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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6월 14일 <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에 '군 관사용 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이 보도됐다.
▲ . 지난 2003년 6월 14일 <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에 '군 관사용 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이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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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6월 14일자 주요 일간지에 '군 뇌물 사건'이 터졌다. 보도내용은 민간아파트를 군 관사용으로 매입하는 과정에서 현직 장군 및 중령들이 건설업체들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구기지 기무부대장이었던 이○○ 중령(당시 대령진급 예정자, 공사 28기)에게는 특정업체의 아파트가 군 관사용으로 선정되도록 부하 간부에게 압력을 행사했고, 장교 독신자 숙소(BOQ) 건립과 관련 업체들로부터 2000여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는 혐의가 추가됐다.

그런데 당시 공군 검찰이 발표한 이 중령의 혐의는 공소장(2003년 6월 5일)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와 공군 검찰이 언론에 발표한 내용이 전혀 달랐다는 것. 

장래가 촉망되던 한 기무사 부대장은 이렇게 '뇌물군인'으로 둔갑했다.

언론 발표 내용과 공소장 기재 혐의 완전 달라

'뇌물군인'의 누명을 쓴 이○○씨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임관해 1983년부터 2002년까지 기무사령부(보안사령부의 후신)에 소속돼 전역하기 직전 기무부대장을 지냈다.

이씨는 공군 검찰에서 '군 관사용 민간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을 발표할 당시 공군 복귀와 함께 대령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뇌물군인으로 둔갑시킨 사건이 터지자 눈물을 머금고 군복을 벗어야 했다.

이씨의 '억울한 사연'을 뒤쫓아가기 위해 잠시 시계를 2003년 5월로 돌려보자. 이씨는 2003년 5월 16일 밤 공군 검찰부장 K씨로부터 "임아무개 중령 사건의 참고인으로 출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5월 17일) 오후 이씨는 참고인으로 공군 검찰에 출두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신분은 '참고인'에서'피의자'로 바뀌었다. 공군 검찰이 참고인으로 밤샘조사를 받던 그를 새벽 3시 50분(5월 18일)께 긴급체포한 것.

이후 2003년 6월 13일 공군 검찰이 발표했던 이씨의 혐의는 ▲군 관사용 아파트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건설업체들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 ▲특정 건설업체의 아파트가 군 관사용으로 선정되도록 부하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장교 독신자 숙소 건립과 관련, 업체들로부터 2000여 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 등 세 가지였다.

그런데 같은해 6월 5일 공군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는 앞서 언급한 혐의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았다. 공소장에는 기무부대장 재직 시절 지인들에게 부대회식비나 전별금 등으로 받았다는 금품·향응 내역만 있을 뿐 '군 뇌물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는 뇌물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군 검찰은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 중 일부에 대해서는 재판 중 공소를 취하하기도 했다(2003년 8월).

공군 검찰이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와 전혀 다른 내용을 언론에 전격 발표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이씨가 "공군 검찰이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언론에 발표하게 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간부들을 잇달아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2006년).

특히 당시 수사를 맡았던 공군 검찰의 간부도 이씨가 검찰수사 내용과 무관함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간부가 윗선의 개입에 의해 수사라인에서 배제된 점도 석연치 않은 의혹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03년 6월 5일에 작성된 공군 검찰의 공소장. 공군 검찰은 이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같은해 6월 13일 언론에 발표했다.
 지난 2003년 6월 5일에 작성된 공군 검찰의 공소장. 공군 검찰은 이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같은해 6월 13일 언론에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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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검찰은 왜 무리하게 이씨를 '뇌물군인'으로 엮었을까?

그렇다면 왜 공군 검찰은 무리하게 이씨를 '뇌물군인'으로 엮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당시 검찰부장이었던 K씨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군 관사용 민간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을 지휘했던 K씨는 지난 2004년 5월 14일 이씨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중요한 증언을 해주었다. 즉 언론에 발표한 '군 관사용 민간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이 실체보다 훨씬 더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그 민영관사 비리의 핵심은 다른 데 있는데 왜 변죽을 건드리냐 말이지. 나는 그게 못마땅하다. 그 민영관사 비리라는 게 굉장한 뭐가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크게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나? 내가 (법무감에게) '민영관사건은 그렇게 죄질이 나쁜 건은 아니다'라고 보고를 올렸는데 (법무감이) '내가 검찰단장까지 했는데 이게 뭐냐, 약하다'고 했다…(중략) 

…개인적으로 감정이 그렇게 있다는 걸 몰랐는데 이상하게 편향적으로 가는 거야.이걸 대외적으로 발표를 할 수 있는지…. 기자회견할 때 내가 얼마나 난처했는지…(중략)…범죄가 있으면 본질에 따라서 깔끔하게 발표를 하고 처리하면 되잖아. 그런데 지저분하게…."

