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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회장(오른쪽)과 조안수 부회장, 협의회 사무실에서 @김슬옹
▲ 이은숙 회장(오른쪽)과 조안수 부회장, 협의회 사무실에서  이은숙 회장(오른쪽)과 조안수 부회장, 협의회 사무실에서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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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 있는 민단오사카본부에서 '맞춤 한글학교 교육'이란 주제로 '2023년 한글학교 교사 연수회'가 열렸다(11월 23일과 26일). 50여 개 한글학교에서 70여 명이 참여했다. 필자는 26일 '훈민정음 해려본과 언해본 동시 복간의 의미와 세종식으로 한글 가르치기 주요 전략과 실제' 강의를 하러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50여 개 한글학교에서 70여 명이 참여한 이번 행사를 총괄 기획하고 진행하느라 눈코뜰새 없었던 이은숙 회장을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언해본이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는 협의회 사무실에서 짬짬이 인터뷰를 했다. 조안수 부회장이 함께했다.

이은숙 회장은 <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박인기·김봉섭 엮음, 2022,푸른사상)의 공동 저자이기도 했고, 2022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나본 적도 있다.
    
“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 출판 기념을 위해 2022년 8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은숙 회장(왼쪽)과 함께한 공저자 이하늘(독일 바스바덴 한글학교 교장), 이은영(호주 한글학교 협의회 전회장) @김슬옹
▲ 지구촌 한글학교 이야기 출판기념회에서의 이은숙 회장(왼쪽) “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 출판 기념을 위해 2022년 8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은숙 회장(왼쪽)과 함께한 공저자 이하늘(독일 바스바덴 한글학교 교장), 이은영(호주 한글학교 협의회 전회장)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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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일본에서 한글학교 선생님을 하시게 됐나요?
"제가 1992년도에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일본에 와서 국제관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녔어요. 석사 논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관련 햇볕 정책에 대해서 썼었고요. 그리고 계속 일본에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국제 관계 전공을 살려서 일본에서 직업을 찾기가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학생 때 한국어로 가르치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서 전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에 가서 한국어 교사 연수 과정을 한 겁니다.

그 무렵 오부치 수상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잖아요. 그때 이제 한일 관계가 봇물이 터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한류 붐이 일어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2004년 무렵 한류 붐이 터진 거예요.

그 전에 제가 문화원의 어학당(지금 세종학당의 전신)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류 바람을 타고 욘사마붐이 터지니까 일본 여성들이 600여 명 정도 온 겁니다. 그후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가 한글학교를 접하게 되었고요. 제가 일본인한테 한국어는 많이 가르쳤지만, 우리 동포들한테,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건 처음이었어요."

- 일본에서 한글학교의 중요성은 무엇인가요?
"동포 아이들 가운데 '내가 일본인인데 왜 한국어를 배워요?' 이런 생각을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너희 부모님이 한국인인데, 왜 네가 일본인이야?'라고 했더니, '나는 한국을 가본 적도 없고, 한국말도 못 하고 그래서 나는 일본인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좀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정체성 교육에 비중을 두고 한글학교에서의 아이들 변화를 계속 지켜봤었어요.

한글학교를 한 6개월 다니니까 애들이 한국에 대해서 알게 되잖아요. 알게 되니까 점점 '나 한국인이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애들이 모르니까 '내가 일본인'이라는 생각을 하는구나. 그런데 사실 국제 결혼 가정 자녀를 포함하여 일본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거의 90%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아이들이 한국을 접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거를 숨긴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일본인이라는 생각으로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글학교를 통해서 한국을 좀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힘을 합쳐 동포 아이들을 위해서 연구도 하고, 아이들이 한글학교에 와서 한국을 좀 많이 알 기회와 교육을 해보자고 해서 제가 한글학교에 더 몰입하게 된 겁니다."

- 한글학교 선생님들의 사명감이 예사롭지 않군요. 부모님들 태도는 어떠신가요?
"
정말 여러 사건이 많아요. 한글학교에 와서 애들이 그냥 돌아가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고… 왜냐하면 한글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거의 부모님에 이끌려서 오거든요. 이 아이들이 한글학교를 학교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님들한테 이끌려오다 보니까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아니면 일본 학교에 다니면서 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학원이 한글학교 요일이랑 거의 다 겹쳐요. 그렇게 되면 학원을 우선시하고, '한국어는 나중에 크면 배우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체성 교육을 연구하다 보니까 이게 학부모님들이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큰 일 나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 아이들도 배울 권리가 있거든요. 자기 부모님들에 의해서 일본에 왔고 두 문화를 가지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본 사실을 학부모님들이 모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학부모 간담회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학부모님들의 생각이 또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들이 아이들을 한글학교를 데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학부모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정체성 문제를 함께 논의해 나가는 것이지요."

- 한글학교 안에 일본인 학습자가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류를 넘어 K컬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일본인이 계속 늘고 있어요. 현재 성인반의 경우 60~70%가 일본인이죠. 그들이 한국문화도 함께 접할 수 있는 한글학교를 선호하는 것이죠. 그런데 한글학교는 동포들의 정체성 중심 교육이 주요 목표인데 외국인을 가르치는 것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점도 많은 거예요.

