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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제작자 김경훈 예감 대표.
 <점프> 제작자 김경훈 예감 대표.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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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3가에 있는 시네코아 건물. 언제부턴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관광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곳이다. 건물 지하에 '코믹마샬아츠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점프>의 전용극장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객이 많이 찾는 까닭에 매표소 안내문이나 공연안내서도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중국어로 각각 준비해놓았다. 공연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 모습도 이젠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점프> 전용관이 문을 연 때는 지난해 9월 1일. 지난 주말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점프> 제작사인 예감은 지난 1년 동안 전용관에서 619회 공연을 통해 20만3천여명의 관객을 모았다고 밝혔다. 객석점유율 89%에 매출은 약 50억원. 특히 관객 중 외국인이 5만여명으로 25%에 이르렀다.

<점프>가 전용관 무대에만 오른 것은 아니다. <점프>는 2003년 7월 우림청담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세계 12개국 20개 도시에서, 20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50만명이 넘는 관객과 만났다.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점프'를 거듭하며 불과 4년 사이에 대표적인 한류문화상품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오는 10월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 오픈런(기한을 정하지 않고 흥행이 되는 한 계속 공연하는 방식)으로 진출함으로써 또 한번의 '점프'를 예고하고 있다.

<점프>가 그동안 '점프'를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과 그 미래가 궁금했다. 개관 1주년에 즈음해 예감 사무실에서 <점프> 제작인 김경훈 대표(34)를 만났다. 마침 그가 <점프>의 후속작인 <피크닉>(해외 공연제목은 <브레이크아웃>) 공연팀과 함께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The Edinburgh Fringe Festival)'에 참가하고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3년 연속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우승'

옛 스코틀랜드왕국의 고도(古都)에서 8월 한 달 동안 펼쳐지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프랑스의 아비뇽축제와 함께 유럽 최대의 공연예술축제로 손꼽히는 행사. 올해로 61회째를 맞아 2050개 팀이 250곳에서 공연을 펼쳤다.

- 에든버러에서 <피크닉>의 공연 성과는 어땠는지?
"이미 <점프>로 2005년, 2006년 참가해 '솔드아웃(Sold-out)상' 등 에든버러가 주는 상은 다 받아봤거든요. <피크닉>도 8월 3일부터 25일까지 총 27회를 공연했는데, 이번에도 솔드아웃상을 받았어요. 사실상 3년 연속 에든버러 우승을 한 셈이죠."

<피크닉>은 '죄수들의 유쾌한 탈주극'을 비보이댄싱과 코미디로 풀어낸 작품. '익스트림댄스코미디'라 이름 붙인 새 공연 장르에 유럽 관객들은 열띤 반응을 보였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가 잇따랐다.

- 3년 연속 '우승'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작품을 구상할 때 기본적으로 월드와이드 시장을 겨냥합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가 있어야 하죠. <피크닉>은 죄수들의 탈옥이야기인데, 그런 설정은 미국에도 유럽에도 한국에도 아프리카에도 있어요. 거기에 슬랩스틱 코미디 요소가 저변에 많이 깔려 있거든요.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코미디의 기초적인 요소죠. 이런 공감으로 관객과 소통이 잘된 점이 첫 번째구요. 두 번째는, 프로덕션의 힘이 중요해요. 홍보, 마케팅, 현지 극장과 프로모터 사이의 비즈니스가 필수죠. 작품만 좋으면 되지 않나 생각하는데 그래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거죠. <점프> 때 쌓은 프로덕션 노하우가 <피크닉>에 많이 도움이 됐죠."

지난 8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 익스트림 댄스 코미디 <피크닉> 지난 8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 (주)세븐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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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은 에든버러축제 참가 전 이미 지난 4월 영국 런던 피콕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국내 관객들에겐 선보이기도 전이었다. 대개 국내 공연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들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 국내 공연에 앞서 해외에서 초연(初演)한 까닭은?
"저희는 모든 시장은 똑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럽도 우리 시장이고, 북미․아시아도 우리 시장이니까 그중에서 평가를 빨리 받을 수 있는 시장, 또 그중에서도 유력한 시장에서 초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해외에서 초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제목을 국내 공연 제목과는 달리 <브레이크아웃>으로 단 까닭은?
"'피크닉'이란 단어에 담긴 정서가 우리와 유럽이 달라요. 한국에선 '피크닉'이라고 하면 탈옥수들이 소풍 가는 마음처럼 자유와 신세계를 향해서 떠나는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잖아요. 그런데 유럽지역에선 '피크닉'이라고 했을 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무료하고 낮잠을 자고 싶은, 그런 나른한 느낌으로 다가오거든요. 저희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피크닉'으론 통하지 않을 듯싶어 '브레이크아웃'으로 바꾼 거죠."

