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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호텔이지만 샤리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 시와의 아침 식탁 소박한 호텔이지만 샤리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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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가 아침을 깨우는 마을
 
아침 햇살을 받은 샤리는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흙벽돌을 쌓고 철떡철떡 진흙을 이겨 붙인 옛집, 중세에 지어졌으나 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무너져 버렸다는 샤리가 바라다 보이는 아침식탁에 우리 가족은 자리를 잡았다.

밤잠은 설쳤다. 지난 밤, 오토바이 소리와 차 소리가 잦아들 즈음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새벽이 되자 꼬끼오~ 닭울음소리가 끼어들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엔 아잔(예배 알림) 소리마저 더해졌다. 날이 밝자, 이젠 비둘기들의 구구거리는 소리와 흐엉흐엉 울리는 당나귀 소리까지 이어졌다. 시와에서의 첫 아침은 그렇게 열렸다.

으아~ 이렇게 다양한 소리는 처음이다. 그래,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마을 촌구석이니까 닭울음소리는 당연하다, 이슬람 문화권이니까 아잔 소리도 당연하다, 비둘기까지도 그렇다 치자. 그런데 당나귀 울음소리만큼은 무시하고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나귀 소리가 그렇게 울림이 큰 줄 처음 알았다.

어제 오후, 시와에 도착했을 때 여행자들을 제일 처음 맞이한 것은 바로 동키택시였다. 어린 소년들이 몰고 다니는 동키택시는 시와의 명물. 가끔은 귀여운 당나귀들을 더 귀여운 아이들이 몰고 다니는 걸 발견하기도 한다. 당나귀들의 배설물 때문에 마을을 거닐 때에는 발밑을 살펴야 한다.

이 작은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해 제일 비싸다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래봤자 트리플룸이 아침식사 포함해서 100파운드(1이집션파운드=220원 정도). 한국에서라면 외진 시골 마을에나 있을 법한 허름한 민박 수준이지만, 전망 하나는 끝내 준다.

창을 열어 보니, 샤리가 시원하게 드러났고 이쪽 길로 들어와서 저쪽 골목으로 빠져 나가는 동키택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이 모여 짝지어 놀고 길 모퉁이에서는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당나귀가 쉬고 있었다. 작은 테라스 난간에 턱을 괴고 내려다보고 있자면 그림책의 이야기처럼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어린 아이들이 당나귀 달구지를 몰고 다니는 모습은 시와의 독특한 풍경. 동키 택시는 좀더 큰 소년들이 몬다.
 어린 아이들이 당나귀 달구지를 몰고 다니는 모습은 시와의 독특한 풍경. 동키 택시는 좀더 큰 소년들이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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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에 시와 오아시스가 보인다. 이곳은 사하라 사막의 동북부, 리비아 사막. 그 한가운데에 제법 큰 시와 오아시스가 있고 그 덕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저 멀리에 시와 오아시스가 보인다. 이곳은 사하라 사막의 동북부, 리비아 사막. 그 한가운데에 제법 큰 시와 오아시스가 있고 그 덕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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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어제 저녁, 이집트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이곳에서 제일 맛 좋기로 유명한 식당에서 샤크슈카와 치킨파이를 먹고 나서 우리 가족은 합의를 보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쓸데없는 모험하지 말고 이 집에서 이 메뉴만 줄기차게 먹자고.

따끈따끈한 샤크슈카는 말할 것도 없고, 치킨파이의 바삭함과 고소한 맛은 피자 저리가라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올 때 같은 버스를 탔던 한국인 학생 남녀가 우리 자리 옆에 앉았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치킨파이 두 조각을 나누어 주었고, 여학생은 터어키에서 사온 고추피클을 내놓았다. 무거워서 살까말까 망설였다는 그 귀한, 국경을 넘어온 노랗고 몽땅한 고추피클과 치킨파이의 맛은 환상이었다.

맛있는 생각에 행복해하는 사이, 알리가 팔뚝에 에이쉬(일명 걸레빵)를 잔뜩 걸친 채 나타났다. 저래서 별명이 걸레빵인가?, 싶다. 중동붐이 일던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둥글고 넙적한 빵 에이쉬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무슬림들이 식사를 할 때에 양고기나 닭고기를 식지 않도록 에이쉬로 말아 놓기도 하고, 맨손으로 음식을 먹다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기도 해서 붙여졌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국민음식을 그렇게 더러운 이름으로 부르는 걸 이집션들이 알게 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알 파치노의 초대

