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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 첫 방영을 시작한 MBC 월화드라마 <히트>가 어느덧 종반부를 향하고 있다. 어제(7일) 15회가 방영됐으니 앞으로 20부 종방까지 5회분이 남은 셈이다. <히트>는 톱스타 고현정의 출연작인데다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 <올인>의 유철용 PD 등 화려한 제작진으로 방송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iMBC 히트 게시판에서의 투표결과 '최강히트'라는 애칭도 얻었다.

하지만 첫 방송으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히트>는 초반의 기대에 비해 한풀 꺾인 기세로 주춤하고 있다. 20%에 가깝던 시청률은 15% 아래로 하락했고, 빡빡한 촬영 스케줄로 인해 급히 찍은 탓인지 화면의 때깔도 초반보다 떨어졌다.

<히트>의 부진에는 동시간대 경쟁작인 SBS <내 남자의 여자>의 상승세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15회 모두 본방송을 본 애청자로서 필자는 <히트> 가 화려하게 비상하지 못한 몇 가지 원인을 꼽아보았다.

신경질적이고 매사에 심각한 주인공 차수경 캐릭터의 문제

▲ 월화드라마 <히트> 에서 차수경 역을 맡은 고현정. ⓒ iMBC
첫째로, 주인공 차수경(고현정 분)의 캐릭터 설정 문제이다. 차수경은 14년 전 애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강력반 형사가 되는 길을 택한 인물이다. 히트팀(강력특별수사팀)의 팀장이 된 차수경은 여리고 섬세한 내면과 험한 형사일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괴로워하며 14년 전의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범인 검거를 위해 "헬기 띄워주세요!"라며 서슴없이 소리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때 못 먹어가면서 수사를 서두르는 그녀는 매우 감정적이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동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시종일관 김재윤(하정우 분)에게 신경질을 부리기도 한다. 물론 강력계 여형사로서의 고충은 이해가 가지만, 그런 모습까지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에는 시청자들의 아량이 넓지 않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가 매력 있기를 바란다. 겉모습이 예쁘고 잘생긴 것도 좋겠지만, 우선 내면의 모습이 따뜻하고 멋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캐릭터에 동화되어 극에 빠져드는 것이다. 차수경은 매사에 괴로워하지만, 그런 심각함은 때로 미성숙함으로 느껴지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매료되기는 힘이 든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로 손꼽히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김전일과, 인기 외화 시리즈 CSI의 그리섬 반장을 생각해보자. 김전일은 타고난 두뇌와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사건을 도맡아 해결해나간다. 게다가 낙천적인 성격에 유머 감각까지 겸비했다. 그리섬 반장은 또 어떠한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묵직하고 신중한 면모를 겸비했다.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나도 저랬으면…' 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드라마의 캐릭터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야 하되,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되어 있어야 한다. 현실적이되 현실과 같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만날법한 재미없는 사람을 TV 속에서까지 만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차수경이 죽은 애인 때문에 경찰이 된다는 설정에도 진부한 느낌이 있다. 이미 너무나 많은 만화와 영화, 책 등에서 봐 온 설정이라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식상한 과거라 치부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요즘 시청자들은 웬만한 이야기에는 채널을 고정시키지 못할 만큼 많이 보고 들어왔으며, 그만큼 똑똑해져버렸다.

두 번째로 너무나도 세밀한 구성을 부진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 아무리 <히트> 가 '인간 중심의' 수사 드라마를 표방했다고 해도, 등장인물 개개인의 상황과 심리를 세세하게 그리려다 보니 정작 사건은 드라마틱하지 않게 해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특히 11회에서 최 반장(김성겸 분) 과 조규원(손현주 분)의 에피소드가 그랬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너무나도 갈등하고, 인간적인 관계에 얽매여 마음 아파하지만 결국 범인은 어렵지 않게 체포된다. <히트> 의 출연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다지 문제 삼지 않고 보아 넘길 수 있겠지만, '수사' 드라마를 기대하며 TV 앞에 앉았을 이들은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심리상태, 인물끼리의 관계, 여러 사건들, 게다가 차수경과 김재윤의 멜로라인까지 한꺼번에 담아내려 하기에 이 드라마는 너무 버거워 보인다. <히트>가 20부작 미니시리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세 번째로, 추가로 극을 따라잡고 보려는 시청자를 적절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 사건 당 4회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이전 회를 보지 못했을 경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는 것이다.

"드라마 재밌더라"는 얘기를 듣고 이야기에 몰입하려 해도, 이전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볼 수 없다면 채널은 쉬이 돌아가게 된다. 매 회마다 다른 사건으로 진행시키거나, 전개를 조금 빨리 했다면 드라마의 시청률이 지금보다는 높게 유지되지 않았을까.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출연자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드라마

▲ 월화드라마 <히트> 의 촬영 장면. ⓒ iMBC
위와 같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히트> 는 사실 꽤 괜찮은 드라마이다. 불륜, 뻔한 로맨틱 코미디, '알고 보니 남매'류의 가정사가 난무하는 드라마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수사물이라는 장르를 시도했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뭉쳐 각자의 캐릭터를 충실히 표현해냈다.

고현정은 힘든 액션연기까지 직접 소화해내며 열연을 펼치고 있고, 하정우는 고현정에 밀리지 않는 기로 극에 무게감을 더했다. 약방의 감초 같은 심형사 역의 김정태, 86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캐릭터를 잘 소화해 낸 김형사 역의 정동진, '미키성식' 으로 더 유명한 남성식 역의 마동석, 그리고 쓸쓸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형사 역의 최일화 등등.

<히트>의 주요 인물들은 칙칙한 잠바를 걸쳤음에도 연기자들의 색깔 덕에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히트>가 그다지 '히트'는 하지 못했지만, 고정 시청자 층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이런 연기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히트>는 뻐근하지만 의미 있는 성장통같은 드라마이다. <히트>를 시작으로 잘 만들어진 장르 드라마들을 TV에서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태그:#히트, #고현정,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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