- 어떻게 비보이댄싱을 공연 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됐나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저희는 한국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일 테고, 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해요. <점프>의 기초는 태권도였습니다. 태권도는 누가 뭐래도 우리가 가장 잘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비보이댄싱도 한국이 제일 잘한다는 거죠. 이 소재를 가지고 더 멋지게 공연작품으로 창작해낸다면, 곧 그 넘버원은 한국을 빛내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한국이 생각해내고 한국이 만들어내고 한국이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비보이만으로는 공연으로 풀어내기 힘든 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태권도를 '마샬아츠퍼포먼스'로 풀어냈듯이, 비보이를 '익스트림댄스코미디'로 풀어낸 거죠. 비보이 춤만 보여준다면 5분이 안 가서 싫증나겠지만, 공연으로 풀어냈을 때는 1시간 반도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거든요."

집 팔고 차 팔고, 대리운전 하고...

<점프>를 위한 도움닫기는 김경훈 대표를 포함해 '멋진 공연으로 세계를 흔들고 싶었던' 대학동창 4명의 의기투합으로 출발했다. 2000년 봄 어느 날 함께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작품 구상을 하다가 최철기 현재 총감독이 '태권도' 얘기를 꺼냈다. 모두 "유레카!"를 외쳤다. 최 감독은 <난타>의 세 번째 연출로 해외공연을 다니며 마샬아트 시장, 특히 태권도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당시만 해도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에서도 공연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들을 정도였어요. 지금도 70년대 사진들이 돌아다니니까요. 그렇지만 태권도만큼은 올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하고, 태권도 하면 열 명 중에 네댓 명은 한국이라고 생각하죠. 예전에도 물론 태권체조, 태권에어로빅이 있었지만 좀 더 쇼적으로 만들자는 발의가 있었던 거죠."

4명이 제작, 연출, 기획, 작품을 각각 맡고 '배우'들을 모집했다.

"처음엔 유단자를 데려다가 연습을 시작했는데 연기가 안 되는 거예요. 무대 위에 서면 어떤 누구도 배우가 돼야 하는데…. 그래서 거꾸로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아크로바트와 무술을 연습시켰죠. 처음에 잡았던 시간이 1년 정도였는데 3년 넘게 걸렸어요. (2003년 7월 첫 공연 때까지) 3년 동안 수입은 없는 상태에서 지출만 있다 보니까 모두 힘들었어요. 배우들은 야간대리운전하고, 저는 집도 팔고 차도 팔았죠."

현재 <점프> 공연팀은 5개 팀(1팀은 9명으로 구성). 현재 연습 중인 3개 팀을 추가하면 연말부터는 8개 팀이 모두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지난 6월엔 <점프> 첫 무대에 섰던 배우 가운데 3명이 '은퇴식'을 했다.

"<점프> 초연 때는 대부분 대학 갓 졸업해서 1, 2년 정도 대학로에서 배우생활을 하고 있던 후배들이었어요. 벌써 7년이 지난 셈인데요. 가장 왕성한 젊은 시절을 다 여기서 보낸 거죠(웃음). 이제는 세 명 다 코치가 돼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처음부터 지금처럼 성장하리라고 '예감'했었나요?
"당시 저희가 세웠던 목표는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하는 거였어요. 아직 그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죠.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한다는 의미는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를 공고하게 거쳤다는 의미거든요. 웨스트엔드에서 좋은 성과가 있었고, 이번에 브로드웨이를 가고, 2, 3년 후 라스베이거스 진출을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꿈은 항상 높게 가지라고 했으니까 그때 저희의 목표는 '태양의 서커스'를 따라잡는 거였어요. 20년 안에 '태양의 서커스'를 따라 잡겠다, 20년 안에 매출 4조를 하면 따라잡지 않겠나. 되든 안 되는 생각은 얼마든 해볼 수 있는 거니까요(웃음)."

