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넘어졌다. 반비. 반비야."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모정 옆에서 네 명씩 나누어 비석치기를 하고 있다. 비석치기는 상대편이 세워 놓은 돌을 신체의 다양한 부위를 이용해 맞춰 넘어뜨리는 전통놀이다. 세워놓은 돌을 맞추었지만 넘어지지 않았을 경우 맞추기 어렵게 좁은 옆면이 보이게 세워 다시 기회를 준다.

이것이 아이들이 소리치는 '반비'라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반비'라는 규칙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놀이를 하면서 재미를 더하고 공평한 게임을 위해 만들어낸 것 같다.

모정 옆 너른 회관마당에는 큰 달집이 만들어져 있다. 보름맞이 쥐불놀이를 위한 것이다. 달집태우기는 영광, 고창, 부안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달집태우기는 최근 보름맞이 행사를 하는 곳에서는 어디나 하는 행사이벤트가 되었다.

어른들은 돼지잡기, 아이들은 비석치기

▲ 시골 돼지잡이는 내장을 깨끗하게 씻어 순대를 만드는 일로 마무리된다.
ⓒ 김준
▲ 사등마을 어른들이 돼지잡는 동안 아이들은 비석치기를 한다.
ⓒ 김준
마을회관 앞에 1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돼지를 잡고 있다. 옆에는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오는 사람들에게 소주를 한잔씩 권한다. 내일 당산제에 올릴 돼지머리는 정성스럽게 삶아 건져두고, 내장을 잘 손질해 순대를 만들 준비를 한다. 사실 돼지잡이의 백미는 암뽕순대를 얻어먹는 일과 오줌통을 가지고 골목에서 공을 차는 것이다.

모래가 많아 모랫등, 모릿등이라 불렀던 사등마을은 검당, 죽림, 사등의 세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된 바닷가 마을이다. 갯벌과 접한 검당 마을은 선운사 창건한 백제의 고승 검단선사와 인연이 깊다. 검당 마을 주민들은 백제의 고승 검단선사의 지도를 받아 57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육염(자염)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특히 사등마을 앞 검단포는 소금무역항으로 개발되어 크게 번창하였다. 무술년(1899)에 큰 해일로 폐허가 되어 지금의 사등마을로 이동하여 마을을 이뤘다. 검단선사는 고창 인근 바닷가 마을 주민들만 아니라 흉악한 도둑과 해적들에게 소금 굽는 방법을 가르쳐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했다. 이들은 선사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소금을 구워 선운사 부처님께 '보은염' 공양하기도 했다.

남자들이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회관 안에서 반찬을 만드는 동안 화주(제주, 당산제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를 맡은 이장 집에서는 제물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도 뭔가 서운하다 싶었는데 회관 마당에서 '쇠'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을을 돌며 보름행사를 알리고 지신밟기도 할 모양이다. 마을의 대표 상쇠 김길영(1927년생) 어르신이 쇠를 잡고 나서자 북, 장구, 징 등이 따라 나선다. 이미 주민들이 제를 모시기 위해 제비를 모았지만, 마을 안에서 장어구이 집을 운영하는 가게들을 돌며 마당도 밟아주고 특별제비도 걷을 모양이다.

▲ 마당밟기를 하는 풍물패가 들어오자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이 쌀과 돈을 입구에 내놓고 장사가 잘되기를 기원한다.
ⓒ 김준
▲ 복분자농사가 주 생업이 사등마을 주민들은 정월 보름을 전후해 가지치기 등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
ⓒ 김준
정월 보름 전날 밤, 사등마을 마당에 세워진 달집에 불이 올랐다. 주민들은 소지를 올려 액을 막고 소원을 빌었다. 모처럼 모인 주민들은 흥에 겨웠던지 마을회관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낮에 돼지를 잡으면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지만 역시 삼겹살을 덮을게 없다. 주민들은 모두 돌아가고 회관에 남은 소주를 삼겹살에 말끔히 정리했다.

