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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으로 이어진 우리, 건강한 밥상으로 밝아지는 세상

매일 먹는 밥에 담긴 씨앗, 똥, 농부 이야기
20.10.26 11:04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10월 17일,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부모 중 한 명을 동반한 10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듣는 환경과 먹거리 이야기 두 번째 시간으로, 밝은누리 인수마을밥상에서 밥 짓고 있는 이보경 님이 강의를 맡았다. 

이날 아침으로 김치콩나물국밥을 먹고 왔다는 보경 님은 하루 두 끼 이상 누구나 먹는 밥의 소중함과 의미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이야기해주었다. 여러 생명과 손길들 거쳐서 밥상에 오르는 밥 이야기의 시작은 건강한 밥상에서 멀어지면서 생긴 몸의 변화를 언급하며 시작되었다. 
 
보경 님은 인수마을밥상에서 밥 지으면서 지내고 있다. ⓒ 인수마을밥상
  
"저는 열아홉 살까지 집에서 제 시간에, 적당한 양으로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살았어요. 너무나 밥이 익숙해서 밥은 그냥 먹는 거, 제 시간에 안 먹으면 배고픈 거, 골고루 먹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무 살 때 학교 때문에 서울로 왔는데 밥을 차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이 시간에 밥 드세요' 하고 아무도 차려주지 않았어요."
 
일회용기에 담긴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참치캔과 김을 반찬 삼아 먹은 지 두 계절이 지나자 보경님의 얼굴에 여드름이 울긋불긋 피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부모님과 피부과에 가봤으나 낫지 않았고 부모님과 의사는 '그건 먹는 것과 상관없다'는 말을 했다.
 
"겨울방학 돼서 또 집에 갔는데 얼굴이 더 심한 상태였어요. 이번에는 한의원을 갔어요. 병원에서처럼 한의사도 '이건 먹는 것과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라고 했어요. 저는 의아했어요. 그리고 다음 해에 마을밥상을 만났어요. 정성껏 차려주시는 건강한 밥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먹으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뭘 해도 낫지 않던 얼굴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조금씩 깨끗해지고 건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돌아보면 그건 먹는 것과 상관이 있었어요(웃음). 내가 들은 어른들 말이 잘못되었다고 정리했어요."
 
학교를 갈무리한 보경 님은 농부님들이 정성껏 기른 건강한 농작물을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직장에서 일을 했다. 그리하여 몇십 년 동안 농사를 지은 농부들을 만나고, 씨앗이 어떻게 농부들에게 가는지, 농사짓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작물은 어떤 과정으로 유통되는지, 그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똥과 오줌을 누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요? 모으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 집에서는 변기에 내려버리죠? 변기 물을 한 번 내리면 6리터를 쓰는데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을 넘어서요. 또 똥과 오줌은 물을 만나면 수질도 오염돼요. 밥을 먹으면 영양소의 70퍼센트는 똥과 오줌으로 다시 나와요. 그래서 이 배설물이 좋은 거름이 된다고 해요. 하지만 옛날에는 밖에 있다가도 집에 가서 똥을 눌 만큼 똥이 귀했는데 지금은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많이 먹어서 똥으로 좋은 거름을 만들 수가 없대요. 도시 사람들 똥은 썩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질문에 손을 들고 답하려는 어린이들 모습. 활기차다. ⓒ 인수마을밥상
 
 
씨앗은 사고팔지 않았다
 
"퇴비는 씨앗을 심기 일주일에서 열흘 전에 뿌려서 독한 성분이 빠지면 그 뒤에 씨앗을 심었어요. 땅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조상들은 섞어짓기, 사이짓기, 돌려짓기 등을 했어요. 허브를 농작물 사이에 섞어 지으면 해충을 쫓을 수 있어요. 고추에 생기는 담배벌레는 들깨를 사이에 심어서 물리쳐요. 벌레가 잘 꼬이는 토마토 사이에는 파를 심어요. 또 같은 작물을 연이어 심지 않아서 영양분을 작물이 골고루 빨아들이도록 해주었어요. 휴작도 있어요. 5년에서 7년 농사짓고 한 번쯤 쉬어줘요. 우리가 매일 먹는 벼를 제외하고요."
 
이렇게 만든 비옥한 흙에 씨앗을 심는다. 토박이 씨앗은 할머니의 할머니가 손주의 손주까지 남겨 주기 위해 전해 내려오는 씨앗이다. 씨앗 중에서 가장 탐스럽고 예쁜 것은 절대 먹지 않고 내년 농사를 위해서 남겨놓았다고 한다.
  
"씨앗은 사고팔지 않았어요. 서로 나누는 것이었거든요. 씨앗은 아무리 쟁여놓아도 의미가 없어요. 땅에 심겨야 의미가 있지요. 그런데 씨앗 회사에서 파는 씨앗도 있어요. 이런 회사에서 씨앗을 연거푸 사면 어떻게 될까요? 내년에 또 심어야지 해서 갈무리했는데 내년에는 열매가 안 나는 씨앗이에요. 그리고 이 약을 사서 뿌려야 한다고 약을 또 팔아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물려준 씨앗을 또 물려주려 했는데 회사에서 씨앗을 사야 되고 약까지 사게 돼요."
 