"점프는 유럽 시장에서 마샬아트퍼포먼스의 바이블이다."
▲ 영국 웨스트엔드 피콕극장의 <점프> 공연 "점프는 유럽 시장에서 마샬아트퍼포먼스의 바이블이다."
ⓒ (주)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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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세계 최대의 서커스극단. 전통 서커스의 곡예 요소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예술적으로 재창조해냄으로써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척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공연기업이다. 김 대표와 그 친구들 역시 블루오션을 떠올렸다. <점프>를 시작할 때는 타악 퍼포먼스인 <난타>가 국내외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였다.

"보통 창작하고자 할 때 1등을 달리고 있는 콘텐츠를 모방하려는 성향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점프>를 시작할) 당시에도 타악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거든요. 저희 생각은, 1등을 따라잡는 건 별따기보다 힘들다, 아무리 잘해도 2등일 것인데 구태여 왜 그 시장을 가느냐는 거죠. 아무도 가지 않은 시장에서 폭발력이 보인다면 그 시장에 가서 먼저 깃발을 꼽고 시장을 넓혀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공연 작품은 없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마샬아트 시장에 주목했고, <점프>로 마샬아트 공연예술시장을 개척하며 첫 깃발을 꼽았다.

"아마 타악 퍼포먼스의 바이블을 물으면 <스톰프(Stomp)>라고 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유럽 시장에서 <점프>는 마샬아트 퍼포먼스의 바이블입니다. 내년쯤 되면 확실하게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견고해질 텐데요. 더군다나 <점프>는 지금 냉정한 의미에서 소형공연 또는 중소형공연이거든요. 아직 마샬아트 퍼포먼스에 대한 중형 내지는 대형공연은 없어요. <점프> 이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다면 '태양의 서커스'를 따라잡는 것도, 또 그 이상을 가는 것도 꿈같은 얘기만은 아니죠."

10월 오픈런으로 오프브로드웨이 진출

꿈을 향한 여정에서 하나의 큰 시험대가 오는 10월로 예정돼 있는 오프브로드웨이 진출이다. <점프>는 9월말 2주에 걸친 프리뷰에 이어 10일 7일부터 오프브로드웨이 유니온스퀘어극장에서 오픈런으로 공연한다. 김 대표는 그 의의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점프>의 공연장인 유니온스퀘어극장 자체가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 김 대표는 "유니온스퀘어극장은 17번가 메인지역에서 역사도 오래됐고 가장 좋은 극장 중 하나"라면서 "유니온스퀘어에서 공연하는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다.

"두 번째로는, 보통 브로드웨이에 진입할 때 북미투어를 거치곤 합니다. 검증을 거친다거나 분위기를 몬다든가 하기 위해서죠. 그러나 <점프>는 북미투어 없이 바로 오프런으로 입성하는 거거든요. 그건 <점프>의 위상을 말해주는 거죠."

<점프>의 위상은 세 번째 의의로 꼽고 있는 계약조건에서도 드러난다. 예감은 이번 뉴욕 진출 과정에서 세계적인 공연매니지먼트 회사인 CAMI(콜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와 손 잡고 손잡고 '슬랩 해피 프로덕션'이란 미국 법인회사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그를 통해 "손익분기점이 넘기 전까지는 매출의 9%, 이후에는 12%를 로열티로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거기에다 매달 프로덕션비로 8만5천 달러를 받고, 또 투자지분 40%에 대한 수익도 챙길 수 있게 됐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우리가 아는 웬만한 작품의 조건과 비교해도 좋은 조건이에요. 한국 창작 작품으로 이런 사례는 없었어요. 저희로서는 물론 너무나도 기쁜 일이죠. 나아가 한국 작품들이 브로드웨이란 세계시장에서 더 많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여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점프>는 더 큰 시장으로 또 한번 '점프'할 수 있을까.
▲ 코믹 마샬아츠 퍼포먼스 <점프> <점프>는 더 큰 시장으로 또 한번 '점프'할 수 있을까.
ⓒ (주)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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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밝혔듯이 <점프>는 이번에 미주대륙에 첫발을 내딛는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2005년 <점프> 해외공연 이후 북미 쪽 20군데 이상에서 초청이 왔는데 일부러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중요한 시장에 함부로 들어가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요. 보통 '우리 작품 브로드웨이 갔다 왔어' 그러는데, 정작 브로드웨이에선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앞에 놓인 긴 탁자를 가리키며) 이 탁자가 브로드웨이라면 (탁자의 한 구석을 가리키며) 요기서 (공연하고 와서)…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저희는 젊은데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하는 거죠. 실패하더라도 제대로 부딪혀서 완벽하게 깨지든지, 완벽하게 성공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욕심 때문에, 확실하게 준비될 때까지 계속 기다렸던 거죠."

