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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야당을 두고 표 도둑이라고 우스개로 넘겼는데 진짜 도둑이 있는 줄은 몰랐다. 통합진보당이 2일 말로만 돌던 부정선거 의혹을 인정했다. 조준호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장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총선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투표는 물론 현장 투표까지 총체적 부실과 부정이 있었다고 한다. 충격이 크다.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공동대표의 관악을 지역구 야권단일화 경선에서도 여론 조작을 시도하다 걸려 물의를 빚었다. 이 대표는 3월 23일 사퇴로 책임을 졌지만 야권연대가 가진 의미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야권연대는 단순히 후보를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변했다. 야합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 일은 지난 4월 11일 치러진 19대 총선 투표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총선 전국 투표율은 54.3%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새누리당이 싫어서 민주당을 찍고, 민주당이 싫어서 통합진보당을 찍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마저 헛발질을 하면서 셋 다 싫어 투표를 아예 안 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유권자가 선호하지 않는 정당을 억지로 찍어야 할 이유는 없다.

공당인 통합진보당은 이번 부정선거 사태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진성 당원의 당비로 운영되지만 국가 보조금도 받는다. 국가 보조금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세금 갖고 장난쳤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초등학교 반장이나 동네 이장도 이렇게는 안 뽑는다.

통합진보당은 당명에 진보를 내걸었다. 제대로 진보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걷는 길은 수상하다. 진보는커녕 보수의 가치인 원칙과 상식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겉으로는 당원의 권리를 내세우지만 당 내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런 정치 세력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의 몸을 먼저 닦아야 가정도 국가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법이다. 자정 능력이 부족한 정치 세력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이번 사태는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숫자로 밀어붙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드러내면서 생긴 일이다. 그간의 관행대로 했을 뿐이니 부끄러움도 잘못도 잘 느끼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최근 시끄러웠던 논문 표절도 관행에서 빚어진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논문 표절을 정의로운 일이라고 하진 않는다. 하물며 부정선거는 말할 것도 없다.

호랑이 없는 소굴에 여우가 왕이라고 하는데 통합진보당 당권파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들은 당 내에서 다수일지 몰라도 국회에서는 철저한 소수다. 소수의 설움을 잘 아는 사람들이 공직 후보자 선정을 놓고 당 내 소수파를 누르고 편법을 써가며 지분 싸움을 한 건 상식선에서 이해가 안 된다. 없는 살림에 욕심만 실컷 부리는 걸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통합진보당은 이번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10.30%인 219만8082표를 얻었다. 진보와 변화의 열망을 담은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가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이들을 멋지게 배신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얼굴에 실컷 먹칠했다. 지금도 스스로 썩은 살을 도려내기보다 철저히 여론의 눈치를 봐가며 몸조심하는 걸 보면 먹칠이 다 끝난 것 같지도 않다.

통합진보당이 사는 길은 빠른 시일 내에 책임자를 문책하고 후보 사퇴 등 뚜렷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국민이 기꺼이 납득할 만한 강력하고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 시간을 더 끌어 좋을 건 하나도 없다. 19대 국회에서 세 번째로 많은 13석을 보유한 통합진보당은 더 이상 대학교 동아리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

지금도 당 내에선 책임자 처벌과 후보 사퇴 여부를 놓고 격론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일에 옥신각신하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 문제다. 한심한 현실 인식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새누리당은 강 건너 불구경에 신이 난 듯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나섰다. 수구 보수 세력에게도 조롱거리가 되기 딱 좋은 일이라는 뜻이다.

유권자는 투표로 앞날의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국가는커녕 자신의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정치 세력에게 표를 던져야 할 이유는 없다. 통합진보당은 표를 준 유권자와 진보 개혁 진영을 지지하는 국민을 더는 쪽팔리게 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에 이런 진보는 필요 없다.


태그:#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비례대표, #이정희,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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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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