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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TV의 <출발! 비디오여행>
한국영화의 앞날이 중대 기로에 섰다는 이야기는 이젠 노상 듣는다. 한두 해 전만 해도 할리우드 개봉작들을 가뿐하게 누르던 한국 영화는 요즘 할리우드 개봉작들이 점령한 집객 상위 순위로 진입하기에도 벅차 보인다.

승승장구하던 한국영화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분석과 평가가 많다. 잘 나갈 때에는 배우도, 감독도, 스태프도, 기자도, 관객도 모두 '영화인'으로 '단결'했으나, 간단치 못한 문제가 드러난 지금은 무턱대고 뭉칠 일이 아니라 옥석을 가리고 주변을 정비해서 확실한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 터닝 포인트는 작년부터 연이어 터져 나온 한국영화 제작비의 거품이었다. 거품의 주도자로 지목된 당사자는 시장 규모 및 제작비와 비교했을 때 너무 높아진 스타 배우들의 개런티였다.

이는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인건비 및 노동 조건과 대비되면서 대중적 공분을 샀고, 스크린쿼터 반대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지지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이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공방전이 신문 방송의 핫이슈가 되었으나, 그래서 현재 스타 배우들의 높은 개런티가 얼마나 하향 조정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뉴스는 별로 없다.

스타 배우나 감독의 개런티를 현실에 맞게 낮추는 문제가 영화 제작의 내적인 이슈의 하나라면, 그 영화를 알리는 데 드는 홍보 및 마케팅의 문제는 영화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서 가장 직접적인 이슈일 것이다.

이 점에서 TV 방송 3사가 매주 토ㆍ일요일 낮에 방영하고 있는 소위 '영화정보 프로그램'들이 한국 영화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며 또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TV 방송 3사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이 영화 시장과 관객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를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TV 영화정보 프로그램의 삼각동맹

현재 방송 3사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은 MBC <출발 비디오 여행>, SBS <접속! 무비월드>, KBS <영화가 좋다>이다. 이 중 장수 프로그램의 출생년도를 따져보니 벌써 10년 세월이 지났다. 10년 전에는 동영상과 사운드를 함께 전달하는 홍보 매체라곤 지상파 TV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최신 영화의 예고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 매체로서 지상파 TV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상파 TV의 경쟁자인 케이블 TV의 무수한 채널을 빼도 인터넷과 휴대폰 등 개인 미디어를 통해 얼마든지 예고편을 볼 수 있다.

이런 조건인 데도 지상파 방송 3사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은 최신작 영화의 홍보 영상물을 틀어주는 데에만 급급하다. 코너 이름과 진행자의 얼굴만 다를 뿐 사실상 서로를 복제하며 뭐가 뭔지 분간하기 힘든 꼴을 하고 있다. 심지어 지상파 TV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이란 영화 홍보의 대행 창구에 불과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럼에도 도무지 개선의 기미가 안 보인다. 그냥 쭉- 간다. 그 배짱 뒤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그것은 영화 홍보사-방송사-시청자가 '거저 주고 바로 틀고 날로 먹는' 삼각동맹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 SBS-TV의 <접속! 무비월드>
ⓒ SBS
영화 홍보사는 개봉 시기에 맞춰 예고편, 메이킹 필름, 영화 하이라이트, 뮤직 비디오 등의 '때깔' 좋은 최신 자료를 '왕창' 방송사에 안긴다. ('영화정보 프로그램'은 외주제작사가 만든다.) 같은 시기에 딱 맞춰 주면, 방송 3사는 때 놓치지 않기 위해 개봉 대기작을 틀기에 바쁘다.

그리하여 매주 최신 영화들의 동일한 예고편이 방송 3사의 전파를 도배한다. 약간의 설정과 내레이션과 코너의 이름만 다를 뿐이다. 한 홍보사에서 받은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상호 경쟁해야 할 방송 3사가 똑같이 홍보해주는 것이다.

한국영화 홍보사나 외국영화 수입사 입장에서는, 더욱이 지금처럼 장사가 잘 안 될 때에는 방송 3사에 집중해서 자료 뿌리고 주연 배우들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이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고 효과는 극대화시키는 '짭짤한' 방법이다.

방송사들도 자체 기획과 제작으로 '영화정보'를 생산하는 데 비용을 들이지 않는 대신 진행자들만 쓰면 되는 '홍보대행 프로그램'의 저비용 체제로 외주제작사에 맡겨두고 개봉작들의 동영상 위주로 적당히 시청률 유지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거저 주고 바로 틀고' 하는 사정이다.

그럼 '날로 먹는' 자는 누구인가. 영화 홍보사도,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내보내는 방송사도, 물론 '날로 먹는'다. 그렇게 날로 먹는 일종의 담합에 따라오는 '눈요기 떡고물'에 길들여진 시청자가 마지막 '날로 먹는' 주인공이다.

곧 개봉할 예정인 영화의 예고편, 하이라이트, 스포일러를 남발하는 '영화정보 프로그램'에 매주 노출되는 시청자들은 사실 그 영화에 대해 '볼 것 다 본' 셈이다. 볼 일 다 본 영화를 보러 굳이 극장까지 행차하는 것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 외적인 다른 이유(데이트? 시간 때우기?) 때문이다.

이렇듯 방송 3사의 '영화정보 프로그램'만 볼 때, 할리우드영화의 홍보와 한국영화의 홍보는 게임이 되기 어렵다. 제작비 차이만큼이나 홍보비 규모도 벌어지고 방송 3사에 '거저 주는' 물량 공세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 게다가 지금처럼 짧고 빠르게 CF처럼 하이라이트 장면만 편집 부각시키고 진행자의 말재주에 의존하는 '영화정보 프로그램'의 오락 포맷에 길들여진 시청자로선 굳이 한국영화여야 할 이유(애국심 마케팅도 약발이 팍팍 떨어지고 있다)가 따로 없다. 오락이 영화만도 아니고, 또 한국영화만도 아니니까.

사람들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가는 이유가 영화보다는 다양한 부대 서비스에 있고, 멀티플렉스의 주 수입원도 영화 티켓이 아니라 팝콘과 청량음료가 차지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오락이 아닌 한국영화'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해서 문제를 좁히면 할리우드영화와 다른 한국영화의 오락성이 무엇인지, 또 한국영화의 오락성을 잘 살려내는 영화 홍보의 포맷은 무엇인지, 그런 특성을 반영하는 '영화정보 프로그램'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좋은지, 온갖 질문이 서로 꼬리를 물고 맴맴 돌게 된다.

더 밀리면 한국영화 죽는다, 거품이 빠지는 필연적 조정기다, 한국영화의 맛이 따로 있다, 세계 시장에서 먹혀야 산다, 이렇듯 이슈는 다양하고 이슈 따라 어떤 자리에 서든 방송 3사의 '영화정보 프로그램'부터 '결단'이 나야 할 것 같다.

'거저 주고 바로 틀고 날로 먹는' 삼각동맹의 핵심 고리부터 끊어지지 않는 한, 영화(오락)를 영화(오락)로 즐기지 못하는 중독은 더 심화될 것이다. 이 고리를 끊는 출발은 간명하다. 방송 3사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야 한다. 시청률을 떨어뜨려야 한다. 무망한가?

태그:#출발 비디오여행, #접속 무비월드, #영화가 좋다, #영화정보프로그램,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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