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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13년 밀알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캠페인 '우리의 눈은 아프리카를 향합니다'를 후원하며 지구촌 빈곤의 현주소를 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말]
4월 3일, 아프리카에서 첫 아침을 맞았다. 아니 새벽을 맞았다고 해야 옳다. 바뀐 잠자리 때문에 몇시간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을까 하는 순간, 확성기 소리에 눈을 뜨고 말았다. 창밖은 여전히 어둠뿐인데 누가 이 시간에 저렇게 큰소리로 잠을 깨우는 것일까. 시계를 보니 현지 시각 오전 5시 20분. 질 낮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어떤 종교의 주문이지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도 비슷한 게 있었다. 한국의 새벽을 깨우던 교회의 새벽종 소리 혹은 동사무소 확성기에서 울리던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운동 노래소리가 그것이다.

아침식사를 하며 물으니 우리가 숙소로 사용하는 한별학교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는 무슬림 사원에서 나는 주문(경)을 외우는 소리라고 한다. 무슬림들은 이 소리에 맞춰 하루 다섯 번 그들의 성지를 향해 경배를 한다. 국민의 50%가 무슬림이라는 에티오피아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부지런한 무슬림 아저씨는 귀국하는 날까지 게으른 나의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이 됐다.

머리는 무거웠지만 하늘은 맑았다. 에티오피아는 6월부터 9월까지 우기인데 온난화의 영향인지 올해는 일찍 우기가 시작됐단다. 우기라지만 하루종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니고 스콜처럼 몇시간 비가 내린다고. 그렇기 때문에 건기에 비해 공기도 맑고 하늘도 그만큼 쾌청한 것이다.

오늘은 에티오피아의 시골 딜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는 작은 동네를 찾아 갈 예정이다. 가난과 장애 때문에 부모로부터 버려진 다섯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곳이다. 사진과 화면 그리고 말로만 전해들었던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날.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왔다.

악취 가득한 방, 5명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지냅니다

허름한 집안. 젤레께(맨 오른쪽)와 사라(왼쪽에서 두 번째), 삼바타(맨 왼쪽)이 방 안에 있다.
 허름한 집안. 젤레께(맨 오른쪽)와 사라(왼쪽에서 두 번째), 삼바타(맨 왼쪽)이 방 안에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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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과 한별학교 교장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허름한 꼬로꼬로벳(함석지붕집)에는 시각장애를 가진 5명의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형용하기 어려운 악취가 코를 찌른다.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듣고 세수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배어있던 냄새를 없애기에는 부족했을 터. 시멘트 바닥위에 깔아 놓은 낡은 매트, 물통처럼 보이는 비닐 드럼통 두 개, 며칠 전 누군가 가져다줬다는 낡은 옷이 담긴 종이박스 두어 개와 벽에 걸린 비닐봉지 몇 개가 이들 살림의 전부였다.

"살람루, 살람루"

꼬로꼬로벳에 살고있는 이웃 아줌마들은 정이 있고 따뜻했다. 갑작스런 외국인들의 방문을 환대하며 반갑게 악수를 청하더니 어느새 자기 집에 있는 의자를 들고 와 손바닥으로 닦아주며 앉으라고 권한다.

지나는 여행자들이 해가 저물어 아무 집이나 두드려 하룻밤 묵기를 청하면 깨끗한 물을 떠와 손님의 발을 닦아주고 귀한 음식을 대접하며 그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내주는 것은 에티오피아의 오랜 전통이며 이들의 자부심이란다. 내일 당장 먹을 식량이 없을지라도 내집을 찾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풍습은 지금은 잊혀진 전통이 됐지만, 수십 년 전까지 우리의 자랑이기도 했다.

30대로 보이는 이웃 아줌마가 시각장애를 가진 다섯 아이들을 돕는 헬퍼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1년 4개월 전부터 이 아이들을 돌보게 됐는데 이웃들이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적은 돈이라도 조금씩 모아 수고비를 받고 있단다.

"제가 이 아이들과 같이 생활한 것이 1년 4개월 정도 됩니다. 저는 아이들 학교 가는 것을 돕고 이것저것 생활에 도움을 주고, 또 다른 이웃 아줌마가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해 줍니다."

