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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신림동의 한 주공 임대아파트.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도시빈민운동의 상징, '난쏘공'과 '제정구'

우리나라에 국민임대주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다. 실제로 현대건설 같은 메이저 건설사에서 임대주택이라는 이름의 아파트를 지었던 것도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변화 맨 앞에는 두 가지의 상징이 있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과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때로는 욕하는 제정구라는 이름 두 가지가 우리나라의 국민임대주택 혹은 빈민 주거권이라는 논의를 만든 두 축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밀려나서 성남을 비롯해서 여러 곳으로 흩어져나갔던 소위 한국 도시빈민 운동 1세대에 관한 소설과 그들과 함께 했던 상징 같은 존재인 인물 한 사람, 그렇게 70~80년대에 했던 논의가 쌓아올린 축이 국민임대주택이라는 개념이다.

주공에서는 자신들이 그 사업을 한다고 해서 자신들이 주택정책에 많은 사람을 고려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렇게 쉽게 얘기하기에는 이 제도까지 쌓였던 사람들의 피와 정성 같은 것들이 너무 애달프다.

그리고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진짜로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기본골격과 '정밀 제어(fine tuning)'에 대한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임대주택이 '정답'은 아니다

@BRI@이건 아직 집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민 50%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새롭게 주거권을 고민하게 될 20대에 관한 이야기이고, 더 길게는 부모들이 아파트 몇 채씩 가지고 있어서 턱턱 집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 너무 뻔한 10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국민임대주택을 많이 만들겠다"와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다"라는 수사학에 귀착되는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국민임대주택 그리고 앞으로 세워야 할 개념인 공공주택 같은 개념들이 단순히 건설업자들의 건설물량을 확보해주기 위한, 그리고 그렇게 선정될 땅을 미리 몇 년 전에 사들인 땅주인 혹은 그렇게 새로 생겨나는 신도시에 우연히 토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던 지역 토호들의 손으로 국민들이 마련해준 귀한 세금이 그냥 넘어가지 않기 위해 미리 고민해봐야 할 일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나에게 국민임대주택을 찬성하느냐 혹은 반대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물론 나는 찬성한다. 이런 개념이 등장하기까지 나도 내가 빈민운동 현장에서 들인 시간과 구속을 가름하여 낸 벌금들이 억울해서라도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주공과 건교부가 제시하고 있는 그런 형태의 국민임대주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고개가 끄덕거려지지는 않는다.

대체적인 흐름이 맞으면 좋은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때때로 너무 슬픈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서 토지와 주택에 관한 일들은 그렇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은 맞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조금이라도 정답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국민임대주택은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논의는 길어질 것 같다. 그러나 길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소수가 울분에서 하는 소주 마시면서 하는 논의이기보다는 더 공개적이고 더 심도 있는 논의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돈이 들어가고, 사업규모가 크고, 영향이 오래갈 것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나도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이 참여정부의 소위 로드맵이라고 제시된 방안이 최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은 의심 하나면 미래를 위한 논의를 위해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는 족하다고 생각한다.

주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복합재

그 논의를 위해서 작은 출발점이 되는 생각 하나를 나누고 싶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말을 주택시장에 대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에서는 'housing'이라고 표현하는 그 정신 그대로 주택을 상품이라고 본다면 이 말은 옳다. 노동시장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상품에 대해서 그렇게 수요와 공급이라고 표현하고 분석하면 대부분 경우가 옳은데, 주택의 경우는 잘 맞지 않는다.

