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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열중하느라 시커먼 연탄재를 온 몸에 뒤집어쓴 줄도 모르고 환하게 웃고 있는 한정부씨는 덥지 않느냐 물으니 “안 더워, 시원해.”라고 답한다.
▲ 환한 미소 일에 열중하느라 시커먼 연탄재를 온 몸에 뒤집어쓴 줄도 모르고 환하게 웃고 있는 한정부씨는 덥지 않느냐 물으니 “안 더워, 시원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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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가마솥더위에 여름도 잊고 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무더위 따위는 아랑곳이 없다. 피서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쩌면 그들에게는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힘겹게 일궈온 그들의 일터인 제일연탄공장이 여수의 신철도역사 부지로 편입되어 얼마 안 있으면 사라질 처지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했던 이웃의 합동연탄 공장은 지난 6월 말경 이미 문을 닫았다. 이제 그들도 올 연말이면 대책 없이 일터를 내줘야 할 판, 앞날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한때 이곳은 연탄공장들이 줄줄이 입주해 성수기를 맞기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사양길로 접어든 지 오래다.

서민들의 언 가슴 녹여주었던 연탄공장

기사들은 연탄을 이 지게에 지고 각 가정에 배달한다.
▲ 연탄지게 기사들은 연탄을 이 지게에 지고 각 가정에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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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 태양, 동창 등 3곳은 아주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합동연탄과 제일연탄 두 곳이 최근까지 남아 명맥을 이어오며 여수 서민들의 언 가슴을 녹여주었다. 이제 올 겨울이면 마지막 하나 남은 제일연탄공장마저 문을 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한여름에 때 아닌 주문이 밀려들어 제일연탄공장은 쉴 새가 없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반짝 성수기가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제일연탄공장 사람들과 이곳에서 연탄을 떼어다 연탄 배달을 해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설마 한곳은 남겠지. 이곳은 괜찮겠지" 생각했단다. 그런데 한 곳 남은 이 연탄공장마저 사라진다는 소식에 앞길이 막막하다며 모두들 망연자실이다.

정칠권(50) 제일연탄공장 전무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 공장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일부 시민들은 "왜 공장을 그만 두느냐. 우리는 어디서 연탄을 갖다 때느냐"며 항의를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공장 진입로 입구의 합동 연탄공장은 이미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연탄 한 장의 공장도가격은 287원 25전. 여수 지역의 연탄 개당 소비자가격은 400원, 인근 구례군은 450원이다. 앞으로 화순이나 광주에서 연탄을 갖다 쓰면 개당 소비자가격이 최하 50원에서 많게는 100원까지 오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김상수(55) 기사의 말에 의하면 2.5톤 화물차량이 여수에서 광주를 오가는 데 제비용만 해도 10만 원이 넘게 소요된다고 하니 말이다.

"연탄 공장 문 닫으면 서민들은 어찌 살아요?"

“철커덩~ 철커덩~”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시커먼 연탄이 컨베이어를 타고 쏟아져 나온다.
▲ 연탄 “철커덩~ 철커덩~”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시커먼 연탄이 컨베이어를 타고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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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들이 차에 연탄을 싣고 있다.
▲ 상차 인부들이 차에 연탄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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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차 인부들이 선풍기 한대에 의지한 채 무더위도 잊고 연탄 싣기에 열중이다.
▲ 연탄 싣기 상차 인부들이 선풍기 한대에 의지한 채 무더위도 잊고 연탄 싣기에 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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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이나 광주에서 가져오면 거리가 멀어 분께 연탄 한 장에 500원은 넘어가죠. 기름 값이 배가 많이 들어 부러요."
"안 맞아요. 안 맞아. 기름 값이 비싸서…."
"서민들은 어찌 살지, 우리는 공장 닫으라면 닫고 시키는 대로 해야죠. 힘이 없습니다."

제일연탄의 정 전무는 당장 공장 문을 닫으면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공장 식구들도 막연하지만 올 겨울 여수 시민들의 연탄 공급은 어떻게 하며, 영세민은 비싼 연탄 값 때문에 냉방에서 살지나 않을지 모르겠다며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공장으로 가봤다. "철커덩~ 철커덩~"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시커먼 연탄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쏟아져 나온다. 적재를 마친 화물차가 빠져 나가면 대기 중인 차가 들어오곤 한다. 상차 인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이들은 더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바로 곁에는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 쓴, 무더위에 지친 선풍기 두 대가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연탄공장 내부. 주변을 살피다 인기척에 깜짝 놀랐다. 연탄재를 온 몸에 뒤집어 쓴 한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인기척을 안했더라면 시커먼 연탄재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시커먼 사내, 그는 한정부(77)씨다. 기계를 세심하게 살피며 이상 유무를 관찰하고 있다.

