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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6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들 중 63명이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 등 각종 교육과 직무훈련을 받고 목포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36개월 동안 대체복무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동안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활동해온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과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의 시작에 맞춰 병역거부 문제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는 것들과 대체복무제의 문제점과 개선점, 대체복무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자말]
 2019년 9월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단독 재판부는 2014년부터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고 있는 나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0시간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군대에 가면서도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군복무를 수행했던 점을 들었다.
 2019년 9월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단독 재판부는 2014년부터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고 있는 나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0시간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군대에 가면서도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군복무를 수행했던 점을 들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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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3단독 재판부는 2014년부터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고 있는 나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400시간을 선고했다. 피고인의 양심이 헌법에서 보장할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는 여러 이유를 지적하고 있지만, 그중 하나는 피고인이 군대에 가면서도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군복무를 수행했던 점을 들었다. 평화적 양심이라면 군생활과 불화했을 것인데 특별한 문제가 표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럼 군대에서 문제를 일으켰어야 한다는 말인가? 피고인이 평화적 신념을 가졌다고 자기 확신을 가지지도 않은 때에?

나는 장로교회를 다니다가 평화주의에 따른 삶이 신앙적 요구라는 내심에 따라 평화주의 전통을 지키는 재세례파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재판부는 내 가족 중에 병역거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종교를 신봉하거나 관련 활동을 한 사람이 없다고 지적하며, 재세례파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점 또한 지적하였다. 개인의 양심과 가족의 종교가 무슨 상관이며, 세례의 여부로 신앙의 진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교파의 전통과 신학, 당사자 삶의 맥락을 좀 더 세심히 따져야 하는 것 아닐까?
  
총과 게임에 집착하던 검사

당연히 검사 측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을 하곤 했다. 검사는 총을 쏘는 컴퓨터 온라인 게임에 접속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게임회사에 사실조회를 요청하더니, 그런 사실이 없자 신문 과정에서 군생활 시 총을 자주 쏘지 않았는지 질문했다.

출퇴근하며 군생활 하는 상근예비역으로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6주 훈련 기간의 사격훈련 이외에 군생활 동안 사격훈련 자체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자, 총소리를 자주 듣진 않는지, 총을 자주 만지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어찌나 총에 집착하던지 검사가 '총 성애자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뻔한 적도 있다. 병역거부를 집총거부쯤으로 생각해서, 총을 쓰면서도 해당 행위와 양심의 불화가 표면적으로 표출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과정이었겠지만, 유독 총에 집착하던 검사의 물음은 꽤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양도, 시간도, 의지도 없는 심문자: 검사와 판사

종종 병역거부 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판결 결과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어떤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해당 종교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심의 근거인 종교적 신념이 진정하지 않다고 판결하였다.

세례라는 종교적 의례가 진정한 신앙심의 표출이라면 성범죄 성직자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신앙을 세례 여부로 단순히 환원하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개인에게 세례라는 의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시점, 그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재판부는 거짓 양심을 걸러냈다고 의기양양했을지 모르지만, 재판부의 해당 판단은 종교적 의례가 개인 안에서 어떻게 의미부여 되고 작동하는지 법관의 성실한 양심으로 살피지 못한 부족한 소양의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소양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 선별 재판의 심문자들은 사건을 성실히 살펴볼 시간도 의지도 없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판자료를 옆에 두고 컨베이어 벨트의 조립공처럼 기계적으로 자료를 읽는 검사와 판사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그 수많은 사건 틈에서 병역거부 재판을 성실하게 살필 여백은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의지도 없어 보일 때가 많다는 점은 문제다.

