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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출산, 육아와 관련된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공정위에서 분유회사와 산부인과에 대한 유착관계 조사를 한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뒤부터 관련 언론보도가 게시판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고, 분유회사와 산부인과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다.
ⓒ 강지이
요즘 내가 속한 '엄마들 인터넷 카페'에서는 산부인과와 분유회사의 커넥션에 관한 얘기로 떠들썩하다.

지난 1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분유업계와 산부인과의 유착 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유명 분유업체들이 산부인과를 상대로 자사 제품을 신생아들에게 먹이는 조건으로 금융기관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거액의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의 입을 담보로 하여 병원과 업체 간의 '은밀한 돈거래'가 이루어졌다는 말은 엄마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엄마들은 이 뉴스를 접하고 나서 "우리 아이도 병원에서 퇴원할 때 주었던 A사의 분유 맛에 길들여져 다른 분유는 입도 대지 않더라"면서 분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분유를 맛본 아기들은 힘들게 빨아야 맛볼 수 있는 모유 대신에 편하고 달콤한 그 분유 맛 때문에 모유를 거부하게 된다.

이 같은 한순간의 달콤한 유혹(?)은 분유 소비를 늘릴 수밖에 없다. 모유 수유보다 분유 수유가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는게 바로 그 때문이다. 2006년 6월 발표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젖을 먹이는 산모는 2005년 37.4%(출산 후 6개월 시점 기준)로 2001년의 9.8%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지만, 여전히 분유를 먹이는 산모는 60% 이상에 달한다.

모유 수유 전문병원에서 받은 '분유 선물 패키지'

@BRI@나 역시 '분유 커넥션' 뉴스를 접하고서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2년 전 내가 아이를 출산하면서 받은 '분유 선물 패키지'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출산한 병원은 수도권에서 꽤 유명한 모유 수유 전문병원이다. 임신하고 이 병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적극적으로 모유 수유를 권장하고, 아이 출생 후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에게 모유를 주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30분 후에 바로 엄마 젖을 빠는 모습은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한 시간 반마다 배가 고프다고 울어대는 아이에게 매번 엄마는 쉬고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젖을 물렸다.

당시 나는 '모자동실'이라고 해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을 수 있는 병실에 있었는데, 여러 가지 위생 문제를 염려한 우리 부부는 아이를 신생아실에 맡겨 놓고 젖을 줄 때마다 아이를 데려다 수유하기로 결정했다.

첫 모유 수유를 하고, 거의 한 시간 반 간격으로 몇 번 모유 수유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분명 수유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신생아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해 알아보니, 애가 너무 배고파 우는 것 같아 분유를 작은 스푼으로 조금 먹였다는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하루에 겨우 한 번인데 어떠랴 싶기도 했지만, 혹시 분유에 맛을 들일까봐 염려가 되어 담당 간호사에게 다음에 아이가 배고파 하면 반드시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후에는 엄마 젖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 아이가 조금 보채더라도 엄마 젖을 물렸다.

자연분만 후 2박3일간 병원 생활을 하고 퇴원하는 날, 병원의 조산사가 산모의 산후 조리와 아이 돌보기에 대해 교육을 한다고 해서 같은 날 퇴원하는 산모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교육 내용이 대부분 산욕기에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신생아를 돌보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나서 아이와 함께 병원을 나서는데 병원에서 선물이 담긴 커다란 쇼핑백을 하나씩 줬다. 그 안을 들여다 보니 아이 젖병 한 개와 커다란 분유 한 통, 기타 다양한 사은품들이 들어있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젖병 하나에 1만원 이상, 분유 한 통에 2만원 정도 한다는 걸 알고서는 그 선물이 참 비싼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퇴원 준비를 마치고 나온 아이는 어떠한가. A사 로고가 찍힌 예쁜 배냇저고리를 입고, 역시 같은 회사의 로고가 찍힌 분홍 겉싸개에 싸여 있는 게 아닌가. 엄마 입장에서야 '공짜로' 이런 좋은 선물을 많이 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유 회사가 돈을 많이 벌긴 하나 보다, 이런 선물을 잔뜩 주고…'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준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아기의 먹이는 것에 대해 교육해 줬다.

