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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조용했을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금마을의 아침은 분주했습니다. 소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바쁜 걸음으로 마을길을 오갑니다. 알록달록한 만장이 펄럭이고, 회다지소리가 가슴을 울컥 거리게 하는 축제, 상여행렬과 회다지소리를 주제로 하는 강원도 횡성회다지 축제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칠십은 넘으셨을 어르신들이 바삐 걷고 있었지만 도회지에서 볼 수 있는 바쁜 걸음과는 의미도 느낌도 달랐습니다. 도회지 사람들이 걷고 있는 걸음이 여유 없고, 타의적이며, 피곤에 쪄든 각박한 발걸음이었다면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정금마을 어르신들이 걷고 있는 잰 걸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서 오는 경쾌함과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당당한 발걸음이었습니다.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주막에서는 아낙들의 손끝에서 이런저런 부침개들이 고소한 기름방울 튀기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휘날린 고소한 냄새들이 후각을 자극합니다.

 

 

마을 단위에서 준비해 치르는 축제

 

소복을 한 나이 지긋한 촌부(村婦)들이 부침개를 만들고 이런저런 음식을 마련하는 동안 촌로(村老)들은 제를 지낼 준비를 합니다. 횡성군도 아니고 우천면도 아닌 마을 단위인 정금마을, 강원도뿐 아니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많고 작은 산골 마을 중 하나에 불과한 정금마을에서 준비하고 치르는 행사지만 25번째라는 연록이 있어서 그런지 연출도 대본도 없는 역할들에 익숙해 보였습니다.

 

9시 30분이 되니 태기제례를 올립니다. 삼국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 신위께 올리는 제례일거라 생각되었지만 황천후토지신신위(皇天后土之神神位-하늘과 땅의 임금신의 신위)이라고 써진 위패를 모신 것으로 봐 천상천하의 모든 신들께 올리는 고사성격의 제례 같았습니다. 국태민안부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 까지를 기원하는 기원제 같은 제례입니다.

 

식전행사처럼 어사패풍물공연이 펼쳐지더니 10시30분이 되니 축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개회식이 정금민속관 놀이마당에 마련 된 특설무대에서 시작됩니다. 산골마을에서 치러지는 마을잔치 같은 축제였지만 독특한 행사 주제 때문인지 행사장을 찾는 사람들은 방방곡곡 전국입니다.

 

 

축제장이 광대하고, 축제의 규모가 엄청 크지는 않았지만 자리는 옹색하지 않았고, 참가하는 인파 역시 초라하지도 않으니 알토란처럼 실속 있는 축제분위기가 물씬했습니다. 축제장이나 규모만 그런 게 아니라 축제기간 동안에 치러질 내용들도 그랬습니다. 대물림되고 계승되어야 할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꺼리들이어서 그런지 축제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가치들을 제대로 갖춘 고갱이 같은 축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자라는 상두꾼, 인근 군부대 군장병들이 대신

 

11시가 되니 위쪽 마을 입구까지 행사장 범위를 넓혀서 준비하고 있던 횡성 전통장례행렬이 시작됩니다. 장채(상여 틀)에 올라서 있던 요령잡이가 딸랑딸랑하고 요령을 흔들어대니 36명, 9명씩 4줄로 서있던 상두꾼들이 새끼로 꽈 팔뚝 굵기는 되는 상여 줄을 어깨에 둘러멥니다.

 

장채에 올라서서 요령을 흔드는 요령잡이는 상여 앞뒤로 1명씩 2명이었습니다. 앞에 선 요령잡이는 앞쪽을 향해 서서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넣고, 뒤에 탄 요령잡이는 뒤쪽을 향해 서서 요령만을 흔드는 역할이었습니다. 선소리야 앞쪽에 탄 요령잡이가 하고 있었지만 발맞춤의 기본이 되는 요령소리는 한 사람이 흔드는 것처럼 앞뒤소리가 한소리로 들렸습니다.

