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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가 고요하다. 날씨도 참 좋은데, 대낮에 이렇게 조용한 바르셀로나를 보고 있자니 모두 아주 긴 씨에스타(스페인식 낮잠 혹은 대낮의 휴식)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가 국가 위기 상황을 선포한 것이 3월 13일이다. 그 전날인 12일, 우리 연구실은 가능한 모든 연구를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회의는 화상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기에 나는 이미 집에서 근무하는 첫날이었다.

집에서 일하는 중간 중간 뉴스를 확인하던 중 위기 상황이 선포된 것을 알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1일(현지 시간) '독일 국민 60~70퍼센트가 코로나19에 감염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듯 언급을 한 뒤였다. 국경 봉쇄에 큰 의미가 없다던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마저 17일 'EU 및 솅겐 지대 국경과 같이 프랑스 국경도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유럽 전반의 분위기가 코로나19로 엄청난 위기감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마드리드 도심에 투입된 스페인 공수부대원 (마드리드 EPA =연합뉴스) 스페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민들에게 2주간 외출 자제를 요구한 가운데 수도 마드리드 도심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공수부대원들이 배치돼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실제, 국가 위기 상황이 선포된 13일 스페인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총 5232명이었으니, 3월 17일인 오늘 (현지시간 23시 기준 스페인 보건부 통계자료) 총 1만1826명과 비교하면, 불과 나흘간 6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증가했다. 사망자 수는 133명에서 533명으로, 400명이 증가했다.

지난 주말 사이 스페인의 모든 미디어가 코로나19 이야기로 뜨겁고, 정부의 비상 시행령 등도 점차 강해지면서, 이제 대부분의 주민들이 칩거에 들어갔고, 필자가 살고 있는 바르셀로나도 고요해졌다. 늘상 듣던 자동차들 빵빵 거리는 소리도 없고, 가끔 하늘에서 들리던 헬리콥터 소리, 응급차 소리, 심지어는 사방에서 공사하던 소리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가 있을까.

늘 시끌벅적하고 어디선가 '와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하는 것이 스페인 문화이기도 하지만, 특히 국가 위기 상황이 선포되기 직전이었던 지난 12일까지만 해도, 모두들 일을 하고 학교를 가고 카페에 가고, 다른 어느 하루와 크게 다를 것 없었던 일상이었는데... 각자 24시간 '집콕'을 하는 지금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선명한 대비로 느껴진다.

모두들 각자의 집에서 묘한 긴장감과 지루함 사이를 오가면서 며칠이 지나갔다. 어제도 오후 내내 추적추적 비가 내려서 우울한 상황에 청승맞은 분위기까지 더하더니, 오늘은 하늘이 맑게 개어서 발코니에서 볕도 좀 쬐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밖에 나가서 조금 걸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이렇게라도 햇살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지난 주말 라반가르디아의 일기예보는 비가 올 것을 예고하면서 '날씨가 집콕하기 좋게 도와줄 것'이라고 했는데, 아니다. 집콕을 하루만 하는 거면 모를까, 장기간 이어질 칩거에는 날씨라도 좋아서 각자의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야 겨우 힘이 날 거다.

 
주민 격려에 화답하는 바르셀로나의 코로나19 의료진 스페인 바르셀로나 의료진이 16일(현지시간) 집에서 격려를 보내는 주민들에게 화답하고 있다. 스페인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엄격한 국경 통제 조치를 시행했다. 페르난도 그란데말라스카 내무장관은 17일 자정부터 스페인 국적자 및 정부로부터 거주 허가를 받은 사람,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직장인, 불가항력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만 입국을 허용키로 했다. ⓒ AP=연합뉴스
 
17일도 고요 속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바르셀로나는 저녁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제 오후 8시가 되었나보다 할 즈음,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음악소리가 들렸다. 밴드를 하는 사람인가. 앰프로 아주 크게 증폭된 처음 듣는 노래가 하늘에 울려퍼졌다.

이틀쯤 전 한낮에 이웃 아이가 얼마나 심심했으면 창밖 하늘에다가 "Hola(안녕하세요), Hola (안녕하세요)" 몇 분이나 인사를 하더니, 오늘은 누가 파티라도 하려나. 발코니에 나갔더니, 나만 궁금해 나온 게 아니다. 많은 이웃들이 불을 켜고 창가로 발코니로 테라스로 나와 서 있다. 박수를 치고 춤을 추고 웃는다.

며칠 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건가. 음악이 끝나고 나서는 서로 한참을 그렇게 서서 박수를 쳤다. 그 박수 소리 속에서 울려 퍼지는 "Hola (안녕하세요)" 인사말들, 웃는 소리들이 고요하던 하늘에 퍼져간다. '우리는 각자 떨어져 있지만, 또 같이 있어. 같이 겪고 있어. 잘 하고 있어.' 서로를 다독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연대의 힘이다.

이 작은 행사가 끝나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것은 지난 토요일 즈음 스페인 전역에서 시작된 익명의 캠페인이라고 한다. 저녁 8시쯤 각 도시에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진과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감사를 전하는 의미로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발코니와 창문에서 노래를 하고 지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들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살아 있음이, 웃음이, 그 희망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는데, 오늘 내 스스로가 그 연대의 현장에 있는 것에는 또 다른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위로가 있었다.

그래, 우리 모두가 함께 하고 있어. 그리고 잘 하고 있어.

 
2020년 3월 17일 오후 8시께, 여러 집들에 불이 켜지고 모두 발코니로 창으로 나와서 함께 박수를 치고 응원하는 모습 (바르셀로나) ⓒ 한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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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살고 있는 연구자입니다. 바르셀로나의 폼페우 파브라 대학에서 박사를 마치고 박사 후 연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사이언스타임즈에 객원기자로도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