소금을 굽던 사람들, 복분자로 생계를 잇다

이야기만이 아니라 실제로 소금 구워 번창한 검당마을은 한때 100여 호가 거주했지만 지금 몇 채의 집만 남아 있고, 풍천장어를 파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호구총서>(1789)에 의하면, 심원면에는 38개 마을이 있으며, 이중 검당(상검당, 하검당)마을과 자염과 어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지명(상전막, 하전막)도 있다. 사등마을도 옛날에는 300여 호가 모여 사는 큰 마을로 소금을 구워 생활했지만, 천일염전이 개발되어 육염(자염)이 사라지면서 마을도 쇠락했다. 지금은 복분자재배로 생활하고 있으며 바지락 등 갯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전국 최대의 바지락 생산지로 알려진 인근 하전마을이 옆에 있지만 사등마을은 바다보다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 고창복분자주는 보성녹차와 하동녹차에 이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품질을 인정받아 지역을 브랜드화 하는 지리적표시 3호에 등록되었다. 고창은 복분자와 함께 풍천장어가 특산품이다.

과거 풍천장어는 강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기수지역 어디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지만 자원의 남획과 오염으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고창지역에서 축제양식장에서 옛날방식으로 키워 '고창갯벌풍천장어'를 상표등록 하여 공급하고 있다.

▲ 마을회과 마당에서 시작된 달집태우기
ⓒ 김준

▲ 소원을 빌며 소지를 올리고 있는 마을주민
ⓒ 김준

▲ 조용한 시골마을 대보름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다.
ⓒ 김준

술을 먹은 다음날 눈을 뜨는 것은 시원한 물을 먹기 위해서다. 시계를 볼 것도 없다. 다섯 시 쯤 일게다. 누군가 문을 급하고 거칠게 두들긴다. 아무도 없다. 바람이다. 겨울은 어디가고 내내 봄 같던 날씨가 심상치 않다. 남도 아래 마을엔 벌써 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눈이 온 곳도 있다고 한다.

구수한 누룽지와 찌개로 아침을 해결했다. 마을에 폐를 끼치지 않고 숙식을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숙소가 없어 마을회관을 종종 이용한다. 이장님이 급히 오셔 식사초대를 한다. 손님인데 이렇게 누룽지를 드시면 되겠냐며.

당산제의 시작은 회관 앞 굿 소리로 시작된다. 사등마을은 윗당산과 아랫당산으로 나누어져 있다. 윗당산을 할아버지 당산, 아랫당산을 할머니 당산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 당산은 마을동쪽에 위치해 있다. 30여 년 전에는 당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대신한다. 할머니 당산은 마을 가운데 옛날 회관자리 팽나무다. 다섯 개의 큰 가지를 지난 팽나무는 늙고 병들고 태풍과 바람을 겪으며 네 가지를 잃고 한 가지만 남아 있다.

모든 주민들 정성 모아 당산제를 지낸다

▲ 사등마을 동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는 사등마을에서 모시는 당할아버지다.
ⓒ 김준
▲ 당할아버지에게 정성을 드리고 나면, 마을 가운데 당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
ⓒ 김준
이번 당산제의 제주는 마을이장 부부(조성실, 이순화)다. 옛날과 달리 선뜻 제주를 맡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마을회의를 해서 깨끗하고 생기 복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부탁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당산제는 이장이 준비하고 이장에 제사를 지낸다. 이장 집에 금줄이 쳐졌다. 며칠 전 고창읍장에서 시장을 봐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

마을주민들의 정성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모은 돈으로 제물을 구입한다. 옛날 같으면 제물을 살 때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값을 흥정해서도 안 된다는 금기사항들이 엄격했다. 그렇지만 제의를 모시고 나면 주민들이 모여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 '난장'으로 변한다. 그래서 마을굿은 '의례'와 '놀이'를 겸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영기를 앞세워 음식을 나르고, 제주 풍물패 주민들이 뒤를 따른다.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지며 거센 바람이 제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며칠 전부터 당산나무에 금줄을 쳐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해 두었다. 지역에 따라 황토를 뿌리기도 한다. 제물로는 삼실과, 나물, 메, 떡, 돼지머리, 생선(조기, 병치, 준치, 민어, 상어)을 준비했다.

