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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부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온 세상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모든 사람들은 집안으로 꽁꽁 숨어들고 집콕 생활이 시작되었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딸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곧 사라지겠지 하면서 행여나 하고 기다려온 시간이 벌써 8개월이 넘어간다.

지난 3월 코로나19가 들풀처럼 뉴욕에 번질 때 우리는 딸네 가족이 염려되어 잠 못 이루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날들이 많았다. 마음이 놓이지 않고 걱정이 되면서 우리는 가끔씩 영상 통화를 했다. 우리나라 반대편인 뉴욕에 있는 딸네 가족과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참 놀랍고 신기한 세상임을 실감하면서. [관련기사 : 밤마다 잠을 못 잡니다, 딸이 지금 뉴욕에 있어요

뉴욕의 아이들도 학교 못 가긴 마찬가지
 
손자 손녀 뉴욕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
▲ 손자 손녀 뉴욕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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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도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하고 딸도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내년이나 되어야 학교를 가지 않을까?'라고 딸은 말을 한다. 얼마나 답답할까. 어린애들은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이다.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놀고 도심 곳곳을 누비며 바쁘게 살아왔던 생활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완전히 바뀌어 놓았다. 곁에 사람이 있어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고립무원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은 꼭 새장에 갇힌 새들과 다름이 없으니 많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한가로운 시간들은 아이들에게 먼 옛날 추억이 살아나 한국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소환해 냈다. 딸에게는 올해 한국 나이로 10살 되는 이란성 쌍둥이인 아들과 딸이 있다. 3년 전 아이들과 함께 딸이 직장 일로 한국에 들어와 살았다.

그때 우리 부부는 가끔씩 서울에 올라가 이삼일 같이 놀다가 내려왔을 뿐, 긴 시간 서로가 정을 쌓을 여유가 없었다. 손자 손녀는 영어로만 말을 하게 되니 소통이 어려웠다. 그러한 연유로 손주 손녀와 따뜻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우리는 이별을 해야 했다.

그런데 요즘 영상통화로 만나는 아이들은 한국에서 떠날 때보다 많이 자랐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며 한국말로 더듬 거리며 말을 한다. 아이들은 생각도 성숙해졌다. 손자 손녀의 따뜻하고 보고 싶다는 말에 울컥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국에 살고 있을 땐 우리를 만나도 별로 따르지 않고 냉랭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더 놀라운 일은 한국말과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엄마에게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고 하니 기특하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한글을 배우며 의사소통이 간단한 한국말을 배웠다고 한다.

한국말에 관심 생긴 아이들이 불러일으킨 효과
 
 뉴욕과 우리가 사는 군산에서 생일 축하 노래도 같이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뉴욕과 우리가 사는 군산에서 생일 축하 노래도 같이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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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따르릉' 소리에 전화를 켜고 화상 통화를 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하드보드 칠판에다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동생'이라고 한글도 써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우리는 감탄하면서 이름을 부르고 'good'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멀리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고 한글과 한국말을 배우려 하는 것은 외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혈육에 대한 단단한 끈일까? 이제야 우리 손주 손녀 같다는 생각에 예쁜 마음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이러한 변화된  현상이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우리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은 고통이 찾아오면 견디는 자세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외로워야 영혼이 맑고 생각도 깊어진다. 바쁘게만 살았던 날들은 몰랐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감염병은 외로움에 잊고 지내던 가족의 곁을 만나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코로나19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모든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은 사람과 비대면으로 살아야 안전하다고 날마다 문자가 온다. 

매일 바쁘게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멈춘 듯 조용히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며 삶의 근원도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날들은 새로운 디지털 시대다.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 모르면 도태되는 세상이다. 나이 든 우리는 두렵다. 자꾸만 변화되는 세상을 어찌 살아내야 할지.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손자와 손녀와 비대면 영상통화를 하고 요즘 말하는 랜선 친구가 됐다. 그림일기도 써서 공유를 하고 생일날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뉴욕과 우리가 사는 군산에서 생일 축하 노래도 같이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같이 나눌 사람이 없으니 멀리 있는 우리를 찾는다.

이곳 한국에 있는 우리도 2차 코로나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멀게만 느끼고 살았을 손자 손녀와 랜선 친구도 되고 소통할 수 있어 우리 부부는 위로를 느끼며 소소한 일상으 보낸다. 

참 사람 사는 세상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인생이 바닥이라고 느낄 때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라는 바닥을 딛고 일어서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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