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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한일시민친구만들기(2007)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한일시민친구만들기(2007)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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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친구가 될 수가 있다? 정말 일본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2006년 12월 15일. 오마이뉴스에서 개최했던 제1회 한일시민친구만들기 안내글을 보면서 나는 의아했다.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일본인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DNA에 새겨진 '재팬 바이러스' 때문에 난 일본을 싫어했다.

다른 경기는 안 보더라도 '한일전'만은 꼭 목숨걸고 응원해야 했다. 기모노와 게다, 허옇게 분칠한 게이샤만 봐도 거부감이 들었다. 라면 부스러기 같은 '히라가나'만 보아도 반감이 들었다. 일본은 그런 존재였다. 준 것도 없이 괜시리 싫었다. 한마디로 그냥 상대하기 싫은 존재였다.

제1회 한일시민친구만들기 행사에 참여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다.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었고 일본에 대해서도 몰랐다. 별로 일본시민과 친구가 되고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전부터 강하게 들었던 궁금증이 있었다. 미치도록 강렬한 궁금증 하나.

도대체 그들은 왜 <대장금>과 욘사마(배용준)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국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보고 남이섬을 순례하듯 방문하는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일시민행사에 신청했다.

일본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

한국의 동동주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키라상.
 한국의 동동주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키라상.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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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도쿄에서 열린 제1회 행사에서는 일본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통역이 있긴 했지만 의사소통이 부자연스러워서 처음에는 그냥 얼굴을 보면서 멋쩍게 생글생글 웃기만했다. 그러다 우리에게도 요령이 생겼고, 손짓 발짓 눈치 코치를 다 동원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진실했고 소탈했다. 무엇보다 '평범'했다. 일본인은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뿔 12개는 숨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의 터무니없는 편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그 행사를 치르고 난 후 알게 된 단 하나의 사실은 그들도 우리를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듯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행사는 충분히 의미있었다. 

애초 목적이었던 한류에 대한 원인은 해결하지 못했다. 다만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류붐만 흠뻑 느끼고 왔다. 오다이바에서는 한류트리(한류스타의 사인이 걸려있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뿌듯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1년 뒤,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제2회 행사는 좀 더 서로에게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 1회 때 만난 일본시민기자들과 친근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고 새로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2회 행사에서 만난 일본시민기자들은 1회 행사에서 만났던 시민기자보다 좀 더 적극적이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더 많았다.

거리감만큼이나 호기심도 커진 한일시민친구만들기

한일시민친구만들기(2007)에서 만난 유코상이 보내준 연하장. 조그만 선물과 함께 보내줬다. 유코상은 요즘 무슨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있을지 궁금해진다.
 한일시민친구만들기(2007)에서 만난 유코상이 보내준 연하장. 조그만 선물과 함께 보내줬다. 유코상은 요즘 무슨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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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행사 때 깨달은 것은 서로의 역사에 대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일본역사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 일본의 역사라면 치욕적인 근대사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외 우리의 문명을 전해주었다고 배웠던 고대 아스카 시대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시대 정도만 드문드문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거의 몰랐다.

일본측도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 일본측 상황은 더 심각했다. 한국의 고대사, 중세사에 대해서 전혀 무지했다. 참석한 한 일본인 기자의 말에 의하면 역사 시간에 배운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한국 역사를 새로 알게된 사실보다 자신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진부한 표현을 온 몸으로 실감했다.

우리는 강화도 유적지를 돌면서 강화도의 역사와 시모노세키 조약이 성립되었던 곳 등 한일역사가 만났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이 안 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로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2박3일 동안, 짧은 일어와 한국어 영어, 몸짓을 총동원해서 우리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사뿐 아니라 음식, 사회복지, 교육, 환경, 여성, 육아 등등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모닥불과 맛있는 군고구마, 동동주가 있었던 첫날밤과 닭볶음탕과 동동주가 있었던 둘째밤. 그 짧은 언어로 거의 밤을 꼴딱 새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했다. 부족함은 없었다.

편견을 걷어낸 일본... 일본은 그저 일본일뿐

2회 행사 때 나는 그토록 궁금했던 '한류붐'의 원인을 알게되었다. 행사에서 만난 유코씨는 한국문화에 대해서 주로 글을 쓰는 'Korean Culture' 전문기자였다. 특히 한국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한국사람들의 진솔함, 열정, 소탈함이 좋다고 했다. 그것이 한국드라마에 잘 나타나있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도 한국을 잘 몰랐는데 한국드라마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게되었다 했다. 한국어 공부도 열심이었다.

2회 행사를 마치면서 나는 일본인 시민기자 한 명과 약속을 했다. 다음에 또 만나게되면 그때는 서로의 나라 언어로 인사하기. 그때를 대비해서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자고 약속했다. 그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2번의 한일시민친구만들기 행사가 나에게 남긴 중요한 사실 하나는 싫어한다고 무조건 배척해서는 서로에게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일시민친구만들기에 참가한 뒤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어 공부를 했고 일본 역사를 공부했다.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우리와는 또다른 일본 문화와 일본인들 특유의 정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좀 과한 욕심을 부리자면 '일본통'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일본인에게는 한국을 소개하고 싶었다.

편견을 걷어내고 다시 바라본 '일본'이라는 나라는 이전의 맹목적으로 싫은 나라도 아니었고 세계 경제대국의 신화를 달성한 위대한 나라도 아니었다. 일본은 그저 일본일 뿐이었다. 일본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애초 내가 느꼈던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아심은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간접적인 표현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이라는 나라, 공부필요성 절실히 느껴

한일시민기자만들기(2007)에서 만난 고이치상과 서울 인사동에서.
 한일시민기자만들기(2007)에서 만난 고이치상과 서울 인사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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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본은 '친일' 아니면 '반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싸잡아서 매도를 하거나 아니면 입을 다물어야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묵은 감정만 가지고 아무 발전도 없고 해결도 안된다.

한 예로 독도망언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그들이 독도망언을 할 때마다 격렬하게 항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전의 케케묵은 감정까지 보태서 욕을 하는 동안 그들은 다케시마를 위한 조직과 기구를 설립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

말도 안되는 엉터리 근거와 역사적 근거를 끌어당겨서 말이 되게하려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일반 시민사이에서 말이다. 그것이 일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속지 않으려면 그들의 역사와 문화, 정서를 잘 알아야한다. 싫은 건 싫은 거고 알아야할 건 알아야한다. 바로 일본이 아닌 우리를 위해서다. 더 나아가서는 서로를 위해서. 

아마 오마이뉴스에서 열렸던 한일시민기자만들기 행사가 아니었다면 일본은 여전히 내게 머릿속의 '먼나라'에 불과했을 것이다. '재팬 바이러스'. 언젠가는 깨질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한일시민기자만들기의 친근하고 직접적인 교류로 인해 긍정적인 바이러스로 바뀔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와 만남으로 인해 내게 생긴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재팬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은 건 그중 가장 의미있는 일이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때문에 생긴일'에 응모합니다



태그:#일본, #한일시민친구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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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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