 

▲ 횡성회다지소리축제 제25회 횡성회다지소리 축제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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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초목도 가슴을 적시고, 불한당일지라도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선소리와 후렴소리가 이어집니다. 잡귀를 물리치는 방상시, 누구의 장례행렬인가를 알리는 명정, 고인이 된 이를 추모하거나 위로하는 글을 쓴 만장, 죽은 이의 혼백을 모신 영여, 상여행렬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공포 등이 상여에 앞서 가고 상주와 조문객들이 뒤를 따르는 순서입니다.

 

오복제도에 맞춰 굴건제복을 하거나 성복을 한 상제들, 대나무상장을 짚고 새끼줄을 꼬아 만든 수질(首絰)을 머리에 두른 상제들의 애달픈 곡소리가 바람소리에 실려 들려옵니다. 어렴풋하게 기억으로만 더듬을 수 있었던 곡소리, 아이였을 때 고향마을에서 들었던 곡소리의 음률이 꿈에서라도 듣는 듯이 '어~ 바로 이 소리다'하며 어색하지 않게 귓구멍으로 들어와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가슴속에서 감흥을 일으킵니다.

 

노령화 된 시골마을,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고, 청장년들을 보기 힘들어졌다는 시골마을의 인구 구조는 상여행렬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36명의 상두꾼 중 중간 부분을 메고 있는 20명은 인근부대에서 협조·지원을 받은 장병들이었습니다. 모자라는 상두꾼을 지원받은 군인들로 속이라도 박듯이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점차 고령화 되고, 심지어 돌아가시는 분들까지 계시니 3년 전부터 어쩔 수 없이 인근 군부대의 협조로 장병들을 지원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펄럭이는 만장, 허공을 울리는 요령소리와 선소리, 선소리와 주고받기를 계속하던 상두꾼들의 후렴소리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섭니다.

 

달이 구름을 지나듯 나무다리 유유히 넘어 가는 상여행렬

 

선소리꾼의 선소리가 행동통일을 위한 구령조로 바뀝니다. 상여 줄을 메고 있던 양쪽 4줄의 상두꾼들이 장채를 둘러메듯이 한 줄로 줄을 맞추니 좁고 촘촘히 멘 2줄이 됩니다. 1m 너비로 마련 된 나무다리 위로 상여행렬이 올라섭니다. 선소리와 후렴소리 맞추고, 차곡차곡 발맞추며 차분차분 올라서더니 달이 구름더미를 넘어가듯이 아슬아슬하기까지 했던 나무다리를 유유히 넘어갑니다.

 

강기슭을 맴돌아가는 물결처럼 행사장을 한 바퀴 돈 상여행렬이 멈추니 회다지가 이어집니다. 행사장 가운데 마련된 묘터에서 회를 다지는 행사가 재현됩니다.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하면 산역꾼이 된 상두꾼이 후렴으로 받으며 땅을 다지는 행동을 재현합니다.

 

볼 것과 체험 할 것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축제

 

기다란 막대를 하나씩 든 사람들이 선소리꾼이 넣는 긴소리와 자진소리에 맞춰 쿵쾅거리며 회다지를 합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에겐 아련하기만 했던 그리운 소리이고 추억의 광경이었던 상여행렬과 회다지소리, 상여행렬 자체가 생소하기만 했던 젊은이들에겐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없는 우리 것에서 우러나는 깊은 뭔가를 느끼게 하는 횡성전통장례시연이 끝났습니다.

 

 

행사장에서는 횡성전통장례만 시연된 것이 아니고 구경하고 둘러볼 것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져 있었습니다. 책에나 존재할 것 같은 제청도 차려지고, 할머니들이 손바느질을 하며 삼베로 수의를 짓는 모습도 재현되고 있었으니 상투라도 튼 옛사람이 되어 옛날 거리를 거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양하게 준비된 행사들이 상두꾼들이 넣던 후렴소리처럼 이틀에 걸쳐 재현되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강원도에 산재해 있는 많은 산골마을 중 하나인 정금마을에서 치러지고 계승되는 횡성 회다지소리축제는 추억의 소리를 넘어 한민족의 정서와 죽음에 대한 예와 애달픔을 느끼고 맛보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깊은 맛으로 숙성된 묵은 된장 같은 맛이 느껴지고 여운이 남는 깊은 맛 축제였습니다.  


태그:#횡성회다지축제, #정금미을, #요령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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