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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빨리 와봐 빨리!”

자려고 이부자리를 펴고 있는데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댑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얼른 거실로 뛰어 가니 아내가 둘째 태민이의 바지를 벗겨 놓고는 나를 보고 ‘어서 하라’는 손짓을 합니다.

“또 하라고? 나 마렵지도 않단 말이야!”
“그래도 해. 그래야 얘도 빨리 배우지.”

“그냥 하면 안 될까? 만날 이게 뭐냐.”
“아휴, 시간 없어. 눌 시간 됐단 말이야.”

할 수 없이 저는 투덜대면서도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장실로 들어가서는 변기 앞에 서서 ‘쉬’ 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것도 아들에게 잘 보고 따라하라고 바지까지 다 벗고, 그것도 모자라 몸을 옆으로 틀기까지 했습니다.

“아빠 봐봐. 아빠처럼 저렇게 서서 ‘쉬~’하는 거야. 자, 해봐! 쉬~ 쉬~.”

아내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태민이에게 아빠처럼 하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하면서 입으로 “쉬~ 쉬~”를 연신 외쳐대더군요. 아들은 엄마의 말대로 아빠인 저를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1분 정도 지났나? 쉬가 마렵지 않은지 녀석이 눈만 껌뻑껌뻑 거리면서 하반신 누드인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거 참, 아무리 내 새끼라지만 그 자세로 계속 있으려니 좀 민망하기도 하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진짜!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니까 창피하단 말이야! 나 그만 할래.”
“아들 앞인데 창피하기는, 다 아들 위해서 하는 거니까 참아.”

▲ 누나인 세린이 녀석이 "쉬는 앉아서 하는 거야!"하면서 장난치는 바람에 아들 녀석이 자꾸만 앉아서 오줌을 누려고 합니다.
ⓒ 장희용
기저귀 떼고 ‘쉬’할 때, 그런데 누나의 장난으로 그만...

제가 이렇게 3살 된 아들의 ‘쉬야 교관’이 된 것은 누나인 세린이 녀석의 장난 때문입니다. 3살 정도 되면 보통 기저귀를 떼고 ‘쉬’ 하는 법을 배울 때인지라 태민이도 ‘쉬’ 하는 법을 가르쳤지요. 지극히 정상적인 자세를 말입니다.

그런데 세린이 녀석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자세를 가르치는 엄마 옆에서 자꾸만 “누나가 가르쳐 줄게” 하면서 동생에게 여자인 자기의 자세를 가르치는 겁니다. 뭐든지 누나를 따라할 나이인지라 이 녀석은 누나가 하는 대로 주저 없이 애기 변기에 앉아서 ‘쉬’ 하는 자세를 취하더군요.

아내와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올바른 자세를 알려주었지만, 세린이가 깔깔대며 웃으니 아들 녀석은 그것이 무슨 큰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했는지 자기도 같이 깔깔대며 계속해서 앉아서 ‘쉬’ 하는 자세를 취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하는 모습이 귀엽고 우스워서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시간이 자꾸 흐를수록 안 되겠더라고요. 앉아 있는 애기 변기에서 일으키면 재밌는 장난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울고 화내고 짜증까지 내니, 이러다 진짜 앉아서 ‘쉬’ 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까지 생기더라니까요.

그래서 세린이한테 경고를 했죠. 동생 ‘쉬’ 하는 데 방해하지 말라고. 그런데 처음 배울 때 그렇게 재미를 들여서 그런지 ‘쉬’를 가르치려고 일으켜 세우면 주저앉고, 또 일으켜 세우면 주저앉고, 도무지 일어서서 쉬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 아빠의 시범을 보면서 둘째 녀석이 '쉬'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쉬야 교관'인 아빠 덕에 제법 잘 한답니다. 시범 자세 중에도 사진은 찍었습니다.
ⓒ 장희용
아내의 강요로 ‘쉬’ 하는 법 시범교관으로 나서다

아빠인 저야 그때까지만 해도 “때가 되면 다 하겠지?” 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이러는 겁니다.

“자기가 시범을 보여. 그러면 따라서 할 거야.”
“싫어! 그런 걸 어떻게 시범을 보여? 다 때가 되면 할 거니까 너무 걱정 마.”

“안돼. 자기가 몰라서 그래. 낮에도 앉아서 한다고 얼마나 고집부리는데….”
“아휴, 그래도 그렇지 그런 걸 어떻게 시범을 보여?”

하지만 저의 힘없는 저항은 “그럼 내가 시범 보여!”라는 아내의 금속성 목소리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들의 올바른 ‘쉬’ 자세를 위해 ‘쉬야 교관’이 되었습니다. 오늘로 시범교관 생활한 지 보름 정도 됐습니다.

보름 동안 제가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시간을 재고 있던 아내가 “태민아 쉬야 하자?” 그러면 저는 자동으로 화장실로 갑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그 자세를 취하지요. 밥 먹다가도 하고, 누워 있다가도 하고, 놀다가도 하고, 아무튼 시도 때도 없이 아내가 부르면 저는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퇴근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제가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마치 밀린 숙제 해 줄 사람이 나타난 것처럼 이렇게 말하지요.

“태민아 아빠 왔다 아빠! 쉬야 하자 쉬!”

그러면 보름 동안의 훈련 효과를 보이는 아들 녀석은 욕실 앞에 비치된 자신의 쉬야 통(플라스틱 우유병)을 들고서는 욕실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하자마자 욕실에 들어가 앞서 말한 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가지 일이 더 생겼습니다. 그렇게 시범을 보이고 있다가 아들이 쉬를 하면 얼른 바지 올리고 달려가서 “참 잘했어요!” 하면서 ‘짝짝짝’ 박수를 쳐 주어야 합니다. 칭찬을 해 주면 더 빨리 배운다나 뭐래나.

아내한테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물으니 “태민이가 ‘쉬’ 잘 할 때까지”라고 하네요. 그럼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요?

▲ 태민아! 아빠가 째끔 민망하거든. ‘쉬야 교관’ 언제쯤 그만 둘 수 있을까? 빨리 혼자서도 ‘쉬’ 잘해야지!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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