"장애인 없어서 놀랐는데, 사실은..."


삼바타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고열 때문에 시각을 잃었다.
 삼바타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고열 때문에 시각을 잃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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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젤레께(남·8), 더러운 웅덩이에서 출산을 하는 바람에 감염으로 인한 시작장애를 가지게 됐다는 사라(여·9),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고열 때문에 시각을 잃었다는 삼바타(여·15세) 그리고 아주 가까운 것은 알아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고 있다는 메셀레치(16)와 제리투(17).

다섯 아이들은 장애와 가난으로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방치된 아이들로 각기 다른 지방에서 살던 아이들이다.

"이 나라에 처음 왔던 20년 전에는 장애인들을 전혀 볼 수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정을 방문해보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어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누군가 도와줘야 문 밖이라도 나오는데 도울 사람이 없으니 방치된 채로 살다 생을 마감하는 거지요."

아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는 한별학교 정순자 교장은 에티오피아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여기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의 형편도 다르지 않아요. 부모가 없어 이웃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았거나 부모가 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삶을 살던 아이들이거든요."

방치된 채 죽음을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보호자가 생겼다. 정부에서 이들에게 집을 얻어 주고 헬퍼에게 일정한 월급을 지급해 아이들을 돌보도록 지원한 것이다. 딜라에서 혹은 전 에티오피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유일한 공동생활가정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메셀레치와 제리투 둘 이었지만 젤레께·사라·삼바타가 함께 살게 되고 가족은 금방 다섯이 됐다. 그리고 1년여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은 다시 거지가 됐다. 어느날 갑자기 헬퍼가 사라지더니 집세와 식량지원 마저 끊겨버린 것이다. 알아보니 정부를 통해 이들을 지원하던 후원자가 사라져 어쩔 수 없다는 것.

다섯 아이들의 삶은 다시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가 된 다섯 아이들은 당장 굶어죽을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 따뜻한 이웃 엄마들이 발 벗고 나서 이들을 도왔다. 자신들도 1달러에 못 미치는 돈으로 근근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빈민들이지만 앞 못 보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웃의 십시일반으로 자라는 아이들

해맑게 웃고 있는 사라. 이 아이는 더러운 웅덩이에서 출산되는 바람에 시각장애인이 됐다.
 해맑게 웃고 있는 사라. 이 아이는 더러운 웅덩이에서 출산되는 바람에 시각장애인이 됐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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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은 자신들의 인제라(에티오피아의 주식)와 꼬쪼(폴스바나나 뿌리의 전분을 이용해만든 음식)를 조금씩 떼어 아이들에게 가져다줬고, 이웃집 아줌마에게 작은 수고비를 마련해주며 헬퍼를 대신하도록 부탁했다. 하지만 가난한 이웃들의 도움만으로는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 이웃들은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소수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이 하루 한 끼를 먹고 잘 사는 중산층이라고 해봐야 두 끼를 먹는 가난한 동네에서 다섯 아이들의 생활을 책임져줄만한 후원자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고민하다 찾아 온 사람이 한별학교 정순자 교장이었다. 정 교장은 '오죽 하소연할 데가 없었으면 나 같은 외국인을 찾아왔겠나'라는 생각에 당장 아이들이 사는 집을 방문했다. 아이들의 형편을 목격한 정 교장은 월세와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학교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지만 당장 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월세 350비르(1비르=한화 약 60원)와 아이들이 먹을 식량을 지원하고 있어요. 안타까운 것은 이 아이들이 병원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해 치료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다섯 명 중 둘은 치료가 어렵다고 했지만 나머지 셋은 치료하면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병원에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어 그 가능성조차 모른다는 거지요. 이 지역에 한국에서 의료봉사 나와 계신 안과의사가 계시는데 아이들을 한 번 보여 보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치료나 수술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방법을 알아봐야죠."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은 누워 지내야만 합니다

아이들은 딜라 대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점자를 배울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은 딜라 대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점자를 배울 수 있게 됐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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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쉴 새 없이 손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삼바타와 사라. 장난감인가 했더니 붉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판 아래 종이를 깔고 송곳처럼 생긴 펜을 꼭꼭 눌러 점자를 쓰고 있었다.

