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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겨레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자랑 거리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라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미 유네스코에서 세계 인류 문맹자를 없애자는 뜻에서 주는 <문맹퇴치상>이 <킹 세종 리터러시 프라이즈>로 이름 지어졌다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오천년 역사 가운데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인 훈민정음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니 단 5분 동안이나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려증동이 쓴 <배달글자(한국학술정보)>를 읽으면서 글쓴이의 혜안에 눈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훈민정음은 세종 홀로 만드셨다

먼저 훈민정음은 세종이 남 몰래 홀로 조심스레 만들었다는 것이다. 흔히들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만든데 많은 도움을 준 것처럼 알고 있다. 하지만 최만리뿐만 아니라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세종이 그들을 설득하였지만 그래도 되지 않아 그들을 끝내 하옥시키기까지 하였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드시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집현전 학자가 아니라 그의 딸인 정의공주였다. 정의공주는 세종의 명을 받아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되었는데, 그때 석가모니 세보를 훈민정음으로 뒤친 <원각선종석보>를 목판본으로 간행하여 세종에게 받쳤다. 세종은 이를 보고 정의공주에게 큰 상을 내렸다. 곧 훈민정음은 세종 홀로 만드신 것이지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으로 이룩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뚜렷이 밝혀 놓았다.

왜 남몰래 훈민정음을 만들었을까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며 그 의문이 풀어지면서 세종의 지혜와 백성을 위하는 세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먼저 우리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훈민정음을 왜 세종은 당당하게 만들지 못하고 남몰래 홀로 조심스레 만들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중국과의 관계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선문자를 만드는 일인즉, 명나라 황제가 알아서는 안 되기에 세종 임금이 혼자서 비밀 속에 가만히 진행시켜야 되는 일로 되었다. 배달글자를 만들고 나서도 중국황제가 알지 못하도록 조용하게 넘어가야 되는 그런 일이었다.(59-60쪽)


상황이 그러하였기에 왕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왕조실록에도 훈민정음을 만드는 과정이 뚜렷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는 세종이 남 몰래 홀로 훈민정음을 만드셨다는 말이다.

왜 <조선문자>라 하지 않고 <훈민정음>이라고 했을까

또 하나 세종은 왜 만드신 글자를 떳떳하게 우리문자 곧 조선문자라고 이름하지 아니하고 훈민정음이라고 했을까?.

소리에는 「바른소리」라는 것이 없다. 소리에는 「짧은소리」, 「긴소리」, 「힘들어간소리」, 「높은소리」, 「낮은소리」, 「된소리」, 「거센소리」등으로 갈래지어질 뿐, 「바르다」, 「그릇되다」가 잣대가 될 수가 없다.

세종 임금이 중국황제의 눈을 어둡게 만들기 위하여 일부러 말이 되지 않는「正音」이라는 엉터리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세종이 이름짓고 싶었던 것은 조선문자(朝鮮文字)였다. 「朝鮮文字」라고 하게 되면 명나라 황제가 노여워하면서 세종 임금을 해롭게 했거나, 조선국을 해롭게 했을 것이다. 또 「朝鮮文字」라고 이름짓게 되면 집현전 학사들의 거센 반발을 이겨낼 길이 없었다.(61쪽)


글자를 소리라고 한 것은 세종의 뛰어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말 못하는 백성들을 그냥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기에 이것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짜낸 지혜가 바로 중국과의 마찰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글자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훈민정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정의공주가 석가모니 세보를 훈민정음으로 뒤친 목판본 <원각선종석보>가 세종 20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최소 5년 이상 걸렸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한 세종의 끈질긴 의지와 노력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노력과 의지는 다름이 아니라 훈민정음에 나와 있듯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가엾은 백성들을>위하는 따뜻한 마음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소창진평의 조작한 위서 <훈민정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첫 번째, 안동의 어느 집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는《훈민정음》이라는 책은 나라잃은시대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小倉進平의 조작임을 확실한 증거를 들어 명명백백하게 밝혀 놓았다.

《세종실록》에는 《훈민정음》을 간행했다라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 첫째이고, 당시에 집현전 대제학을 빈자리로 비워 두었는데 정인지의 벼슬이 대제학으로 되어있다는 것이 둘째이며, 서법이 우리와 다르게 표기된 곳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 셋째이며, 그리고 원본과 다른 엉터리 글자가 여러 곳에 보이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들어 안동 어느 고가에서 나왔다고 하는《훈민정음》은 위서(僞書)라고 이 책은 밝혀 놓았다.

이 책은 소창진평이 장사꾼의 속셈을 가지고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훈민정음’을 베끼고 1940년대 규장각에서 발견된 지은이를 모르는 책 ‘훈민정음해례’와 《세종실록》에 있는 정인지 서문을 편집하여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지질 검사를 해보면 바로 밝혀질 것이라고 려증동은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세종실록》에서 가져 왔기에 위서가 아니다. 단지 소창진평이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엉터리로 엮었기에 지금이라도 《세종실록》에 있는 《훈민정음》을 제대로 역어 책으로 만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10월 9일 <한글날>은 잘못되었다

두 번째, 이른 바 한글날이라는 것도 바로 잡혀지길 바란다.

배달글자가 발표된 것은 세종 25년 계해년 12월이었다. 이러한 것인데도 나라잃은시대 경성제국대학 교수자 小倉進平이라는 무식쟁이가 「세종 28년에 언문을 반포(斑布)했다」라고 했다. 무식한 거짓말이었다. - (중략) - 책을 널리 돌리는 것을 「반포」라고 말하는 것이다. 배달글자인 「ㄱㄴㄷㄹㅁㅂ……ㅎ」28개 글자는 책이 아니기에 「반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일본사람 進平을 무식쟁이이라고 말했던 바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책을 돌리는 것을 「반포」라고 한다. 사실을 알리는 것을 「敎書」라고 한다.(58쪽)

글자를 만든 것은 「制」자를 쓰고, 책을 만든 것은 「成」자를 쓰게 된다. 그리하여 세종 25년 12월에 「上親制 諺文二十八字」라고 실록에 적혔고, 세종 28년 9월에 「訓民正音成」이라고 실록에 적혔다. 「訓民正音書成」이라는 내용을 「訓民正音成」이라고 적었던 것이다. - (중략) - 「訓民正音書成」을 두고 무식쟁이 進平이 「訓民正音이 완성되었다」라고 번역했던 것이다. 「訓民正音 이라는 이름으로 된 책이 이룩되었다」라는 말인 것을 발바닥 눈 무식쟁이 進平이 일본말 「完成」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광복 후 「세종실록 번역서」에서도 무식쟁이 進平의 번역대로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라고 되어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114쪽)


곧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날은 훈민정음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만들어진 날이라는 것이다. ‘성(成)’자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였기에 부끄럽게도 우리는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모르게 되었다. 이제 바로 알게 되었으니 한글날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라도 한글날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훈민정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소창진평이라는 일본 학자의 무지에서 비롯하여 광복 후 우리 학자들이 아무 생각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온 데 기인한다.

이제라도 이것을 바로 잡고자 <배달글자>라는 책이 나왔으니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하루 빨리 바로 잡아 올바른 것을 기리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것이 사필귀정인데 아직 우리 학계에서는 바른 것을 보고도 지난날 자기의 잘못이 부끄러워 올바른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외면하는 못된 버릇이 남아 있다. 안타까울 뿐이다.

배달글자

려증동 지음, 한국학술정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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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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