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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이 아닌 ‘물놀이’를 동생과 신나게 하고 있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예전 같으면 목욕을 하기 전부터 울기 시작한 울음이 목욕 후에도 그치지 않은 아이였고 보면, 물놀이를 하고 난 후 저렇게 동생하고 신나게 노는 것을 보면서 ‘아주 작은 이치를 깨닫지 못해 그동안 아이를 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섯 살인 딸은 어릴 적부터 목욕하자고 그러면, 특히 머리를 감자고 하면 유독이 싫어했습니다. 무조건 울기부터 했고, 심하면 악을 쓰기도 했지요.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운다고 해서 하루 종일 뛰어노느라 땀범벅이가 된 아이를 그대로 재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그렇게 싫어하던 목욕을 물놀이라는 말로 바꾸고, 약간의 놀이를 더해 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즐거워합니다. 강요보다는 방식을 달리하니까 딸 아이는 다른 많은 것들도 즐거워 하더군요.
ⓒ 장희용
처음에는 달래고 달래지만 막무가내로 안 하겠다면서 버티면 그때부터 엄마 아빠는 차츰 인내심을 잃고 짜증 섞인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화가 난 큰 목소리로 ‘엄마 아빠 말 좀 들어!’하면서 반 강제적으로 목욕을 시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참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어찌나 울었던지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훌쩍 훌쩍’ 울먹이는 소리와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한 번쯤은 하기 싫다는 거 안 할 수도 있으련만, 자꾸 그러면 버릇이 든다는 이유로 엄마와 아빠는 부모라는 우월적 지위와 어른이라는 물리적 힘을 동원해 아이를 제압하곤 했습니다.

비단 목욕뿐만이 아닙니다.

식탁에서 얌전히 밥 먹기, 엄마가 준 밥 다 먹기, 김치ㆍ당근ㆍ시금치ㆍ멸치 등을 포함한 반찬 골고루 먹기, 불량식품 안 먹기, 우유 마시기, 양치 잘 하기, 외출할 때 입으라는 옷 입기, 신으라는 신발 신기, 어른한테 인사 잘 하기, 어른이 용돈이나 선물주면 인사하기, 질서 잘 지키기, 텔레비전 조금만 보기, 일찍 잠자기, 친구한테 양보하기, 동생한테 양보하기, 거짓말 안 하기, 정리정돈 잘 하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이 중에서 딸아이가 흔쾌히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 아빠의 말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매번 엄마 아빠의 인내심의 임계점을 너머서고 난 후에야 울음과 함께 행동으로 옮겨지곤 했지요. 물론 마지막 말은 “엄마 아빠 말 좀 들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던진 말이 “우리 물놀이 할까?”였습니다. 그렇게도 목욕이나 머리 감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물놀이 하자는 말에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렇게 즐겁게 목욕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욕조에 들어가 가끔씩 장난도 쳐 주긴 하지만, 기존의 목욕이나 현재의 물놀이가 크게 다를 건 없었습니다. 물론 머리도 잘 감았습니다.

물놀이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은 다른 것에도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양치하는 것을 ‘세균맨 잡기 놀이’로, 반찬 골고루 먹는 것은 ‘젓가락 놀이’로 정리정돈 잘 하기는 ‘정리 놀이’로, 밥 다 먹기는 ‘밥 먹고 팔씨름 놀이’로, 인사하기는 ‘유치원 놀이’로, 양보하기는 ‘주고받기 놀이’로 일찍 잠자기는 ‘침대 놀이’로 거짓말 안하기나 잘못된 행동 바로잡기는 ‘땡! 놀이’로 바뀌었습니다.

세균맨 놀이는 양치하면서 ‘어어, 저기 세균맨이 숨어 있네’ ‘세균맨이 막 도망간다. 잡아라’라 하면서 양치를 합니다. 젓가락 놀이는 평소 잘 안 먹는 반찬을 놓고 약간의 경쟁심을 유도해 ‘누가 먼저 집나’하면 그 재미에 자기가 이 반찬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맛있게 먹습니다.

‘밥 먹고 팔씨름 놀이’는 밥을 다 먹고 난 후 ‘얼마나 키가 컸나? 얼마나 힘이 세졌을까?’하면서 밥을 먹고 난 후 팔씨름을 하다 아빠가 져 주면서 ‘우와! 힘이 엄청 세졌네!’하면 딸아이는 ‘나 힘세지!’하면서 우쭐댑니다.

▲ 아무리 부모라 해도 이 아이에게서 해맑은 웃음을 빼앗을 수는 없겠지요. 이제 제 사전에서 “엄마 아빠 말 좀 들어!”라는 말을 지웠습니다.
ⓒ 장희용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요가 아니라 방식을 조금 달리하니까 수백 번 이야기하고, 혼을 내도 잘 안 되던 것이 이제는 엄마 아빠도 웃고, 딸아이도 웃으면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 달라진 방식이라는 거, 굳이 표현하자면 강요를 ‘놀이화’한 것뿐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오더군요.

그동안 ‘부모’라는 이름으로, ‘잘 키운다’는 명분 아래, 그 어떤 것보다도 우위에 있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라는 것이 우리 딸아이에게도 엄연히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사전에서 “엄마 아빠 말 좀 들어!”라는 말을 지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아이가 튼튼하고, 예의바르고, 착하고, 바른 아이로 키우기 위한 엄마와 아빠의 노력이지만, 저를 놓고 볼 때 그것은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부모의 변명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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