"에이, 비이, 씨이, 디이...."

자신이 쓴 글자를 손끝으로 더듬어가며 읽어주는 삼바타와 사라. 옆집 사는 헬퍼 아줌마가 딜라 대학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단다. 그래서 딜라 대학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점자를 가르치는 교사가 집을 방문해 아이들이 점자를 배우게 됐다는 것.

"메셀레치와 제리투는 초등학교 1학년, 삼바타와 사라는 유치원 과정을 배우는데 자신의 이름을 쓰고 조금이라도 모르는 것을 배워나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와 준 것 만해도 고마운 일인데 더 바랄 것이 뭐 있겠어요. 정부에서 후원을 중단했던 것처럼 하다가 중단되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벽에 붙어 있는 종이. 그 안에는 점자 교육의 흔적이 있다.
 벽에 붙어 있는 종이. 그 안에는 점자 교육의 흔적이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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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방문한 시간 나이가 많은 메셀레치와 제리투는 물을 길러 나가 집에 없었다. 집에 있는 세 아이가 전혀 앞을 볼 수 없는가 하면 메셀레치와 제리투는 아주 가까운 것은 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물을 길러가거나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집에서 한 20분 정도 걸어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 길게 줄을 서야 해요. 개인집에 펌프를 설치하고 물을 파는데, 한통에 보통 2~3비르를 받지요. 여기 사람들 하루 일당이 20~30비르 정도니 물 값도 비싼 거예요. 하지만 우물도 가뭄이 지속되면 마르죠... 그러면 오염된 흙탕물을 떠다 먹고 장티푸스나 피부병 혹은 전염병에 걸리는 거죠."

물이 귀한 나라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딜 가든 노란 비닐 물통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 몸집만한 물통을 두 개씩 들고 가는 서너 살 아이의 모습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두 살짜리 아이도 물을 길러 갈 수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라·젤레께·삼바타는 물을 길러 갈수가 없다. 두 언니들을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나 물을 사러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헬퍼에게 이것저것 아이들의 형편을 물어봤다. 헬퍼는 다섯 아이 중 넷이 여성이라 필요한 게 많다고 했다.

"메셀레치와 제리투는 물론 이제 막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삼바타까지... 브래지어와 생리대는커녕 팬티도 없어서 그날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야 해요. 도와주고 싶지만 마음뿐이지 저희들도 그럴 여유가 없네요."

가난과 장애와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생리적인 불편함까지 삼중고에 시달리는 아이들. 최근까지도 옷 한 벌로 지내다가 며칠 전에 누군가 옷가지 몇 개를 가져다줘서 입었던 옷을 빨 수 있었다고 한다.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들의 삶이 어디까지 누추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희망 바라봅니다

김혜원 시민기자가 입고 있던 분홍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삼바타. 젤레께·사라와 함께 집을 나서고 있다.
 김혜원 시민기자가 입고 있던 분홍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삼바타. 젤레께·사라와 함께 집을 나서고 있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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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퍼와 우리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두 아이들은 점자 쓰기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처럼 종이도 귀해 한 번 사용한 점자 종이를 돌려서 다시 사용하며 쓰고 또 쓰는 바람에 구멍이 날 지경이다. 점자를 찍으며 목마름을 잊고 점자를 읽으며 배고픔을 참는 아이들. 그러나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기에 무작정 슬프지만은 않다.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 같은 아이들에게 점자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의사가 돼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치료해줄래요."

점자를 배우고 점자를 점자로 된 책으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손 끝에 느껴지는 글자로 희망(테스파)을 배우고 희망을 쓰며 희망을 품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부모들의 가난과 무지 때문에 치료는커녕 진단도 받아본 적 없다는 점이다. 진단이라도 받아본다면, 치료가 될 수 있다면...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단어 '테스파'(희망). 어쩌면 지구 반대편 코리아라는 나라에 이 아이들의 테스파가 되줄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밀알복지재단(02-3411-4664)에 전화하시면 후원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밀알복지재단 누리집]을 통해서도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지마 아프리카, #밀알복지재단, #에티오피아, #시작장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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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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