"젖은 2시간 간격으로 먹이고, 아이가 배고파서 울지 않더라도 2시간 후면 꼭 젖을 물리세요. 만약 애가 젖을 잘 빨지 않으려 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 배고파 운다면, (병원에서) 나누어 준 분유를 60cc 정도 젖병에 타서 스푼으로 먹이세요. 그리고 분유를 먹일 때는 젖꼭지를 사용하지 마시고, 꼭 스푼을 사용하세요. 스푼을 사용하지 않고 젖병 젖꼭지로 먹이면 아이는 바로 그 편리함에 길들어 엄마 젖을 빨지 않습니다."

▲ 분유통을 보면, 뒷면 하단에 '모유가 아기에게는 가장 좋습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그만큼 아이에게는 '엄마 젖'이 가장 좋다.
ⓒ 강지이
"꼭 완모(완전한 모유 수유)에 성공하세요"라고 강조하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를 돌보는데, 생각보다 젖이 충분히 돌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에게 젖을 먹였는데도 우는 것이었다. 젖이 부족해서 우는 것 같아 병원에서 해준 말이 생각나 분유를 타서 한번 먹여 보니 아이가 매우 맛있게 먹는다.

이후 나는 산후 조리를 도와주시는 도우미 분과 함께 아이를 돌봤는데, 도우미 말씀이 "밤에는 엄마가 너무 피곤하니 한 번 정도 분유를 먹이면 편히 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아이는 잘 자고 젖도 잘 먹었다. 이후 아이는 분유도 하루 한 번 정도 먹으며 건강하게 자랐다.

내 아이는 처음 병원에서 주었던 그 분유가 달고 맛이 있었는지 모유 수유 중간에 잠깐 모유를 거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끈질긴 모유 수유 노력 덕분에 엄마 젖을 먹고 잘 자라 주었다.

이렇게 나는 완모가 아닌 '혼합 수유'를 하다가 아이가 6개월이 되어 이유식을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분유는 먹이지 않고 미음과 죽을 먹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분유는 안 먹이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퇴원하는 그 당시에 분유 한 통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분유를 전혀 먹이지 않고 모유만 먹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퇴원 날 분유 한 통을 받지 않았더라면....

▲ 퇴원하는 날, 병원에서 분유 한 통을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젖을 먹이려고 했을 것이고, 그러면 완전한 모유 수유 성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 사진 속 특정제품은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습니다.)
ⓒ 강지이
모유 수유 기간 하루 한 번 정도 분유를 먹이면 그나마 좀 쉴 시간이 생긴다는 편안함 때문에 혼합 수유를 선택했지만, 그 길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병원에서 주었던 A사의 분유는 나중에 알고 보니 타회사의 것보다 단맛이 더 강해 아이가 모유를 거부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는 젖보다 분유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혼합 수유를 하면서 모유 수유를 거부당하던 경험이 있는 내 입장에서 병원과 분유회사 간의 은밀한 돈 거래 얘기는 불쾌감을 갖게 한다. 병원에서 분유를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젖을 먹이려고 했을 것이고, 그러면 완전한 모유 수유 성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게다가 내가 기분 좋게 받았던 몇만원 상당의 출산 선물이 지저분한 뒷거래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함 마음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모유 수유 전문병원에서 분유를 주다니. 아무리 모유 수유에 실패하는 엄마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건 지나친 친절 행위가 아닐까? 엄마가 정 필요하다면 분유를 사서 먹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차라리 내가 받은 선물 보따리가 그저 '분유 회사의 광고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나마 덜 속상할 것 같다. 비록 그 선물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떠안고 있겠지만….

세상에 갓 태어난 생명을 담보로 하여 뒷거래를 한다는 사실은 모든 엄마들의 비난을 살 만하다. 엄격하게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모든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다.

태그:#분유, #모유, #산부인과, #분유회사,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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