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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색 연꽃봉오리
ⓒ 이승철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
연꽃처럼 살아보자고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 게 연꽃 같을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 정호승의 시 <연꽃 구경> 앞부분

▲ 활짝핀 붉은 연꽃
ⓒ 이승철
▲ 하얀색 꽃으로 가득한 연못
ⓒ 이승철
7월 11일 오후, 충남 부여읍 궁남지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연꽃단지를 둘러보다가 한나절을 보냈다. 소담스럽게 피워낸 고운 연꽃들이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해를 보았다는 느낌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정말 곱고 아름다운 연꽃들과 풍경 때문이었다.

시궁창 같은 더러운 물에서도 곱게 자라 꽃을 피운다는 연꽃. 그러나 이곳 서동공원엔 깨끗한 물에 정성들여 잘 가꿔놓은 연꽃들이 저마다의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니 연꽃이 노란색도 있었네, 연꽃은 붉거나 흰 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몇 사람이 노란 연꽃을 보며 놀라워한다. 노란 연꽃은 흔하지 않다. 대개 연꽃들은 하얀색이거나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아주 샛노랗지는 않았지만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연꽃들이 연못 가득 피어 있는 모습이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서동공원은 연못 사이사이에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연못을 돌아보기가 편리했지만 덕분에 연못을 모두 돌아보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느 곳에는 연꽃과 함께 주변에 많은 부들이 자라고 있었고, 또 어느 곳에는 연못가에 원추리 꽃이 만발하여 연꽃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연꽃이 흐드러진 풍경
ⓒ 이승철
▲ 부들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 이승철
연꽃과 수련, 그리고 가시연꽃까지 다양한 품종들이 심어져 있는 연못에는 부레옥잠도 한 자리를 차지하여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고 있었는데 가시연꽃 연못에는 물닭 한 마리가 연꽃잎 위를 유유히 걸어 다니며 먹이 찾아다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연꽃은 물 위에서 피워내는 특이한 모습 때문에 우리 고전소설 심청전에도 등장한다.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뱃사공들에게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져 빠져 죽은 심청이 연꽃으로 환생하여 왕비가 되는 것이다. 소담스러운 모습과 이런 정서 때문에 예부터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연꽃은 그만큼 많은 전설을 갖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북단의 이집트에서는 연꽃이 불사조와 마찬가지로 탄생과 재생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해 뜰 때에 피었다가 해질 때 지는 속성 때문에 재생과 내세에 대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선 연꽃을 태초에 물에서 태어난 꽃으로, 태양이 이 꽃에서 탄생했다고 믿고 있다. 또 연꽃은 신의 향기를 전해준다.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들도 이 꽃의 향기를 마시고, 이 꽃의 움직임 속에 환희와 재생의 마술이 뒤섞여 있다고 믿는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는 연꽃을 헤라와 제우스의 사랑의 침대라고 한다. 즉 연꽃은 결혼에 대한 성의 굴레를 상징하며, 그래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이 꽃을 매우 싫어했다고 전한다. 다른 한편 오디세이에서는 연꽃 열매가 지난 과거를 잊게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기도 한다.

▲ 피어나는 연꽃
ⓒ 이승철
▲ 부레옥잠도 피어나고
ⓒ 이승철
인도의 신화에서도 천지창조가 되기 전 태초에 물이 있었고, 그 물 위에 연잎이 처음 떠 있었다고 전한다. 인도의 고대민속에서 연꽃은 여성의 생식을 상징하고 다산과 힘, 그리고 생명의 창조를 뜻한다. BC 3천 년경으로 추정되는 오래 전 인도에서는 연꽃의 여신상이 발굴되었고, 바라문교의 경전에는 이 여신이 연꽃 위에 서서 연꽃을 쓰고 태어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

또 부처가 태어나 처음으로 밟은 것도 흙이 아니라 연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가 도를 이루고 걸어 나올 때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는 것이다. 룸비니 동산에는 그 발자국마다 연꽃을 새긴 전돌이 박혀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부처와 연꽃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인도의 성도성지 이웃에 불성지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 피어 있던 연꽃이 전 세계의 불교국가들에 전해져 있는 연꽃의 원조라고 한다.

부처는 도를 깨달은 후 속세에 나왔을 때 굶어 죽어가던 천한 여인으로부터 누더기 옷 한 벌을 공양 받았다. 이후 부처는 이 옷을 바로 그 불성지에 빨았는데 옷에 담긴 여인의 정성이 알알이 연꽃으로 피어났다는 것이다. 곧 불성지의 연꽃은 가난하거나 병들고 천하여 버림받은 사람들의 존재이유에 대한 불심의 상징적인 보증인 셈이다.

즉 부처의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연꽃이었다. 그래서 초기 불교에서는 연꽃 장식이 있는 곳을 곧 부처가 있는 곳으로 인식하기도 했었다. 또 극락세계에서는 모든 불교신자가 연꽃 위에 신으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 연못가운데 징검다리 산책로
ⓒ 이승철
▲ 수련들도 한창 피어나고 있다.
ⓒ 이승철
그래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 전통에서도 사람이 죽어 묘지로 갈 때, 상여를 연꽃으로 뒤덮었었다. 불교의 내세관인 극락왕생을 상징하는 꾸밈이었던 셈이다.

옛 백제의 고도였던 부여의 부소산성에서 멀지 않은 이곳 궁남지는 사적 제135호로 마래방죽이라고도 불리던 곳이다. 지금은 부여주민들의 좋은 산책코스와 쉼터가 되고 있는 이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출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는 곳이다.

무왕의 아버지인 법왕의 시녀였던 여인이 연못가에서 혼자 살다가 연못의 용신과 통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이다.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화는 이곳이 백제왕궁의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연못은 백제의 정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하는데, 일본서기에는 이 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 정자 앞에서 사진작가의 한 컷
ⓒ 이승철
설화에서 이름을 따 서동공원으로 불리는 이 연못은 가운데 정자가 서 있는 둥그런 호수를 중심으로 평평한 주변이 모두 연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산책 나온 부여주민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공원이 워낙 넓어 오히려 한가한 모습이었다.

"어떠세요? 정말 아름답지요? 이렇게 멋진 연못 다른 곳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 걸요."

스스로 자청하여 우리 일행들을 안내한 40대 주부 두 사람의 자랑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곱고 예쁜 연꽃들과 아름다운 풍경에 홀린 한나절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이승철의 시가있는오두막집 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연꽃, #부여, #서동, #궁남지, #서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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