결국 이씨는 이 사건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희생양이었다는 주장이다. K씨도 "사사로운 욕심 하나 때문에 본질보다 더 크게 부풀려 그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보다 먼저 구속기소됐던 임○○ 중령은 2004년 1월 29일 작성한 사실관계 확인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수사로 인해 용어도 익숙치 않은 상태에서 공군 검찰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함께, 이 피고인을 표적으로 삼아 의도대로 짜맞추며 몰아가려는 수사방향 하에 저에 대한 검찰의 회유로 우선 본인이 다소 유리한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검찰 요구대로 진술하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앞서 K씨가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의 사욕' 때문이었을까? 녹취록에 나오는 이씨와 K씨의 대화 내용을 들여다 보자.

K씨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중략)…그 양반(법무감) 오자마자 노골적으로 (법무)병과가 장군 진급이 되면 뭐 엄청 좋은 게, 소위 계급으로 인한 상황변화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진정한 평가가 장군 진급으로 하는 겁니까? 공명심, 공명심이, 하여튼 뭐…."

이씨 "기무부대장 날리고 장군도 한명 날렸는데, (그럴 만한) 역사적인 그런 (게) 어디 있나? '나 장군 될 만한 충분한 자격있다'…."

K씨 "응. 공군 최초(법무출신 장군) 아니냐 이거죠. (중략) 이 대령님도 이 건(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와 울분이 남아 있겠습니까?"

이러한 증언을 근거로 이씨는 "공군 최초로 법무출신 장군이 되겠다는 (법무감의) 출세 욕심에서 비롯된 한건주의"라며 "이는 공군 검찰의 불법 강압수사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군 관사용 민간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을 지휘했던 K씨는 지난 2004년 5월 14일 이 사건이 실체보다 훨씬 더 부풀려졌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녹취록의 일부.
 '군 관사용 민간아파트 매입 뇌물사건'을 지휘했던 K씨는 지난 2004년 5월 14일 이 사건이 실체보다 훨씬 더 부풀려졌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녹취록의 일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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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론 '유죄' 확정... 하지만 군 검찰-법원의 불법행위에 '반기'

물론 이씨는 현재 법적으로는 '유죄'를 인정받은 상태다. 지난 2003년 8월 1심(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같은해 12월 2심(고등군사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

군 검찰과 법원을 신뢰할 수 없었던 이씨는 제3기관이나 군 5부 합동조사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또 지난 20005년 제기한 대법원 상고마저도 기각됐다.

앞서 언급했듯 이씨가 인정받은 유죄의 내용과 공군 검찰이 언론에 발표했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재판은 언론에 발표했던 내용이 아닌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법원에서 인정한 혐의에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판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저는 지금 군 검찰의 불법수사 관행과 이런 수사결과를 아무런 검증없이 수용하고 피고인을 법정에서 퇴정시킨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한 점 등
군사법원의 제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군 판사와 군 검찰이 서로 보직을 이동하며 협조하는 현행 군 법무체제하에서 올바른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씨는 1년여 동안 검찰의 불법수사를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들을 찾아내 자신을 수사한 검사(허○○)와 법무감(서○○), 2심판사(박○○)를 직권남용 등으로 고소한 상태다.

여기에는 불법체포· 감금, 밤샘수사, 영창내 24시간 감시, 진술강요, 강제서명, 긴급체포서 날조, 허위사실 공표, 증인진술 요지 미고지, 공판조서 허위기재, 정정하지 않은 공판조서 대법원 송부 등이 포함돼 있다.

    
이씨보다 먼저 구속됐던 임아무개 중령은 자필로 된 사실관계 확인서에서 "검찰이 이씨를 표적으로 삼아 의도대로 수사를 짜맞추며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이씨보다 먼저 구속됐던 임아무개 중령은 자필로 된 사실관계 확인서에서 "검찰이 이씨를 표적으로 삼아 의도대로 수사를 짜맞추며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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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무부대장, #비리군인, #군 사법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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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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