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100명의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 기사입니다. [기자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밤 기차를 타고 눈을 붙였다 뜨니 아침이 찾아왔다. 6시간을 달린 기차는 족자카르타의 마을 풍경 너머로 일출을 맞이한다.

3월 중순 봄 냄새는 창가 너머로 은은히 퍼진다. 하룻밤 침대가 되어준 기차 좌석과 이별하며 기차역을 나서니, 이전에 여행자 커뮤니티인 '카우치서핑'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은 Johan Wahyudi(아래 요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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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의 모습 데이지 꽃과 함께 요한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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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에서 지내는 동안 자바섬 여행을 준비했다. 카우치 서핑에 족자카르타(Yogyakarta, '욕야카르타'라고도 불린다) 여행계획을 올리니, 요한은 내게 자신의 마을을 무료로 구경시켜 주고 싶다며 먼저 연락했다. 

휴대폰 유심이 망가져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상황, 기차역 내 와이파이를 찾으러 다녔지만 무용지물이다. 도착은 했지만 처음 보는 요한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요한이 내 앞에 나타나 인사했다. 나를 어떻게 알아봤냐는 질문에 신께서 내게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기묘하면서도 친절한 그의 모습에 안심하며 오토바이에 올랐다. 훗날, 우연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그는 '신의 가르침'이라 말하곤 했다. 

요한은 족자카르타 시내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보르드부르로 나를 데려갔다. 한 시간가량 걸리는 오토바이 주행이 위험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긴장감은 바람을 타고 내 뺨을 들뜨게 했다. 요한이 나고 자란 작은 마을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원을 갖고 있어 매년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요한의 아버지는 요한이 어린 시절부터 사원 근처에서 조그만 기념품 가게를 운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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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드르 사원 앞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보로부드르 사원은 자바 불교예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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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웅장함에 압도된 채로 나오는 내게 요한은 자신이 마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했다. 1993년에 세상 빛을 본 아이, 요한은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의 빛을 나 같은 여행객과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내게 마을을 소개해 주고자 한 시간 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 다시 한 시간 넘는 운전을 해 마을에 온 요한. 무엇이 그에게 남에게 나누는 능력을, 무엇이 그에게 자신의 마을을 사랑하는 능력을 주었을까. 그를 궁금해하는 사이 인도네시아 전통 닭요리인 아얌이 눅눅해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아얌을 먹으며 그에게 삶을 물었다.

단단하되 부드러운 삶의 기둥을 엿보다 

요한에 따르면 그가 태어나기 며칠 전, 그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단다. 어렸을 적 그는 할아버지를 따라 군인이 되기를 꿈꿨다. 부끄러움 많은 소년이지만, 그는 언제나 아버지를 따라 기념품 가게에 가곤 했다고. 

아버지가 여러 관광객을 능숙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조금씩 영어를 배우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요한이 영어를 통해 외국인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엿본 시초였다. 동시에 그는 이웃의 기타 연주를 듣고, 군인이 아닌 음악가가 되기를 꿈꾸는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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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과 함께 아얌을 먹고있다.  인도네시아 전통 닭요리 '아얌'을 먹으며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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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인내를 겸비한 사람이셨단다. 바라지 않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며, 어떠한 문제를 맞이해도 불평하지 않으셨다고. 그를 통해 요한은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 한다. 

나이가 들어 외로운 타지 생활 중 그는 신을 통해 자신이 축복받았음을 알게 됐고, 삶이 변화됨을 느꼈다. 마을로 돌아와 '프리랜서 투어 가이드'로 지내면서도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기쁨을 누렸고, 타인이 행복할 때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요한은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무료 급식소를 열어 운영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한 걸 볼 때 나는 행복해. 그러니 더욱이 내가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신이 내게 행복을 값 없이 주었기에, 나도 다른 이에게 행복을 나눠주어야 해."

자신이 가진 것에 겸손하며 나아가 나눌 줄 아는 자세를 가진 요한. 그는 어릴 적 꿈과 연결해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한 작곡이 모여 2019년 첫 번째 앨범을 발행했다고 한다. 그저 취미로만 하는 음악이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앨범에 한껏 몰입했고, 그런 몰입은 그에게서 풍기는 행복하고 충만한 분위기로 드러났다. 

타인에게 나누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물었다.

"당신의 삶의 이유, 당신의 데이지는 무엇인가요?"
 
커다란 입으로 부끄러운 미소를 살짝 지으며 요한은 대답했다. 삶을 줄곧 지탱해 온 토대이기에 목소리에서 굳은 신념이 느껴졌다.

"신이 내게 삶을 주었기에, 나도 다른 이에게 삶을 주어야 해. 나는 지금 행복한 날들을 보내기에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나눔을, 행복을 줘야 한다고 믿어. 그것이 내 삶의 이유야…."

낯선 이방인에게 하루 종일 마을을 소개해 주고 맛있는 음식과 웅장한 유산, 소중한 시간을 함께한 그의 나눔 정신에 대한 의문은 놀라움으로, 후에 그에 대한 약간의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를 지탱하는 삶의 기둥이 앞으로도 단단하되 부드럽길 응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