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르신이 설에 만든 떡을 냉동고에 두었다가 주셨습니다
▲ 맛있는 떡 어르신이 설에 만든 떡을 냉동고에 두었다가 주셨습니다
ⓒ 김관숙

관련사진보기


“설날 가래떡 안했다구 했지?"
“네, 사다가 끓여 먹었어요."

“그럼 다른 떡도 안했겄네”
“요즘 가래떡들도 잘 안하잖아요. 떡들을 먹어야 말이죠. 우리집만 해두 남편이랑 나만 먹어요”

그러자 어르신은 ‘자네 생각해서 따로 냉동실에 두었다구’ 하면서 지금 잠깐 자기 집에 다녀 가라고 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공짜로 즐기는 플래시게임을 신나게 하고 있던 차이기도 하고 염치가 없는 일이라 사양을 하자 82세이신 어르신은 화를 냅니다.

“하루 종일 뭐하냐구? 얘기나 좀 나눌겸 오지!”

할 수 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집을 나섰습니다. 빈 손으로 가기가 무엇했는데 마침 길에서 친숙한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야쿠르트 10개를 샀습니다.  

맞벌이 하는 아들 부부는 출근을 했고 손자들은 학교에 가서 텅 빈 집에 어르신 혼자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반가워하면서 냉동실에서 꽤 큰 비닐뭉치를 꺼냈습니다. 큰 뭉치 속에서 작은 뭉치들을 꺼내어 식탁에 늘어 놓습니다. 설 차례상에도 올리고 친척들과도 나누어 먹으려고 여러 종류의 떡을 많이 했는데 내 생각이 나서 따로 냉동을 시켜 두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거 다 나 주는 거예요?’ 하면서 놀라워 하자 어르신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빙그레 웃는 표정만으로도 나는 어르신의 깊은 속마음을 느낌니다. 놀라워 하는 내 표정 역시 어르신을 기쁘고 즐겁게 했나 봅니다. 어르신은 내가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냥 말을 돌려버립니다. 

내가 어르신과 가족 못지않게 친숙해진 것은 어르신도 나도 마음을 활짝 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친숙한 누군가와 만날 때도 소심한 탓에 마음을 다 열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인사 치레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서고는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를 만나면서부터 달라졌습니다. 

우리 성당에서 주보를 접는 이들은 그 어르신과 나를 포함해서 모두 8명입니다. 제일 윗 어르신은 올해 91 세인 분이고 내가 막내입니다. 늙고 머리 하얀 막내. 주보를 접는 토요일이면 나는 비교적 남들 보다 조금 먼저 가서 부회장과 같이 무거운 주보 뭉치를 풀어 8명이 접을 수 있게 적당히 나누어서 늘어 놓고 물을 찍어 주보를 한 장씩 집어서 접을 수 있겠금 작은 물 그릇들도 준비를 해 놓고는 합니다.

주보접기가 끝난 뒤인 간식 시간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쏟아지고는 합니다. 내 앞 자리에서 주보를 접는 그 어르신이 툭 툭 던지는 사는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해서 나는 그 어르신의 추억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다녀 온 이야기는 비록 해방을 맞아 중도에 돌아왔지만 얼마나 재미있고 아름다운지를 모릅니다. 몇 년 전 이혼한 아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르신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어르신의 아픈 마음은 아직도 잊지를 못했습니다.

그 아들이 삼십 후반에 미혼녀와 재혼을 하자 어르신은 새로 맞이한 며느리 자랑을 늘어지게 하다가는 ‘밭 팔아 논을 샀다구!’ 하는 말로 기쁨을 정리했습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들어주다 보면 지루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 먹고 속상함을 털어 놓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듣다가 ‘아이구 약속 시간 다 되가네’ 라던가 ‘핸드폰 왔네요 죄송해요’ 하면서 함부로 중도에서 끊고 훌쩍 돌아서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의 어르신들의 표정은 아득함을 느낄 정도로 무덤덤 합니다. 그러나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얼굴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 그 가슴 속은 무어라 표현을 할 수가 없는 무안함으로 가득차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어르신들의 가슴속을 깊이 헤아릴줄 알게된 것은 비록 짤막하고 보잘 것 없는 이야기지만 ‘사는 이야기’에 글을 올리게 되면서 입니다.

처음에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이야기 거리를 잡으려고 눈으로만 그 어르신에게 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주보를 접는 날인 토요일이나 미사가 끝난 후에 어르신과 커피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르신의 말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르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진솔함이 담겨져 있는 어르신의 조용한 눈빛이며 모습은 참으로 편안한 무엇이었습니다. 나는 빨려지듯이 어르신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의 이야기 속에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웃고 떠들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활짝 열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어르신에게 마음을 열고나자 글을 쓰는 내 자세가 내가 생각을 해도 달라졌습니다. 상대방에 마음을 고스란히는 아니어도 내 가슴에 스며진대로 옮겨 놓게된 것입니다.

노인들의 행동반경은 좁은 편입니다. 미사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열고 나니까 모든 이들이 따듯해 보이고 행동반경이 생각보다 사뭇 넓어지면서 사는 맛이 달라졌습니다.

젊은 시절처럼 미사가 끝나면 사람들과 모여앉아 커피를 나누면서 건강상태 이야기는 물론이고 잡담도 하고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하고 자식들 이야기며 남편의 흉도 맘껏 보면서 크게 웃기도 합니다. 어쩌다 마트나 길에서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따듯하고 친숙한 모습들은 좋은 글감이고 내 나름대로는 사는 이야기에 기사거리인 것입니다. 실제로 나는 늙은 친구들 이야기를 여러 편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이라면 첫째도 둘째도 내가 진솔한 ‘사는 이야기’를 쓰느라고 만나는 이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고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어르신들의 마음도 전보다 더 깊이 헤아릴줄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사는 맛이 달라졌다는 것,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바로 그런 것들 입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통해 내 글이(매미야 매미야 천당가라) 방송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원고료가 꽤 괜찮아도 그 다음인 것입니다.

“전자렌지에 해동 시켜서 맛있게 먹으라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이어지다가 손자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 되었다면서 어르신이 주섬주섬 떡봉지들을 예쁜 종이봉지에 담아 내 손에 들려 줍니다. 묵직합니다. 나는 히이 웃고는 말했습니다.

“아침에 청국장 안 끓였다고 영감이 삐졌어요. 풀릴 때까지 나 혼자만 먹어야지”
“무슨 말야 그럴수록 영감이랑 둘이 얼굴 마주보고 먹어야 해. 얼굴 마주 보고 먹을 때가 좋은 때라구”

복도에 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다가 돌아보았습니다. 문 앞에 섰던 어르신이 ‘토요일날 주보 접을 때 만나자구’ 하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도 손을 흔듭니다. 따듯한 무엇이 가슴속에서 꾸물거렸습니다. 친정 어머니 같은 어르신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에 응모합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어르신의 마음, #맛있는 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