"안 더워요?"
"안 더워, 시원해."

내부는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공장 설비들을 살피다보면 이곳에서는 더위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겠다 싶었다. 정 전무의 말에 의하면 성격이 활달한 어르신도 조금 전 쉬는 시간에 합동연탄의 빈 건물이 포클레인 삽날에 무너져 내리는 걸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며 직원들의 앞날이 걱정돼 마음이 착잡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일을 못할 것 같아요"

연탄 화덕에서 커피 물이 끓고 있다.
▲ 주전자 연탄 화덕에서 커피 물이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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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에서 왔다는 박석순(68) 기사는 앞으로 거래처가 광주로 바뀌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광주 시내를 관통해야 되므로 시내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돼 국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국도를 주로 이용하는 그들로서는 비용도 문제지만 동절기에 빙판길과도 싸워야 될 판이라며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그는 60대 후반이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청춘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일을 못할 것 같아요. 광주에서는 상차를 해줄 사람이 없데요. 비용도 많이 들고 하루에 한탕 뛰어갖고는 수지 타산이 안 맞아요."
"수용가 배달은 아침 일찍 하거나 석양 무렵에 하고 그래요. 성수기가 아니라 열흘에 한번 꼴로 들어와요. 여름에 대부분 다른 일을 하고 겨울에 돌아오고 힘이 들어요."

여수 덕충동의 정태봉씨,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린다. 워낙 바쁘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더위도 잊고 산다.
▲ 정태봉씨 여수 덕충동의 정태봉씨,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린다. 워낙 바쁘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더위도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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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여수의 상황은 다르다. 공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가정에서 미리 사재기를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여수 덕충동의 정태봉(60)씨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하자 "일을 많이 하니까 그래요"라며 오늘 오전만 벌써 두 번째란다.

정씨는 매일 연탄을 실으러 들어온다. 성수기인 한겨울에는 혼자서 4천여 장씩 배달을 하지만 여름철은 비수기여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는 날이 더 많았는데 올해는 예외다. 하루에 1천여 장씩 꾸준히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린다. 워낙 바쁘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더위도 잊고 산다.

"공장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주문이 자꾸 들어와요. 예년에는 여름철에 놀다시피 했거든요."
"공장이 없어지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건가요?"
"모르겠어요. 묏동이나 지킬 란가? 아직 대책이 없어요. 여수에 연탄공장 하나 지어주세요."

겨울 서민들의 원성...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서늘해져

무더위도 잊고 사는 연탄공장사람들
▲ 연탄공장 무더위도 잊고 사는 연탄공장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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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밥을 먹은 지가 30년이 된 그도 앞날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탄공장이 없어지고 겨울이 닥치면 서민들의 원성이 자자할 텐데, 이런 생각만 해도 그저 마음이 서늘하다는 정태봉씨. 세상 사람들처럼 한가하게 무더위 걱정을 할 여유가 없단다. 그저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 듯하는 날씨인데도.

또 다른 기사는 한차 상차를 끝내고 나서 혹여 연탄이 한 장이라도 덜 실렸나 세고 또 센다. 땅바닥에 막대기로 계산을 해가면서. 상차 인부들은 "맞아 맞아"라고 소리치며 차를 빨리 빼라고 한다. 차가 들어오면 그들의 일이 바빠지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담배 한 대 꼬나물면 그저 시원하다는 공장사람들.
▲ 휴식 쉬는 시간에 담배 한 대 꼬나물면 그저 시원하다는 공장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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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지쳐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지만 그래도 시원하다.
▲ 휴식 무더위에 지쳐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지만 그래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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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담배 한 대 꼬나물면 그저 시원하다는 상차인부들과 공장사람들. 그들은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일한 숙련공들이다. 15년째 연탄 상차 일을 하고 있다는 서일석(71)씨는 공장 문 닫으면 쉬어야지 별수 있겠느냐며 못내 아쉬워했다.

무더위도 잊고 사는 연탄공장 사람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무더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제일연탄공장 사람들이 이 여름을 진짜 시원하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원한 바람은 산 정상에만 부는 게 아니다. 솔숲에도 골짜기에도 바람은 분다. 무더위에 지친 이들에게도 이마에 땀을 씻어줄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불어라 솔바람, 불어라 골바람, 이 여름을 시원하게 식혀줄 바람 바람이여.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연탄공장, #무더위, #연탄, #구슬땀, #땀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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