뜨거운 뚝배기 바닥에 다진 쇠고기를 깔고 토마토 소스와 계란을 풀어 덮어 오븐에 구은 이집트 최고의 음식. 우리 가족은 시와에 머무는 동안 하루 두끼를 샤크슈카만 먹었다.
▲ 그리운 맛 샤크슈카 뜨거운 뚝배기 바닥에 다진 쇠고기를 깔고 토마토 소스와 계란을 풀어 덮어 오븐에 구은 이집트 최고의 음식. 우리 가족은 시와에 머무는 동안 하루 두끼를 샤크슈카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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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국민 음식, 에이쉬. 일명 걸레빵. 무슬림들이 식사를 할 때에 고기가 식지 않도록 에이쉬로 감싸기도 하고,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는 걸 보고, 중동붐이 일던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 에이쉬 이집트 국민 음식, 에이쉬. 일명 걸레빵. 무슬림들이 식사를 할 때에 고기가 식지 않도록 에이쉬로 감싸기도 하고,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는 걸 보고, 중동붐이 일던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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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가 우리의 식탁에 에이쉬와 치즈, 차와 플레인 요거트를 차려주는 동안, 잘생긴 알리의 얼굴을 나는 볼 수 없었다. 사막투어 상품을 길고 자세하게 소개해 주었지만 우리 가족은 다른 걸 선택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밤, 호텔 옥상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알리의 차를 받아 마시면서 사막투어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었다. 알리는 말했었다. 다른 투어에 비해 자신이 소개하는 투어가 훨씬 나을 거라고. 다른 투어는 정신없고 산만하지만, 자신의 투어는 조용히 사막을 느끼게 해 줄거라는 대목에서 한번 혹하긴 했지만, 비용이 훨씬 비싸 유혹을 가라앉혔다. 조근조근 말하는 알리의 까만 눈과 갸름한 얼굴이 알 파치노를 많이 닮아 한번 또 혹하긴 했지만, 한 번에 오케이하긴 그래서 정중하게 결정을 유보했었다.

이곳 사람들은 흥정이 실패해도 기분 상해하거나 불쾌해 하지 않고 여전히 친절하다. 아니 처음부터 자기가 권하는 걸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못을 박고, 차를 권한다. 알리 역시 흥정과는 상관없이 친구에게 수다를 떨 듯 이런 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자신에게는 갓난쟁이 동생이 있다고도 했다. 허걱! 알리는 적어도 스무 살은  넘어 보이는데 이제 갓 태어난 동생이 있다니. 그제야 생각났다. 무슬림들은 아내를 여러 명 둘 수 있다는 사실이.

아버지는 아내를 몇 명이나 둔 거야? 네 갓난 동생은 배다른 형제로구나! 너의 막내 어머니가 혹시 너보다도 어린 건 아니야? 너의 어머니들은 사이가 좋니? 이런 짓궂은 질문들을 차마 하지는 못하고 짐작만 해 볼 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의미를 내포한 개인사까지 듣고도 투어는 선택하지 않았으니, 무슨 낯짝으로 그 잘생긴 알리를 빳빳이 쳐다본단 말인가.

알 파치노 닮아 잘 생긴 알리가 우리 가족을 초대해 차를 대접해 주었다. 그가 기거하는 호텔 옥상의 천막 안에서 친절한 투어안내를 받았지만 결국 다른 사막투어를 선택했다.
▲ 알 파치노의 방 알 파치노 닮아 잘 생긴 알리가 우리 가족을 초대해 차를 대접해 주었다. 그가 기거하는 호텔 옥상의 천막 안에서 친절한 투어안내를 받았지만 결국 다른 사막투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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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에 아침 식사를 대충 하고는 알리의 눈을 피해 후다닥 도망치듯 옥상식당을 내려왔다. 내빼는 데는 또 내가 일등이다. 뒤따라 내려온 딸은 내게 울상을 하며 전해 주었다. 알리가 'desert?(사막)' 하고 물었는데 아빠가 디저트(dessert)로 알아듣고 단호하게 'No!' 했다는 거다.

참나, 눈치도 없는 양반일세. 걸레빵에 차나 주는 아침식사에 무슨 디저트가 있을까봐 그걸 디저트로 알아듣냔 말이다. 좀 미안해하며 사막투어를 거절해도 모자랄 판에 한마디로 딱 끊어서 거절한 격이니 이래저래 잘생긴 알리 얼굴 더 보긴 틀렸다.

우리 가족은, 한국인들이 주로 머무는 호텔로 방을 옮기고 그곳에서 사막투어를 신청했다. 멤버는 정해졌다. 7명 모두 한국인이다. 우리 가족 셋과 시리아에서 넘어온 처자, 파리에서 패션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다는 처자, 그리고 어제 만났던 고추피클 커플.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말수가 적고 깡마른 '시리아'는 쉽게 남들하고 섞일 것 같지 않은 얌전한 사람으로 보였다. 화장을 곱게 한 '파리'는 생글거리며 발랄해 보였다. 우릴 놀라게 한 건 '고추피클' 커플. 친구처럼 편안해 보여 오래된 연인들인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에서 만난 지 불과 5일밖에 안되었단다. 부럽다, 가족여행하면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나는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그럼 방을 따로 잡을까 같이 잡을까? 식당에서 돈은 어떻게 계산할까? 여행이 끝나면 그만 만나는 건가? 한국에 가서도 만남은 이어질까? 여행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먼 훗날 나라 하나에 사랑 하나씩 추억하기 정말 재밌겠는 걸.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는 사이, 차는 도착했다. 짐을 싣고 샌드 보드를 싣고 드디어 사막으로 향한다. 황금 모래가 바다처럼 펼쳐진 곳, 순도 높은 어둠이 토해내는 별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막의 밤을 맞으리라,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흙벽돌을 쌓고 진흙을 처덕처덕 발라 만들어진 샤리는 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 샤리 흙벽돌을 쌓고 진흙을 처덕처덕 발라 만들어진 샤리는 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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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주거지 샤리에는, 대부분이 낮은 지역으로 이주하여 현재는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 샤리 마을 옛주거지 샤리에는, 대부분이 낮은 지역으로 이주하여 현재는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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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시와 오아시스, #샤크슈카, #샤리, #에이쉬,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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