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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두오모 광장에 가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 중 하나인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모든 아기들은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과거 피렌체의 인구 변동을 유추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 세례당은 내부도 아름답지만 동쪽과 북쪽에 있는 청동문 때문에 더 유명하다. 이 문을 만든 사람은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다. 현재 세례당에 있는 청동문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기베르티는 이 두 개의 문에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다. 먼저 모직업자 길드의 요청을 받아 동쪽 청동문을 21년(1403-1424)에 걸쳐 만들었다. 이 문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길드는 다시 북쪽 청동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이 북문을 만드는 데에는 무려 27년(1425-1452)이 걸렸다. 이 북문 역시 걸작으로 훗날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현재는 북문과 동문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다. 원래 북문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두 번째 청동문이 너무 아름다워 두오모 성당과 마주보는 동쪽에 설치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동문이 미켈란젤로가 얘기한 '천국의 문'이다.
 
이 청동문은 그 작품성도 뛰어나지만, 작업을 수주하기 위한 예술가들간의 치열한 경쟁으로도 유명하다. 1401년 이 청동문 제작자를 선발하기 위한 공개경쟁이 열렸다. 여기에는 총 7명이 참가했는데 그 중에서 마지막까지 우승을 두고 경합을 벌인 이들은 기베르티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을 개발하고 두오모 성당의 돔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반니 세례당 북문 진품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있다. 천국의 문에 비하면 다소 소박하게 느껴진다. ⓒ 박기철
   
천국의 문 진품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박기철
 
제물이 된 이삭
 
당시 기베르티는 스물네 살에 불과했고, 또한 출신 성분도 분명치 않았다. 그는 바르톨루치오라는 금세공사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바르톨루치오의 공방에서 작은 귀걸이 등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금세공사나 조각가 길드의 정식 회원도 아니었다.
 
반면에 브루넬레스키는 이미 당대 최고로 불리는 도나텔로와 절친이자 경쟁자일 정도로 실력과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브루넬레스키는 애초에 기베르티가 자신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애송이와 경쟁하게 된 점을 불쾌하게 여겼다.
 
이런 두 명에게 주어진 경쟁 과제는 '제물이 된 이삭'이었다. 이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아브라함이 노력 끝에 100세에 얻은 아들이 이삭이다. 그런데 신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도저히 따르기 어려운 명령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신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그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산으로 데려간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 대신 아들을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칼을 들어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을 말린다. 그리고 신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명되었다며 수많은 축복을 내린다.
 
경쟁 과제는 바로 천사가 아브라함을 저지하는 순간을 부조로 만드는 것이었다. 경쟁자들에게는 각각 34킬로그램의 청동판 4개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세로 43센티미터에 가로 33센티미터의 패널을 만들어야 했다. 기간은 1년이 주어졌다.
 
일곱 명의 경쟁자가 만든 과제 중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작품만이 현재 바르젤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나머지 다섯 명의 결과물은 남아 있지 않다. 피렌체는 수많은 전쟁을 겪었는데,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작품은 워낙 뛰어나서 보존하기로 하고 나머지 경쟁자들의 작품은 녹여져 전쟁물자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같은 주제, 다른 표현
 
같은 주제이지만 그 표현 방식은 극명하게 나뉜다. 가장 큰 차이점이 천사가 아브라함을 말리는 방식이다. 기베르티는 천사가 이삭의 목을 향해 칼을 겨눈 아브라함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말리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반면에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은 훨씬 더 긴박하고 대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왼손으로 이삭의 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오른손의 칼은 금방이라도 목을 찌를 듯이 위협적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말리기 위해 천사는 아브라함의 오른 손목을 직접 잡아채서 물리력을 행사한다. 이 두 작품은 모두 훌륭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은 너무 도발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탈락하고 기베르티가 최종 우승을 차지한다.
 
이렇게 표현 방식이 차이나는 이유는 두 사람의 성격에서도 찾을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자신감이 넘치고 독선적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없이 독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기베르티는 매우 유순하고 사람 관계가 좋았다. 또한 자신의 이런 성격을 정치적으로도 잘 활용했다. 보통 조각가들은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밑그림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밀랍으로 모형을 만들어 본다.

기베르티는 밀랍 모형을 여러 명에게 보여주면서 조언을 받았다. 그 중에는 평가위원들도 있었다. 그는 조언을 최대한 반영해서 모형을 수정했다. 어떤 경우에는 밀랍 모형을 전부 녹여버리고 아예 새로 만들기도 했다.
 
반면에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밑그림과 밀랍모형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어떠한 조언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작품에 더 정이 갈 것이다.
   
기베르티의 작품 브루넬레스키의 작품보다 좀 더 정적이고 부드럽다. ⓒ 박기철
 
브루넬레스키의 작품 천사가 아브라함의 손을 직접 잡아서 말리고 있다 ⓒ 박기철
         
계속되는 경쟁
 
최종 탈락한 브루넬레스키는 당연히 불같이 분노한다. 사실 평가 위원회 내에서도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의견이 갈렸었다. 이 판정 결과에 대해 두 사람은 훗날 상반된 얘기를 한다. 브루넬레스키는 위원회가 공동 우승을 제안했지만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베르티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자신의 단독 우승이었다고 말했다.
 
화가 난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로 떠난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에서 고대 미술과 건축을 연구했다. 그리고 수년 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 설계자를 선정하기 위한 공모가 열리자 돌아온다. 이때도 둘의 갈등은 계속 이어진다.

<다음 편에 계속...>

[참고서적]

김상근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21세기 북스)
로스 킹 <브루넬레스키의 돔> (이희재 옮김, 세미콜론)
리사 맥개리 <이탈리아의 꽃 피렌체> (강혜정 옮김, 중악북스)
조르조 바사리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이근배 옮김, 한길사)
어빙 스톤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 (이인철 옮김,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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