에든버러축제도 2004년에 처음 신청했지만 준비가 부족하다는 판단으로 결국 그해 출품을 포기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더 준비했다. 특히 유럽 최고 코미디 연출가인 데이비드 오튼을 초빙해 "한국적인 정서(웃음)을 유지하면서도 월드와이드에서도 통용되는 정서(웃음)으로 거듭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는 2년 연속 '솔드아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도 <점프> 팀은 캐나다의 코미디 연출가 짐 말란을 '쇼닥터'로 초청했다. 짐 말런은 한국에 머물며 미국인 관객 정서에 맞게 <점프>의 세세한 부분을 손질했다. "예를 들면 <점프>에서 사위가 쓰고 나오는 검고 동그란 테의 안경은 한국에선 모범생 같고 어수룩한 이미지인데, 그곳에선 게이들이 많이 쓰는 안경이래요. 자칫 혼동이 일어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 쓰는 사각테 안경으로 바꿨다. 이런 '디테일' 하나에까지 신경 쓰는 철저한 준비과정이 오늘의 <점프>를 만들었다.

"<난타>가 없었다면 <점프>도 없었어요"

국내 작품이 뉴욕에서 장기공연을 벌이는 것은 <점프>가 처음은 아니다. 2002년 <난타>도 오픈런 방식으로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하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 채 1년 반 만에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얘기를 끄집어내자 김 대표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난타>는 한국의 창작시장을 부활시키고 해외시장을 개척한 면에서 '신 같은 존재'"라고 먼저 말했다.

"<난타>가 해외에서 어떻게 인정받든, 그렇게 교두보를 만들어놓은 작업이 없었다면 <점프>도 없었을 겁니다. 비즈니스 형식은 다를지라도 이미 (<난타>가) 개척한 판로가 있었기에 저희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죠. 그런 점에서 <난타>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1년 반을 공연하고, 그 과정에서 주변 관계자들과 맺은 성과는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몇 가지 수치로 판단할 건 아니죠."

덧붙여 <점프>가 미국시장에서 맞이할 미래에 대해선 "계약 조건, 현지 반응, 극장 주변환경 등이 이미 성공한 A급 선수 대우로 어느 정도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고 낙관했다. 다만 "저희는 한인이나 동포 분보다는 현지 주류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거든요, 한두 달 게임이 아니라 2~5년을 보고 있기 때문에 현지 미국인들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성패의 열쇠가 되겠죠"라고 덧붙였다.

조금 짓궂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시 <난타>의 제작사인 PMC프로덕션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비보이댄싱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에서도 PMC는 <피크닉>에 앞서 <비보이코리아>를 시장에 내놓았다.

- <난타>의 PMC를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있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두 분 대표님(이광호·송승환)은, 개인적으로 본다면, 선생님 같은 분이시죠. 저희가 보고 듣고 배우고 자란 세대들이거든요. 또 청출어람 할 수 있도록 계속 격려해주시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의무라면 의무라고 생각되죠. 경쟁상대가 만약 있다면 세계시장을 놓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 공연시장 규모는 3천억원밖에 안 되는데, 산업이라고 치기도 힘든 구조거든요. 우리 경쟁상대는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은 아시아 공연시장의 브레인"

김경훈 대표는 <점프>가 해외시장에서 보여준 활약에 힘입어 지난해 한국공연프로듀서연합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공연프로듀서상'을, 또 지난 6월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 주최 제1회 한류대상 시상식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 한류, 특히 한국 문화상품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공연 분야만 놓고 보면 전 세계 그 어디보다 가능성이 많고, 실제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세계 공연시장의 양대 산맥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거든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1등이 곧 세계 1등이 되죠. 그런데 지금 브로드웨이의 많은 창작자분들이 주변으로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높은 임대료, 많은 제작비로 리스크가 높아졌기 때문이죠. 반면 지난 3, 4년 전부터 아시아붐이 불고 있어요. 개인적인 판단으론 10년 안에 아시아시장이 전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아시아가 모두 3분의 1씩 차지한다는 얘기인데, 그럼 아시아 1등이 곧 세계 1등이 되는 것이죠."

