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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말 하실 거예요?"
"응, 하려고."
"흐응, 괜히 했다가 스트레스 받으면 어쩌려고요? 지금도 툭하면 위가 아프다면서."

아이는 내가 작성하고 있는 학업계획서를 보고는 내심 못미더운 말투였다.

"그래도 해볼 거야. 맨날 해야 한다고 말만 하는 것 보다는 직접 부딪쳐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냥, 지금처럼 하는 것도 좋은데. 그리고 요즘은 책을 만들어 주는 곳도 있어서 엄마가 원하면 언제든지 책을 만들 수 있어요. 엄마가 책을 내고 싶으면 그런 방법이 더 편하다는 거죠. 굳이 지금부터 배워서 하는 것 보다는."
"아니, 그게 아니라 글을 쓸 때 한계가 느껴지기 때문이 배워야겠다는 거야.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배우고 싶은 거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내가 받는 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는 얼마든지 받아도 좋아. 아빠나 너희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아니면…"

어느새 내 말투는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식구들 중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했고 믿었던 작은 아이마저 시큰둥한 반응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하긴 그동안 내 이름이 박힌 수필집을 한 권 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보낸 햇수가 한 두 해가 아니고 보면….

그렇다고 말만 한 게 아니라 틈만 나면 거실에 상을 펴 놓고 두꺼운 공책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곤 했었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게 재미있고 나름대로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아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전문적인 배움이 없다보니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해 답답해졌다. 글의 내용이 그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서.
지금도 변함없이 내가 꿈꾸는 것은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작가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를 바라는 것도 아닌, 그저 내 삶의 모습을 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의, 엄마의 삶을 전해줄 수 있도록.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지금도 변함없이 내가 꿈꾸는 것은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작가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를 바라는 것도 아닌, 그저 내 삶의 모습을 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의, 엄마의 삶을 전해줄 수 있도록.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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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는 글은 진실함이 담겨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야 읽는 이에게도 그 진실함이 전해져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것일 뿐,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넓게,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고, 좀 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의 삶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고.

지금도 변함없이 내가 꿈꾸는 것은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작가를 꿈꾸는 것도 아니고, 베스트셀러를 바라는 것도 아닌, 그저 내 삶의 모습을 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의, 엄마의 삶을 전해줄 수 있도록.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이러한 생각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30대를 살아내고, 사랑에 대해 아쉬움과 후회로 남편과 데면데면한 채 40대를 버티어내면서 가슴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를 버티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날들을 보내면서 하소연할 상대로 끄적이기 시작했던 것이 언젠가부터는 상을 펴놓고 두꺼운 스프링 노트를 펴고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 어수선한 마음이 정리가 되어 안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쌓여가는 노트가 10여 권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당신 이야기는 다 비슷비슷해? 어릴 때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보니 청승맞기도 하고, 좀 더 밝은 이야기를 써봐. 읽는 사람 기분도 좋아지게."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왜 마음대로 봐요? 그리고 내가 살아온 게 그런 걸. 아무튼 컴퓨터를 할 때도 당신 할 것만 하고 내 파일 마음대로 열지 말아요."

내가 쓴 글이 글이라기보다는 넋두리 정도로 생각하는 남편의 관심도 야속하고.

"엄마가 보내준 글 읽어봤니? 어때?"
"응? 아, 나 과제 때문에 바빠서, 나중에 볼게요."

엄마가 뭘 하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아이들의 무관심이 서운했다. 그뿐인가? 글을 쓰려면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글을 쓰고 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보니 맥이 끊기게 되고, 그렇다고 늦은 밤 시간이나 새벽 시간을 이용하자니 식구들의 생활리듬이 깨져 겁이 나서 그만두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동안 쌓아놓은 두툼한 분량의 공책들이 10여 권은 넘어도 막상 들여다보면 아니다 싶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름 결심한 것이 그동안 썼던 글들은 글을 쓰기 위해 끄적였던 것들로 치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배우며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나 ○○○사이버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려고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냥 지금 하던대로 하구려. 이제와서 배우면 뭐가 달라지나? 그 나이에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할 것도 아니면서."
"누가 알아요? 나도 문단에 이름을 올릴지? 그리고 박완서님도 마흔이 넘어서 소설가가 되었는데 쉰이 넘으면, 아니 예순이면 어때요?"

어느새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높아져 있었다.

"당신한테 도와달라는 말하지 않을테니까 걱정 말아요. 대신 내가 글을 쓸 때는 방해하지 말아요."
"허, 참, 알았어요. 알았어. 그나저나 입학할 수나 있을라나 몰라. 나이가 많아서."
"…"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나를 이해해 주기보다는 귀찮아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의 이기적인 모습에.

'나이'가 살아온 세월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뿐이라는 말에 예전보다 지금 더 많이 마음이 기우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많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다는 게 슬픈 것은 아니다. 젊어서 좋은 것이 있는 것처럼 나이 들어 좋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이치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쉰을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는 일이 남들 눈에는 쓸데없는 객기나 소용없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계속할 것이다. 조심조심 설렘을 가슴에 안고.

덧붙이는 글 |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글



태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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