내 최근 재판(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제출하라고 했다. 자료를 제출한 후 한 달이 지난 재판에서 판사는 자료를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살펴봤는지, 채택에 동의하는지 묻자, 검사는 보지 않았고, 살펴보지 않아도 되며, 증거 채택엔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살펴보지도 않을 서류를 준비하게 한 것은, 앞선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그 서류가 제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민도, 판단도, 노력도 하지 않고 기계처럼 재판에 임하는 심문자들을 볼 때면 이런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양심을 선별하기 위한 심문의 망  
 
 의정부 지법에서 열린 병역거부자 정시우의 재판 방청 후 찍은 사진(윗줄 오른쪽 녹색 마스크를 쓴 사람이 김형수). 대체복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의정부 지법에서 열린 병역거부자 정시우의 재판 방청 후 찍은 사진(윗줄 오른쪽 녹색 마스크를 쓴 사람이 김형수). 대체복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 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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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같은 해 11월 대법원판결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지만, 대체복무 도입 이전에 병역거부를 한 이들은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다. 대체복무 심사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형사재판을 통한 양심 선별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선별하려는 양심에 해당하지 않으면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받을 기회도 없이 감옥에 가야 한다. 그 치열한 선별 과정은 검사와 판사의 심문을 통해 촘촘하게 짜여 있고, 위 질문들은 그 촘촘한 망의 줄기들이라 할 수 있다. 양심을 선별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양심의 침해가 아닐까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선별의 망이 합리적 근거로 엮인 게 아닐까 하는 질문도 던지게 된다.

병역거부자의 재판 핵심은 2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양심을 형성하는 과정과 형성된 양심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양심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라는 게 주로 생활기록부이며, 여기에 평소의 일기, 사진, 주변인의 진술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양심을 증명하기 위해 일기 쓰기, 사진 찍기,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생활화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나 평화적 신념을 보여줄 수 있는 직접적인 활동을 찾기 어렵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낙인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다음으로 양심에 따른 행동이 일관되게 표출되어야 하는 점이다. 양심 형성이라는 것은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는 모순된 두 가지의 모습, 즉 군대를 거부하는 모습과 그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 함께 표출되기 마련이다. 가령, 병역거부를 공개 선언한 한 병역거부자의 재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군입대를 신청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많은 병역거부자가 병역거부 직전까지는 자신의 양심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군생활에서 그 충돌지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구책을 찾는다. 징병제라는 제도적 강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확신을 가지기 전의 삶의 양상만을 문제 삼는다면, 도대체 선별의 망을 통과할 수 있는 양심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미 감옥에 다녀온 병역거부자들조차도 "이런 재판이었다면 우리도 가짜 병역거부자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우스갯소리로 "석가모니나 예수 그리스도가 와도 재판에서 유죄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는 건 이 때문이다.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는 한 예비군 훈련거부자가 있다. 예비군 훈련은 처벌을 받아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해서 부과되는데, 재판을 받기 전에 한두 건 정도는 약식기소로 벌금형이 나오기도 한다. 그 병역거부자는 벌금을 내지 않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해외로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벌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국금지가 걸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출국하지 않으면 학교와 동료(교사든 학생이든)에게 큰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부랴부랴 벌금을 납부했다. 해당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검사와 판사는 왜 무죄를 주장하면서 벌금을 납부했냐고 따져 물었다. 과연 이 질문이 납득할 만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양심의 발현이 일상생활의 감각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지, 검사는 생각해봤을까?

병역이 신성시되는 징병제 사회에서 삶의 다양한 맥락과 가능성 속에서 부유하며 살아가는 개인에게 검찰과 재판부가 던지는 선별의 촘촘한 망은 납득하기 어려운 자의적 거름망처럼 보인다. 어떤 재판에서는 FPS(First-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 여부로 양심을 선별하고, 어떤 재판에서는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기도 한다. 신문과정에서 폭력을 거부한다는 일관된 진술은 재판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재판받는 피고인들의 부유하는 삶만큼이나 재판의 결과 또한 부유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형사재판이라는 틀 속에서 국가가 선별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병역거부자를 전제하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고정불변의 근거를 찾는다면, 다양한 양심은 그 다양성과 가능성을 억압받고 철저하게 일그러지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폭력과 불화하면서, 내심과 불화하는 현실을 통제하지 못하고 문제적 상황으로 표출하며, 자신의 온 삶의 과정을 일기, 사진, 주변인들과의 대화 등으로 기록하고, 병역거부를 명시하는 정관을 가진 조직에 소속되어, 관련된 직접적인 활동을 하는 병역거부자. 이 항목에서 한 가지만 충족되지 않아도 진정한 양심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형사재판 틀 속에서 과연 이 선별의 망을 통과할 병역거부자가 어디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예비군 병역거부자이자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입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www.withoutwar.org/?p=1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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