심긴 씨앗에는 해, 물, 바람, 흙, 벌레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런데 농부의 마음과 달리 어떤 때는 해가 강해서 가뭄이 들고, 어떤 때는 비가 억수로 와서 작물이 쓰러지기도 한다. 이번 여름에도 두 달 가까이 비가 엄청나게 와서 인수마을밥상도 먹거리 재료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뭇 생명과 손길들 연결되어 순환되는 밥상
 
"전에는 농부님이 다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농부님은 거드는 사람이더라고요. 제때에 비료 주고, 풀 뽑고, 벌레 잡아주고, 수확하면서 때에 맞춰 일하는 분이더라고요. 집집마다 먹을 만큼 농사를 지으면서 살 수 없기 때문에 농부님들이 대신 지어주는 것인데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돼요. 그러면 농부님과 더 대화를 나누게 되고 관계가 생겨요. 나도 농사지을래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농부가 부족해지면 다른 나라에서 농산물을 사 오는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가 팔지 않으면 굶는 위기가 올 수도 있어요."
 
100년 전 아일랜드는 감자를 단일종으로 심었다가 잎마름병이 와서 인구의 4분의 1이 줄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토박이 작물은 아주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작물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작물이 난 곳과 먹는 사람과의 거리는 짧을수록 좋다. 먼 거리를 오는 작물에 약을 치거나 방사선을 쐬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에너지를 덜 쓰며, 매연도 덜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농부와 관계를 더 깊이 맺을 수 있다고 보경님은 강조했다.
  
"이렇게 온 작물은 가게에서 우리를 만나요. 가게는 제철에 나는 신선한 먹거리를 소개시켜 주는 역할도 하고, 먹는 사람과 농민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도 해요. 내가 소개시켜 주는 먹거리만 사세요가 아니라 이런 것 갖다 달라 하면 구해주기도 하고요."
 
밥상 차리는 이는 신선한 먹거리 본연의 맛과 싱싱함을 느낄 수 있도록 소금, 간장 등을 쓰고, 적절히 불을 쓰면서 밥을 차린다. 먹는 사람은 차리는 사람과 이어진 관계만큼 더욱 감사하게 먹게 된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 우리는 어떨까요? (맛있어요! 배불러요! 건강해져요! 자라나요! 등의 답변이 여기저기 나왔다.) 먹는 사람의 몫은 건강한 먹거리를 맛있게, 정성껏, 고마운 마음으로 먹고, 그 힘으로 친구들 관계도 잘 풀고, 잘 놀고, 모르는 공부는 모르겠다 얘기하고요. 그러는 것이 우리 몫이 될 거예요."
  
 
하나하나 붙여 가며 설명한 그림들이 둥글게 이어진다. ⓒ 인수마을밥상
 

뭇 생명과 손길, 이어져서 밥상까지

보경 님이 하나하나 붙여 나간 그림들이 어느덧 큰 원을 그린다. 이 그림에서 어느 하나라도 연결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똥, 오줌이 안 모이면 화학비료를 쓰게 되고, 토박이 씨앗을 기르지 않고 씨앗을 사면 건강한 먹거리를 놓친다. 농부의 수고를 몰라준다면 농사를 안 짓게 되고 다른 나라 작물을 사 먹어야 된다. 결국 건강한 밥상을 모실 수 없게 된다.  
 
"매 과정마다 몫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임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두워져요. 다음에 먹을 사람 생각하며 우리가 연결되어 지낸다면 세상이 한층 밝아질 거라 생각이 들어요. 이모가 밥상에서 밥 지으면서 신기하게 생각한 게 있었어요. 이만 한 국솥에 국 끓이고, 카레와 닭볶음탕도 이만 한 솥에 하고, 밥도 이만 한 것에 세 개를 했어요. 그런데 밥을 뜨기 시작해서 한두 시간 지나면 벌써 바닥 긁는 소리가 나요. 아니 이렇게 많이 밥을 했는데 이게 다 어디로 갔을까? (웃음) 밥상지기 이모삼촌들이 만든 것 먹으며 어린이들이 지내고 있구나. 이렇게 한 밥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구나 생각했어요."
 
강의가 끝나자 '밥 지으면서 만지는 작물 누가 보내주셨을까 궁금해서 찾아가 본 적 있는지', '밥 지을 때 가장 뿌듯한 순간이 언제인지' 질문이 이어졌다. '밥 지을 때 화난 적 있는지' 궁금하다는 어린이의 질문에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제가 지은 밥이지만 너무 맛있어요. (웃음) 이 밥이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해서 여름 밥상 쉼 때 상주에 계시는 김하동 선생님, 김채복 선생님 찾아뵌 적 있어요.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벼는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삶 살아왔는지 이야기 죽 듣고 친해지는 시간 가졌어요. 그다음 주에 밥상 와서 쌀을 씻는데 늘 씻는 쌀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이 쌀에는 김하동 선생님, 김채복 선생님의 정성이 모두 담겼고, 내가 이분들과 이어져 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가 자주 먹는 된장을 담그고 보내주시는 곳도 가서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 보고 왔어요."
 
'언제쯤 밥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라는 마지막 질문에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빨리 함께 모여 밥을 먹기를 바라는 설렘도 느껴졌다. 강의를 마치고 밥상에서 준비한 된장주먹밥을 각자 가지고 온 통에 나누었다. 상주에서 온 쌀, 무안에서 온 된장, 생협 부추, 당근, 깻잎, 생협 가게에서 온 호두, 잣, 들기름, 밥상지기 이모삼촌들의 손맛을 담아 완성된 된장주먹밥. 밥으로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밥을 먹으며 느껴본다.  

 
쌀, 된장, 부추, 당근, 깻잎, 호두, 잣, 들기름, 그리고 밥상지기들의 손맛으로 완성된 된장주먹밥을 나누었다. 밥으로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 인수마을밥상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듣는 환경과 먹거리 이야기 웹자보. ⓒ 인수마을밥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밝은누리 누리집(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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