀꽃을 따서 쪽 빨면 참 맛있었다.
▲ 샐비어 이른 아침 이슬이 촉촉하게 맺혔을 때 꿀꽃을 따서 쪽 빨면 참 맛있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이른 아침 샐비어의 꽃을 따서 입에 넣고 '쪽!'빨면 달콤한 꿀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야생의 꿀풀을 닮은 꽃, 그들이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서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몸을 낮추면 낮출수록 세상은 단순해 진다. 보이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인 그와 꽃인 그만 남는다.

하늘거리는 꽃, 가을바람에 춤을 추며 가을을 노래한다.
▲ 기생초 하늘거리는 꽃, 가을바람에 춤을 추며 가을을 노래한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기생초라는 이름만으로도 슬픈 꽃이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형상을 보며 기생들의 춤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자기들의 이름을 뭐라 부르든 자신들은 자신들의 모습으로만 피어나니까.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 그것이 이 꽃의 삶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이 없다지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꽃, 그러나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대충 피워내지 않는다. 그래서 꽃이다.

꽃과 하늘이 포옹을 하고 있다.
▲ 노랑코스모스 꽃과 하늘이 포옹을 하고 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노랑코스모스, 그들은 코스모스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오로지 한 가지 색깔로 피어나 있는 모습도 그렇고, 조금은 코스모스보다 강인한 줄기를 가진 것도 그렇다. 어쩌면 그들이 코스모스 틈에 피어나면 우리 추억의 필름에 남아있던 코스모스의 군락을 흐트려 놓을까 그들끼리 피어나게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또 그들대로 피어나는 것이 더 아름답다.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갈대와 한강과 나즈막한 산과 높은 하늘, 이런 풍광이 고향의 모습이다.
▲ 갈대와 한강 갈대와 한강과 나즈막한 산과 높은 하늘, 이런 풍광이 고향의 모습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갈대와 한강과 나즈막한 산과 가을 하늘이 어우러진 이곳, 이 곳이 나의 고향이다. 어릴적 친구들과 멱을 감던 한강, 가을이면 밤이나 도토리를 따러 다니던 나즈막한 동산들에 새겨진 추억들은 이제 아스팔트와 높은 빌딩숲들 속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고향에 있으면서도 고향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새삼, 오늘 같이 하늘은 바다빛, 들판은 꽃물결인 날은 어릴적 그 고향에 선 느낌이다. 오랜만에 고향을 느낀다.


태그:#가을하늘, #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백일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