<점프> 제작자 김경훈 예감 대표.
 <점프> 제작자 김경훈 예감 대표.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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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 대표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아시아에서 창작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일단, 일본은 아니라고 봐요. 현재 성과물로만 봐도, 일본이 만든 창작 콘텐츠로 세계시장을 완연하게 석권하고 다니는 게 없어요. 남은 시장은 중국과 한국일 텐데, 시장 파이로 보면 중국시장이 아시아시장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 시장을 누가 움직이느냐는 거거든요. 창작능력, 제작능력, 운영능력, 행정능력의 첫 번째는 한국이라는 거죠. 결국 아시아시장을 움직이는 브레인은 한국이 될 것이고, 현재 가장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는 그 근거로 우선 "한국인의 창의력·창조력에 관한 DNA"를 높이 평가하고, 다음으로 '대학로의 존재'를 들었다.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 인큐베이팅 시장과 능력은 한국이 현재 최고 수준이에요. 대학로 같은 시장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이런 조그만 시장에 극장 1백 개씩 두고 있는 데는 없어요. 일본은 젊은 친구들이 외면하지만 한국은 죽고 살기로 하고 있어요. 또 저희가 라이센스 제작들을 수년 동안 하면서 쌓은 제작 노하우와 시스템은 아시아 최고예요.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 실패하더라도 계속 창작물이 나올 수 있죠."

- 대학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더라도 지금의 현실은 비참할 정도가 아닌가요?
"맞습니다. 최근엔 공연작품에 대한 국가나 기업의 지원도 활발하지만 사실 <오페라의 유령>이 롱런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길어야 5년이에요. 3년 전만 해도 비보이에 국가가 지원한다고 하면 저게 무슨 얘긴가 했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시작한 지 얼마 안됐으니, 이런 것이 저 밑(대학로)에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죠. 그렇지만 열악한 대학로시장도 풍성하게 갈 수 있는 부분들이 나오리라고 생각해요."

예감 차원에서는 실제로 대학로와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들어 대학로에 약 40평 내외의 무료연습실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연습실을 빌리는 비용조차 부담스런 작은 극단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다. 

부자배우들이 가장 많은 극단을 위하여

4명으로 출발한 <점프>는 현재 배우 70여명, 스태프 10명 정도의 규모로 커졌다. 예감의 사무실 직원도 약 40명. 거기에 별도법인((주)세븐센스)으로 운영하고 있는 <피크닉> 쪽의 배우와 스태프 30여명을 더하면 김경훈 대표가 CEO로서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150명이 넘는 셈이다. 또 그는 <점프>, <피크닉>의 제작자로 직접 창작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점프> 제작자 김경훈 예감 대표.
 <점프> 제작자 김경훈 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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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과 창작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는지?
"솔직히 마음은 창작 쪽에 많은데요,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아요(웃음)."

- 제작자로서 하는 역할은?
"프로듀서의 여러 역할 중 저는 전반적이고 총괄적인 걸 진행하죠. 특히 작품에선 작품의 정체성 부분, 작품이 어떤 요소를 갖춰 어떤 시장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첫 번째 단추는 꼭 낍니다. 다른 부분은 전문가들이 붙어야 되거든요. 작품의 정체성 규정만큼은 목숨을 걸고 관여해요. 작품이 하루를 살더라도 영광스럽게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규정하기 때문이죠."

