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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2년 동안 죽지 않은 고추나무가 고추 열매를 탐스럽게 맺었습니다.
ⓒ 마동욱
지난해 4월 팔십 노모가 아파트 베란다에 고추를 심자고 했다.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일만 하셨던 어머니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농사일이 그리웠던 것이다. 가끔은 고향의 옛집에 아직 남아있는 밭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마을에 가지만 자주 갈 수 없어 집에 머무르면서 고추라도 보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지난해 이맘때 베란다에 심은 고추가 잘 자라지 않다가 겨우 고추 열매를 맺으려고 하니 느닷없이 진딧물이 생겨, 노모는 농약을 구해다 뿌려야 한다고 하셨다. 아파트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쓸 수 없다는 나의 주장에 결국 파리약을 뿌렸더니, 고추는 말라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물로 씻어내기를 수없이 반복하여 겨우 살아났지만, 고추에 열매는 많이 열리지 않았다.

▲ 2004년 6월 고추나무는 추운 겨울을 죽지않고 잘 살아왔습니다.
ⓒ 마동욱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지만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한 고추는 쉽게 말라죽지 않고, 한겨울에 꽃을 피우기도 했다. 아파트의 온도가 따뜻해서인지 고추는 겨울을 어렵게 버티고 살아났다. 20그루의 고추가 다섯 그루로 줄어들긴 했지만, 새로운 봄을 맞아 잎이 나고 꽃을 피우더니 고추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노모는 올해 15그루의 고추를 다시 가져와 2년 된 고추 옆에 다시 심었다. 2년 동안 살았던 고추나무와 금년에 심은 고추가 하연 꽃을 피우고 고추 열매를 맺으면서 금년엔 아파트 고추 농사가 지난해보다 작황이 좋을 것 같다며 어머니가 좋아하셨는데, 며칠 전 고추에 다시 진딧물이 생겼다.

▲ 2004년 6월 2년동안 살아온 고추나무가 진딧물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 마동욱
지난해 고추농사(?) 실패를 경험한 노모는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만, 나는 계속 노모를 설득하여 농약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던 중 어머니가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식초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3배 사과식초를 물에 타 스프레이에 넣어 흡족하게 뿌려놓으니 진딧물이 맥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고추를 살펴보니, 잎이 시들시들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노모는 고추 농사가 그렇게 쉽다면 아무나 할 것이라며 평생 동안 농사만 지었던 경험으로 보면 농약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말라죽어가는 고추에 물을 뿌려 고추 잎에 묻은 식초를 씻어 냈지만 한 번 죽은 잎은 다시 살아나지 않고 서너 그루의 고추는 죽어가고 있었다.

▲ 2004년 6월 진딧물은 꽃과 부드러운 새순에 주로 기생합니다.
ⓒ 마동욱
다음날 아침 고추를 다시 확인 해보니, 어제 없어졌던 진딧물이 다시 생겨났다. 노모는 진딧물은 어지간하여 죽지 않는다며 농약을 사오겠다고 나섰지만 나는 재차 반대했다. 노모와의 실랑이 끝에 결국 막걸리를 한 번 써보겠다며, 막걸리를 얻어와 물과 타서 다시 뿌렸다. 막걸리를 뿌리고 2시간 쯤 흐르자 고추 잎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시들어가고 있었다.

진딧물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들시들 죽어가는 고추를 살리기 위해 물을 반복하여 뿌렸다. 하루가 지나자, 하얗게 변했던 고추가 조금씩 푸른색을 찾았지만, 식초와 막걸리에 심하게 취한 몇 그루는 푸른색을 찾지 못하고,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진딧물은 깨끗이 죽지 않고 조금씩 눈에 띈다. 내일 아침이면 진딧물이 다시 연한 고춧잎을 먹고 있을 것이다. 노모는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냐며, 핀잔을 주신다.

▲ 2004년 6월 진딧물을 잡겠다고 식초를 너무 많이 뿌려 고추 잎이 시들시들 죽어갑니다.
ⓒ 마동욱

▲ 2004년 6월 막걸리를 뿌리고 2시간쯤 지나자 고추 잎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 마동욱

▲ 2004년 6월 막걸리에 취해 술이 깨지 않아 고추나무는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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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장흥군 마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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