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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에 알게 된 나의 계급은? 아슬아슬하게 부동산 4계급에 낙찰! 부동산 투기에 강력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계급이다.
▲ 내 계급을 찾아 준 책 이 책 덕에 알게 된 나의 계급은? 아슬아슬하게 부동산 4계급에 낙찰! 부동산 투기에 강력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계급이다.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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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계급, 피지배계급…. 계급이란 말을 자주 듣지만 은근히 어렵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계급'이란 '일정한 사회에서 신분, 재산, 직업 따위가 비슷한 사람들로 형성되는 집단, 또는 그렇게 나뉜 사회적 지위'란다.

두루뭉술해서 더 헷갈린다. 때마침 백수로 지내고 있는 나로선 그나마 내 정체성이라고 믿었던 '노동자 계급'마저도 잠시(?) 내려놓은 상태. 이걸 어쩐다? 계급사회에 사는 것은 맞으나, 내 계급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는 이 처지를. 
 
그런데 막 읽은 책 한 권이 나를 살렸다. 애매한 내 정체성을 찾아 준 것.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을 보면서 읽게 된 책, 제목에서부터 계급성이 물씬 풍기는 <부동산 계급사회>(손낙구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가 바로 그것. 이 책 덕에 알게 된 나의 계급은? 아슬아슬하게 부동산 4계급에 낙찰! 이 책이 정의해 준 내 계급성은 이렇다.

'전·월세 사는 가구 중 보증금 5000만원이 넘는 사람들로 전체 가구의 6.2%(95만)가 여기에 해당한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만 전·월세 값과 집값이 폭등하지 않아 셋방 고통을 덜 받는 한편 내 집 꿈을 이룰 수 있기에 투기를 강력히 반대하는 계급이다.'

나는야 투기를 강력히 반대하는 '부동산 4계급'

책에서는 부동산 계급을 모두 여섯 개로 나누었다. 내 앞에 세 계급이나 있다는 말인데, 어쩐지 그보다는 내 뒤에도 두 계급이 더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투기를 강력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내 계급성만큼은 무척 마음에 든다. 투기를 일삼는 땅 부자들을 용서할 수 없는 내 마음은, 단순히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라 내 계급성에 바탕을 둔 정당한 의식이라는 말과 같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부동산 4계급의 눈으로 바라 본 한국 사회는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부자들이 돈 많은 거야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땅과 집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다. 숫자 크기가 믿어지지 않아서 자꾸 다시 보게 만든, 부동산 상위 계급들에 대한 놀라운 통계 몇 가지만 살펴보자.

▲ 우리 나라 전체 가구의 5.5%가 사유지의 74%를 차지. 
▲ 땅 부자 100명이 소유한 땅값은 5조 624억으로 1인당 500억이 넘음.
▲ 집 부자 열 사람이 5508채를 소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1083채를 가진 사람도 있음. 


그에 비해 나처럼 또는 나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 경우는 어떨까.

▲ 2005년 현재 최소 300만 가구(1000만 명) 이상이 인간다운 주거 생활의 최저 기준에 미달하는 집에서 살고 있다.
▲ (반)지하, 옥탑방이나 농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판잣집·쪽방, 심지어 동굴이나 움막에  68만 가구(162만 명)가 살고 있다.
▲ 상위 20% 가구의 재산은 하위 20% 가구의 20배로, 5배 차이인 소득 격차보다 훨씬 심각하다.


도대체 같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맞는지 쓰면서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쓴이가 모두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풀어 쓴 글인지라 믿지 않을 수도 없다. 투기의 불패신화! 아파트 이야기는 또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1980년에서 2000년까지 20년간 새로 지은 전체 주택 854만 채 가운데 616만 채가 아파트라는 건 '주택 공급'을 위해서라고 너그럽게 봐주기로 하자(실제로는 대부분 투기 중심이지만). 그러나 이어지는 숫자 놀음은 어쩌란 말이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집값이 올라 생긴 불로소득 648조원 가운데 아파트가 87%를 차지하고, 특히 강남 3개구에서만 아파트 값으로 생긴 불로소득이 114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삼성동 현대아이파크 104평형) 한 채가 48억이 넘고, 집부자 열 사람이 5천 채 넘는 집을 갖고 있다니 계산으로는 충분히 나올 법한 '몇 백 조'라는 돈 단위. 대체 그 크기는 얼마나 될까?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재부동산'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집값이 올라 생긴 불로소득 648조원 가운데 아파트가 87%를 차지하고, 특히 강남 3개구에서만 아파트 값으로 생긴 불로소득이 114조에 이른다. 사진은 홍제천 근처에서 바라 본 아파트 촌.
▲ 투기의 불패신화! 아파트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집값이 올라 생긴 불로소득 648조원 가운데 아파트가 87%를 차지하고, 특히 강남 3개구에서만 아파트 값으로 생긴 불로소득이 114조에 이른다. 사진은 홍제천 근처에서 바라 본 아파트 촌.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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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안 되는 숫자 놀음은 잠시 멈추고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해 보자.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 7년째 집이 남아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 열 명 중 넷은 셋방을 떠돌고 있으며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의 3%에 지나지 않는다.