- 경영자로서 예감을 어떤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부분들을 놓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점프>를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 중 하나가 '최고의 부자 배우들이 가장 많은 극단을 만들어보자'였거든요. 따라서 첫 번째로는 함께하는 친구들이 빨리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두 번째는 세계 최고의 선진화된 공연시스템을 갖추고자 하는 거죠.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춰야만 어떤 환경에서든 견뎌내고 좋은 창작품이 나올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론 저희가 더 성장했을 때 얻을 경제적 이윤이 투자자에게도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고, 또 주위 환경과 어울려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부분까지 갈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예감은 창단 초기부터 1% 나눔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 예감 나름으로 차별화된 창작시스템이 있다면?
"가칭 크리에이티브 팀을 운영하고 있어요. 작품이 한번 (무대에) 올라가면 연출이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는 크리에이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총감독, 상임연출, 연출, 조연출, 이런 인력들이 <점프>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들까지도 환기시킬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접목하고 있죠. 이 자체가 저희의 R&D 분야라고 봐요. 또 몸을 쓰는 부분이 많다 보니까 팀닥터 선생님을 따로 두고 있어요. 국가대표 축구선수단에 전문 닥터가 붙듯이 <점프> 팀에 전담 의사 선생님 3분이 계시거든요. 이분들이 배우들의 신체 관리, 트레이닝 등 여러 지원을 하고 있죠. 또 별도로 대학로 사무실에 창작개발팀을 둬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에 관한 부분을 고민하고 있구요."

나아가 12월 현재 입주하고 있는 건물 내 1개 층에 트레이닝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트레이닝센터에선 배우들의 연습과 교육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그동안 막 달려오면서 축적된 부분을 체계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앞으로 저희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창작을 하는 데서 다음 세대를 열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기초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이제 갓 유치원을 졸업했을 뿐"

지난 6월 최정화 외국어대 교수는 <엔젤 아우라>(중앙북스)란 책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전 세계 각 분야별로 성공한 리더 31명을 소개하며, 김경훈 대표를 특히 '문화지수'가 높은 리더로 꼽았다. 

- 30대의 성공한 CEO로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웃음, 얼굴까지 붉어졌다)… 질문이 좀… 말씀해주신 건 감사한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구요. 사무실이 좀 좋아진 건 있지만(웃음), 활동하는 데 별로 달라진 건 없어요. 아직 성공한 건 절대 아니죠. 엄밀하게 보면 이제 예감이라는 회사가 유치원을 졸업한 거겠죠. 초등학교 입학하고, 잘해보려고 지금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거죠. 메이저급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고 봤을 때 저희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죠. 많이 이뤄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거든요. 아마 라스베이거스까지 진출하고 해외 프로덕션만 6개 이상 구축한다든가, 차기 작품과 차차기 작품까지도 런칭한다든가, 국내에서 극장들을 좀 더 확보한다든가, 이 정도가 됐을 때 뭔가 좀 이뤘구나 생각할 수 있겠죠."

단순히 욕심만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을 위한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하고 있다. 올해 10월 <점프> 오프브로드웨이 진출, 12월 <피크닉> 전용관 오픈, 2008년 부산과 중국 베이징에 전용관 오픈, 2009년 일본과 영국 웨스트엔드에 전용관 오픈, 그리고 2010년 <점프>의 대형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샬아츠2(가제)' 초연, 라스베이거스 입성….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개인적인 희망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워낙 글에 소질이 없어서….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양의 서커스' <카(KA)>를 보고 있다가 너무 낙담을 했어요. 내가 죽기 전에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너무나도 상상을 초월하는 거예요. 갑자기 공연을 하기 싫어졌어요. 조금 회복 기간을 거치며 들었던 생각이, 그 작품으로 사람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 만족감을 안고 돌아가고, 실제 그 반향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죽기 전에 정말 그런 후세에 남길 만한 작품을 한국사람이 만들었노라고, 저희가 만들든, 저희가 못 만든다면 그런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거였죠. 한국이 남긴 세계적인 유산이 많겠지만 공연작품 중에서도 뭔가 있기를 바라고, 그런 작품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이미 준비했던 질문은 끝마쳤지만, 그의 말에 용기를 내어 <점프>를 보며 아쉬웠던 점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 <점프>와 '태양의 서커스' <퀴담>을 보면 차이가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점프>도 재미는 있지만 <퀴담>과 같은 감동은 안 느껴지거든요. '몸개그' 같다고 해야 할까요?
"차이야 굉장하죠. 그러니까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은 거죠. <점프>는 원래 웃기려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야 있겠지만, 그건 변명이죠.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다시 그 감동을 끌어내는 게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아직 많이 미약하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기에 또 '으쌰 으쌰'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태그:#김경훈, #예감, #점프, #피크닉,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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