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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위를 많이 탄다. 가을까지는 늘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낸다. 하지만 겨울과 여름 중 하나를 고르자면 항상 나는 여름이다. 왜냐하면 여름은 습하기 때문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름이 습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름이 습하고 축축해서 좋다.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은 바로 가을이다. 

지금처럼 가을 냄새가 솔솔 나는 때가 되면 다시 나를 찾아오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르륵. 그렇다. 나는 봄, 가을, 겨울이 되면 하루에 한 번씩 코피가 난다. 길게 나지는 않고 한 번씩 나다 말긴 하지만 그게 매일이라면 참 귀찮은 일이다.

이런 이유로 나에게 가을 냄새는 코피 냄새로 기억된다.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은 가을 하늘이 보이면 나는 절로 우울해진다. 발표 중 코피, 국 위로 떨어진 코피, 자다가 코피 맛이 나서 깨는 상황... 이 모든 것이 짜증나지만 제일 싫을 때는 희귀한 고전완구, 특히 솜인형 위에다 코피를 흘렸을 때다.

추가로 얘기하자면 고전완구 중 마론인형이나 솜인형에 코피가 치명적인 이유는 마론인형의 옷이나 솜인형의 피부에 코피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빨리 빨면 싹 없앨 수는 있지만 고전완구들은 내구성이 약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에 닿기만 해도 인형의 이목구비가 떨어지거나 인형의 팔다리가 헤질 수 있다.

오늘의 주제는 고전완구. 그 중 고전인형이다. 고전완구와 고전문구는 함께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전 로봇을 모으는 사람이 고전 보드게임이나 딱지를 모으고, 고전 다이어리를 모으는 사람이 관련 인형을 모으는 식이다.
 
소년기사 라무 고전완구
▲ 소년기사 라무 고전완구 소년기사 라무 고전완구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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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고전문구와 함께 고전완구를 수집한다. 그 중 특히 문구점이나 완구점에서 파는 솜인형 또는 마론인형 수집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 근처 시장에 가면 40년 된 완구점이 있다. 불혹의 가게이지만 그곳은 여전히 현역이다. 1층과 눈에 잘 보이는 코너에는 요즘 인기 캐릭터인 캐치 티니핑, 브레드 이발소, 레고 등이 있고, 2층에는 40여 년 간의 역사가 담긴 재고들이 있는 보물창고이다. 갈 때마다 다양한 연령의 손님들을 만날 수 있어 신기하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마스코트 수탉 인형
▲ 98년 프랑스 월드컵 마스코트 수탉 인형 98년 프랑스 월드컵 마스코트 수탉 인형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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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들은 바로 2층에 올라가거나 구석부터 찾아들어가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정말 많은 인형들을 데려갔다. 패트와 매트, 바비, 아프로켄, 모모판다, 94년생 도날드덕 데이지덕, 셀 수도 없다.

너무너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치명적 약점을 건드리는 것은 먼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조하다는 것. 코피를 부르는 조건이기 때문에 갈 때마다 항상 코에 뿌리는 약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이미 코피가 나기 시작하면 약도 소용이 없다.

그날도 인형기사 레카, 마이멜로디 인형, 텔레토비 인형, 심슨을 바리바리 안고 1층으로 내려오려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코피 나온다.' 

3초 뒤 코피가 떨어질 거 같은 쎄한 냄새가 내 코 안을 채웠다. 그러나 내 품속에 있는 것들은 너무도 귀했다. 순간 생각할 틈도 없이 손에 있는 인형을 1층 빈 곳으로 던져 넣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랬다.

실제로는 인형을 내동댕이 친 사람이 되어 균형을 잃고 넘어진 채 1층으로 입장하였다. 다행히 맞은 사람은 없었지만 사장님과 시장 동료 할아버지분께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올해의 민폐 손님'으로 뽑혀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과연 40년차 장난감 가게 사장님이었다. 바닥을 구르는 어린이 손님들을 얼마나 많이 보셨겠는가. 화도 내지 않으시고 아주 침착하게 나와 인형들을 구조해주셨다. 나는 항상 안전해서 놀랍진 않았지만 인형이 안전한 것과 나의 행동에 분노하지 않으신 것이 너무 감동이었다.

물론 그 뒤로 나는 사장님이 기억하는 손님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 집에 머물러 있는 그 인형들을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 먼지 냄새와 코피 냄새가 뽀얗게 쌓여 있던 나의 흑역사를 담은 보물상자. 고전완구를 모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가게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마스코트 '아트모'
▲ 2002 한일 월드컵 마스코트 "아트모" 2002 한일 월드컵 마스코트 '아트모'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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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르게 인형들은 건조한 환경을 더 좋아한다. 습한 환경에서는 솜이 훼손될 수도 있고, 세탁이 어려운 고전완구들인데 장마철 쿰쿰한 냄새라도 배어버리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내게는 괴로운 가을이 인형들에게는 가장 뽀송하고 예쁠 때이다. 그래서 참는다, 요즘 인형들이 너무 예뻐서. 잊게 할 만큼 행복을 가져다 주어서. 떠나버린 습기에 마냥 슬프지 만은 않을 수 있다. 어떤 계절이든지 멋진 점이 하나씩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나저나 기사를 쓰다보니 더 건조해지기 전에 그 장난감 가게를 다시 찾고 싶어졌다. 오랜 기간 잠들어 있을 나의 인형들을 만나러. 나의 10월을 조금이나마 사랑해보기 위하여. 미운 가을이여 오라.
 
90년대 패트와 매트 인형
▲ 90년대 패트와 매트 인형 90년대 패트와 매트 인형
ⓒ 박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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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전문구, #추억, #고전완구, #가을,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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