안 맞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표준적인 설명은 '복합재' 혹은 '결합재'라고 개념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주택은 사느냐 마느냐라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집과 함께 주변 여건, 환경, 취향 혹은 문화까지 포함한 삶의 방식을 복합적으로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 복합재의 개념이다. 물론 결국 주택 가격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쉽게 피해가는 방법이 있기도 한데, 개인의 취향이나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 많은 요소들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아파트 이름 바꾸었다고 몇억씩 집값이 올라가는 현상은 정보경제학 개념을 동원하더라도 쉽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대규모 주택단지 같은 것을 만들면 주변여건이 바뀌어서 애초의 상품 가치, 즉 구매했던 가격과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난다. 이런 일들은 단순 상품에서는 생겨나지 않는 일이다. 분당의 성공 같은 것은 수요와 공급만으로 절대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복합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수요와 공급으로 부동산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풀고자 하는 사람은 표준 경제학계에는 잘 없다. 그렇게 얘기하더라도 늘 단서가 따라붙는다. "아주 장기간"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분당과 일산 사이에는 구매 시점에 가격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크다. 흔히 표준 제품에 얘기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틀만 가진 정책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분당에 아파트를 빼곡히 지으면 분당 아파트의 가격은 떨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회적 힘이 있다.

▲ 판교택지개발주민대책본부 사무실에 붙은 현수막.
ⓒ 오마이뉴스 김시연

원주민을 쫓아내는 공영개발

그래서 '공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주택은 어느 공간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똑같은 원가의 아파트라도 공간이라는 잘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고, '강남'이라는 말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제품에 대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포함한 복합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강남 같은 아파트를 많이 지어주면 될 것 아니냐"라는 명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난 놀랐다. 국민경제를 정의할 때 또 다른 조건인 '구매력'이라는 개념을 포함하면, 이 얘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살 능력이 없는데, 지으면 어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공간이라는 담론은 이런 점들을 포함한다.

현재의 국민임대주택이라는 정책이 갖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 천천히 얘기해볼 것인데, 그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토지수용'이라는 것은 그곳에 살던 사람의 땅을 공공이 필요하니까 주거권을 제한해서 강제로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말로는 "돈을 주고 쫓아낸다"라고 할 수 있다.

공영개발이라는 것은 이런 토지수용 위에서 진행되는 공공 행위인데, 그렇다면 원래 거기에 멀쩡하게 살았던 사람의 '주거권'이라는 질문이 생기게 된다. 흔한 표현대로 그 사람에게는 딱지 한 장 주고 마는데, 그 딱지를 받아든 사람이 국민임대주택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 현 제도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작동원리의 가슴 아픈 점이다.

집을 빼앗겼는데, 그 대가로 받는 돈이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오는 집만큼의 가격이 안 되어서 더 열등지로 이사 가야 하는 게 현 상황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 상황을 보면 가슴 아플 것이다. 이런 모순은 많이 있다. 이걸 해결해고자 하는 것이 국민임대주택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경기도 성남시 판교택지개발현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과 이명박 공간정책은 닮은꼴

이런 질문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먼저 질문 한 가지를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공간 정책은 달랐는가? 달랐다면 노무현표 임대주택과 이명박표 임대주택, 이렇게 두 가지가 각각 제시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에서 '공간'으로 표현된 두 사람의 정책과 정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게 첫 번째로 딱 만나게 된 것은 은평 뉴타운이라는 곳이기는 한데, 이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먼저 왜 2002년, 막 대통령이 되었던 노무현과 한참 기를 펴던 이명박 서울시장이 어떤 공간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지 잠깐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잠깐 기억을 돌려보자. 막 대통령이 된 노무현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헌법에 존재하지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한 일종의 불균형 성장전략이었다. 정책입안자의 선의에도 지방에서 이 말을 받아들인 방식은 "중앙의 돈이 우리 지역에 온다"와 "우리 동네 땅값이 오른다"라는 두 가지였다.

클러스터와 혁신도시를 필두로 다양한 이름의 이러한 지역정책은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볼 때 중앙의 돈을 투입해서 특정 지역의 땅값을 올려준다는 표현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클러스터'가 생겨난다면 나중에 이러한 사회적 손실을 국민경제의 편익으로 상쇄할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어서 첫해에 중점을 가지고 했던 일들은 공간의 눈으로 본다면 특정 지방의 땅값 올려주기였다.