'부동산 계급장'을 떼고 바라봐도 부동산 투기가 빈부격차를 키운 주범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물며 이 책은 부동산 부자일수록 오래 산다는, 그러니까 인명은 재천(在天)이 아니라 재부동산(在不動産)임을 자료로 증명까지 하고 있다. 글쓴이 표현처럼, '돌연변이'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으로 비뚤어진 부동산관이 빚어낸 어이없는 현실이다. 

자, 그러면 이 현실을 그저 '아는' 것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다. 땅은 소수 부유층이 독점할 수 없는, 고도의 공공성과 사회성을 띠고 있다는 원칙 아래 부동산 1계급을 해체하는 것이 앎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글쓴이는 부동산 토지 소유제도 자체를 뒤엎어서 완전한 토지 국유화를 이루면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땅의 소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지에 대한 단계별 국유화를 추진해야 하며, 3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매년 30~40조 규모의 영구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택지를 국유화할 경우 5년 안에 전채 택지의 20%를 국유화할 수 있다.'
 
땅 부자들이 저항하는 걸 어떻게 막겠느냐고? 부당한 저항은 꺾어야 한다. 어떻게? 투기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택 정책을 투기 백신이 될 수 있는 정책으로 바꾸면 된다. 바로 건설 재벌을 위한 공급 중심 정책이 아닌, 서민을 위한 복지 중심 정책이다. 글쓴이는 이를 위해 복지부에 (가칭)주택청을 새로 만들고 '공공택지 공영개발, 공공주택 공급' 원칙을 담은 특별법을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집과 땅에는 원래 계급이 없었다

홍세화 선생님이 주창하는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의식’은 다른 어느 계급보다도 부동산 계급한테 너무나 절실하다. 책 뒤표지에 부동산 계급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
▲ 당신의 부동산 계급은? 홍세화 선생님이 주창하는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의식’은 다른 어느 계급보다도 부동산 계급한테 너무나 절실하다. 책 뒤표지에 부동산 계급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 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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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쉽지 않을 테다. 정책을 생산하는 고위 공직자 100명이 1인당 89억씩 부동산 재산을 갖고 있는 현실을 보자면 암담해진다(이명박 대통령이 382억으로 1등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집'과 '땅'이 어떤 존재인지 근본적인 물음부터 던져보자. <부동산 계급사회>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땅 한 뼘, 집 한 채는 단순히 능력에 따라 팔고 사는 대상을 넘어 가족과 개인의 혼과 역사가 담긴 대상이다.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켜 온 '하늘 아래 땅 위에 인간이 집을 짓고 산다'는 소박한 상식과 자연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 없는 불로 소득을 부추기는 부동산 자본주의, 부동산 계급이 지배하는 이상한 계급사회를 개조하는 작업은 땅과 집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집과 땅에는 원래 계급이 없었다. 부동산 망국병을 키운 잘못된 정책으로 있지 말아야 할 계급이 생겨버렸을 뿐. 가진 것 없는 우리들은 부동산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기에 맞는 계급의식부터 갖도록 해보자.

홍세화 선생님이 주창하는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의식'은 다른 어느 계급보다도 부동산 계급한테 너무나 절실하다. 그 의식이야말로 부동산 무계급사회로 가는 첫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부동산 1계급(우리나라 가구의 7%)을 뺀 나머지 다섯 계급은 모두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피지배계급에 준한다). 


부동산 계급사회

손낙구 지음, 후마니타스(2008)


태그:#부동산, #투기,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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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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