일본에서 동포는 소수자(마이너리티)인데 한글학교에서는 다수자가 되는 것이죠. 한글학교 안에서는 동포의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하고 일본인들한테 한국을 알리는 효과도 있고 동포들의 정체성 교육을 시민 교육으로 확장하는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이전에 김웅기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민족 교육하고 정체성 교육은 다르다고 하시면서 세계 시민이 되려면 내가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연구하면서 알게 된 부분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민족 교육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정체성 교육이라고 하죠. 특히 일본에서 말하는 민족 교육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인권 교육이라고 강조하셨죠. 차세대 동포에게 한민족으로서 자존감을 형성 또는 회복하는 민족 교육이 필요하고 더불어 내가 누군지를 아는 정체성 교육도 필요합니다.

일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러한 교육을 받을 수가 없죠. 한글학교에 오게끔 해서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거죠. 한글학교에 일본인이 있다면, 일본 사람이랑 서로 교류하면서 나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하는 곳이 한글학교인 것이죠.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동포들도 꽤 많은데 이분들도 한글학교에서 정체성 문제를 치유받곤 하죠. 처음에는 한국인 뿌리를 숨기던 그들이 한국말로 커밍아웃할 때 가슴이 찡해요. 한국 국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일본인으로 살다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뿌리를 알게 되고 그 애들이 떳떳하게 한국인이라고 밝힐 때 가장 보람을 느꼈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한국 국적을 철저히 숨긴 어떤 아이가 한국에 연수를 가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연수 조건이 한국에 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조건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조용히 와서 "선생님 저 코리안데스"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비밀로 해 주세요'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아이가 한국 갔다 와서 또 한류 붐을 보면서 커밍아웃을 하는 거죠.

그런데 왜 이 학생들이 비밀로 하려고 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안 가르쳤기 때문이에요. 모르기 때문이에요. 몰라서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열등감을 가지면서 성장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이 한글학교에 오면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 많으니 공감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의 씨앗을 심어주는 곳이 한글학교입니다. 나중에 한일 관계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한국을 대변해 줄 수도 있어요.

K컬쳐 영향으로 어느 대학은 한국어 수강자가 1000명이 넘는다고 해요. 이들은 케이팝에 열광하면서 한국어, 한국 음식도 좋아합니다. 이런 일본 학생들이 나중에 한국을 대변해 주지는 않겠습니까?"

- 올해 재외동포청이 생겼으니까 한글학교에 지원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이렇게 한글학교의 중요성에 비해 있는데 교육환경이 열악합니다. 저희 협의회 임원들은 저를 포함하여 모두 자원 봉사로 한글학교를 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각 한글학교에서도 봉사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봉사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글학교 교육이 중ㆍ고ㆍ대학이나 성인들 수업보다 배로 힘들거든요.

아이들 특성에도 맞춰야 하고 충분한 교재, 교구도 없습니다. 선생님들의 대우가 좋아야 교육 현장에 활성화가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선생님들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리고 일본에 맞는 정체성 교육을 하려면 선생님들에게 먼저 정체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듯 교사 교육, 시설 확대, 환경 개선 등 지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오사카에 있는 세종학당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좋은 환경과 선생님들 대우, 갖추어진 교재, 교육 자료들이 있어서요. 정체성 교육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기 때문에 학부모 교육, 차세대 캠프 여러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정적 지원이 따르면 추진할 예정입니다."

- 다른 유럽이나 이런 데 보면 한상이라고 있어요. 한국 상공인연합 그런 데서 지원을 많이 받더라고요.
"현재 저희는 지원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행사에 한인회 분들을 처음 모셨어요. 한인회에서도 차세대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서로 어떻게 협업해 나가면 좋을지 구상 중입니다. 저희가 교장, 교사 연수 등 사업을 진행할 때 오사카총영사관과 민단오사카본부에 도움을 요청하면 협조를 해 줍니다. 앞으로 한인회가 함께 협업해 나간다면 많은 아이들에게 정체성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연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느라 시내 관광조차 하지 못했지만, 내가 강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연수받으러 와서 귀한 경험과 가르침을 얻고 가는구나 하는 뿌듯하면서 느꺼운 감정이 밀려왔다.

월요일 생업까지 접어두고 혼잡한 간사이 공항 출국장 입구까지 배웅해 준 조안수 부회장의 20년 일본 생활을 파노라마처럼 들어보니 한글학교 선생님들이 민간외교관이라는 말이 절로 다가왔다.
 
2023년 한글학교 교사 연수회를 마치고  @ 재일본한글학교관서지역협의회 제공
▲ 2023년 한글학교 교사 연수회 기념 사진 2023년 한글학교 교사 연수회를 마치고 @ 재일본한글학교관서지역협의회 제공
ⓒ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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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글학교, #이은숙회장, #재일본한글학교, #정체성교육,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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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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