논란이 되었던 많은 국책사업과 격자형 도로와 같은 사업 혹은 환황해권이니 남해시대니 하는 말들이 앞다투어 생겨났던 이 시기에 지방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로 "중앙의 돈을 받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처절함에 휩싸였다.

그렇게 노무현 첫해에는 국민들의 세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돈인 중앙의 돈을 받기 위해서 지방들은 서로 자신들의 몸단장을 하고, 정부에서는 "누구 줄까?"를 외치면서 지났다. 엄밀한 표현들은 아니지만 지방의 많은 활동가들은 이 돈이 대부분 지방토호들에게 들어갔다고 이 시기를 회상한다.

그렇다면 그 해에 이명박 서울시장은 무엇을 하였을까? 청계천을 구상하면서 불도저처럼 복원계획을 세우던 이명박 시장이 이 해에 꺼내든 카드는 "강남북 균형개발"이라는 카드였다. 기계적으로 생각하면 강남을 낮출 것인가 아니면 강북을 올릴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이명박의 강남북 균형개발은 강북의 집값을 올려서 강남만큼 높게 해주겠다는 간단한 메시지가 담겼다.

이런 2002년 이명박의 고민들이 담겨서 서울시의 25개 구별로 노무현이 지방에 했던 것과 똑같은 뉴타운과 균형개발 사업들이 역시 같은 원칙인 "선택과 집중 전략"에 의해서 흩뿌려지게 된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강남북 균형개발'을 내세워 25개 구별로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3차 뉴타운 예정지인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 붙은 플래카드.
ⓒ 오마이뉴스 박수원
집값만 올려준 '균형개발' 정책

공간으로 볼 때 이 두 사람의 정책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중앙이 가지고 있는 돈을 투입해서 특정 지역의 집값을 올려줘서 균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단히 미안하게도 두 사람이 지역정책이라는 이름과 경제학에서 잘 사용하는 '균형'이라는 개념으로 했던 정책 중의 정책인 두 가지 일들은 토목공사 늘리기와 집값 올리기로 요약된다.

DJ 중반기부터 건설사들이 줄기차게 건의했던 국민임대주택이라는 정책이 정부와 서울시에서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이보다 조금 뒤의 일이다.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서 그 당시 건설업체들이 '조중동'을 통해서 줄기차게 얘기하던 구호 한 가지만 회상해보자.

"건설산업 연착륙"… IMF 이후에 건설업체 설립을 완화해줬던 여파로 너무 건설업체가 난립해서 건설사들은 당면한 구조조정에 연착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건의하던 시절이다. 그들도 너무 많은 업체가 난립하면서 적절한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구조조정의 수위를 조절해달라고 하던 시점이다.

IMF 이후의 한국 경제가 회생의 전환점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주요한 시점이 바로 이 시점이다. 이때 노무현과 이명박이 시장경제의 가격 시그널대로 했거나 건설사의 건의를 조금만 살살 들었어도 한국 경제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늘 아쉽게 생각하게 되는 게 바로 이 시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건설업체가 원하는 건설물량 혹은 그 이상의 건설물량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만들어주게 된다. 그 때문인지 우연인지는 나중에 보다 정확한 계량작업과 분석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때마침 터진 카드대란과 규모가 크지 않았던 집중적 국채 상환기간의 도래와 같은 몇 가지 교란요소와 함께 한국 경제는 그 이후 완전 바닥으로 내려가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첫 번째 국정운영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때 꺼내든 카드가 예전부터 있던 국민임대주택 카드가 된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이헌재였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글에서는 이헌재 등장을 계기로 '한국형 뉴딜'이 시작되고 국민임대주택이 전면화되는 과정을 짚어보겠습니다.


태그:#국민임대주택, #임대주택, #빈민운동, #난쏘공, #균형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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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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