이장부부가 제를 올리는 동안에 주민들은 할아버지 당산 주위에 모여 구경을 하고, 풍물패는 소리를 멈추고 기다린다. 심한 바람에 돼지머리에 꽂아 둔 만 원짜리가 날라 오른다. 서둘러 제의를 마치고 간단한 음복을 한 후 할머니 당산으로 이동한다.

멀리 변산반도가 희미하게 보이고 소금을 구웠던 염전터는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다. 거친 바람소리에 농악소리도 파열음을 낸다. 할머니 당산은 마을가운데 있는 탓에 바람이 잔다.

더구나 제장 뒤로 옛날 마을회관이 바람을 막고 있어 옴팡지다. 이장부부가 먼저 할머니 당산에 절을 하고, 이어 마을주민들이 나선다. 절을 하는 주민들은 약간의 돈을 제상에 올리고 술을 따른다. 나도 나섰다.

'금년에도 섬과 바다로 나서는 길, 사고 없이 좋은 분들 만나서 많이 보고 배우고 즐겁게 지내게 해주십시오.'

우리 마을 '염전터'로 잘살게 해 주십시오

▲ 당산제는 당할머니인 팽나무 밑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헌식을 한 후 주민들이 음복을 하고 마무리한다.
ⓒ 김준
모든 제의가 마무리되면 제물의 일부를 한지에 싸서 당산나무 밑에 묻는다. 이를 '헌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주민들이 나누어 음복을 하고 당산제를 마친다. 그 후 모든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한다. 사등마을 당산제 기록과 노인들의 기억에 의하면, 당산제에 앞서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짚을 걷어 줄을 꼰 다음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돈 다음 달이 떠오르면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했다.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들기 때문에 할아버지들은 줄다리기 하는 남자들이 힘을 못 쓰도록 회초리로 때려 여자들이 이기게 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은 할머니 옷이라 하여 할머니 당산에 감았다.

이러한 풍습은 고창은 물론 이웃 영광과 부안 등 서남해안 지역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물이 귀한 사등마을은 당산제와 함께 샘제를 모셨다고 한다. 지금도 논 가운데 당시의 샘이 남아 있지만 상수도가 개발되면서 중단되었다.

'굿'은 개인이나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택한 치유책의 하나였다. 마을굿은 '당산제', '당제', '용왕제', '호미씻기', '정월보름굿', '동제' 등 다양한 형태들이 있다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굿은 금기시 되었고,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타파'의 대상이 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굿하고 있네'라는 의미에 잘 드러난다.

정월보름을 전후에 아직도 농어촌의 많은 마을에서 '마을굿'을 한다. 전통성이 잘 남아 있는 굿이 있는가 하면, 지역축제나 연구자들의 요구에 의해 잘못 복원된 경우도 있다. 대보름을 전후해 하는 마을 굿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액을 막는 역할' 외에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기능을 한다. 최근에는 마을의례의 종교적 사회적 기능 외에 의례자체가 갖는 예술성과 공연형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등마을의 대보름 행사는 의미가 크다.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는 '역사문화 마을만들기'사업에 지정된 후 처음 갖는 행사기 때문이다. 다른 사업과 달리 이 사업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자원으로 지역활성화를 모색하는 사업이다.

사등마을을 비롯해 전국에 10여 개 마을이 지정되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이렇다 할 양식어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농지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번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통소금을 구웠던 노인들은 하루빨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금 굽는 기술을 마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유명한 관광지를 욕심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을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붙어 살 수 있도록 소득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산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바람이 몰아친다.

태그:#복분자, #당산제, #사등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