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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다섯 명은 결국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미수습자의 마지막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해 11월부터 긴급 기획을 편성해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이들에게 조그마한 용기를 주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후원(좋은 기사 원고료)은 전액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전달됩니다. (후원하기) http://omn.kr/olvf [편집자말]
49재 날 올려진 생일 케이크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49재가 열린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 대웅전에 차려진 제사상. 가족들은 이날 생일이기도 한 영인군을 위해 케이크를 올렸다. 왼쪽 꽃바구니에는 "영인아 생일 축하해. 사랑하고 보고싶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다. ⓒ 남소연
20년 전 오늘, 1월 5일에는 흰 눈이 내렸다. 엄마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장이 막혀 수술해야 했던 영인이는 태어나자마자 보름여 간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1월 5일에는 엄마는 아이 사진을 앞에 두고 세 번 절했다. 아빠는 향을 꽂았다. 형은 동생을 위해 108배를 했다.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 영인이만 없었다.

엄마는 아침에 영인이의 생일상을 차렸다. 영인이가 평소 좋아하던 불고기와 잡채, 미역국과 초코케이크도 준비했다. 가족들은 영인이의 사진을 올려놓고 상에 둘러 앉았다. 국과 반찬이 평소보다 짰다. 이유가 있었다.

"애가 있었을 때는 회사 다니느라 생일상 한 번 제대로 차려주지 못했는데... 떠나고 나서야 이렇게 생일을 챙겨주네요. 아침 내내 울면서 음식을 만들어서 너무 짜더라고. 결국 잘 먹지도 못했어요."

엄마는 모든 게 미안했고 많은 게 아쉬웠다.

이날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단원고 박영인·남현철군과,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49재가 엄수됐다. 이날 오후 2시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의 산 중턱에 위치한 절, 대각사에 영인군의 가족과 양승진 교사의 가족이 모였다.
하늘나라 간 스승과 제자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군의 부모는 5일 오전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찾아 현철군과 나란히 있는 박영인 군과 양승진 선생님의 봉안함에도 꽃을 올렸다. ⓒ 남소연
생일 음식이 짰다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합니다."
"집착하는 행동, 말, 마음을 참회하며 절을 합니다."
고개 떨군 영인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아버지 박정순 씨가 박 군의 49재가 열린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 대웅전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 남소연
참회와 감사의 마음을 담은 108배가 시작됐다. 목탁 소리가 이어졌다. 허리디스크 때문에 며칠 전 MRI를 찍었던 영인군의 아버지 박정순씨는 절을 하다 결국 주저앉았다. 정순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두 손을 모으고 바닥을 바라봤다. 엄마 김선화씨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단원고 2학년 8반 지상준, 홍승준군과 3반 황지현양의 엄마가 곁을 지키며 108배를 함께 했다. 간간히 이어지는 한숨 소리가 대각사를 감쌌다.

영인군의 형 영준씨가 숟가락을 들고 밥 세 술을 떠 그릇에 옮겨 담았다. 배, 청포도, 귤, 딸기, 토마토와 떡이 놓인 상. "영인아, 생일 축하해. 사랑하고 보고 싶다"라고 쓰인 꽃바구니와 생일 케이크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세상의 삶과 죽음 물과 얼음 같으오니... 청정해진 업식으로 극락왕생 하옵소서"

선화씨와 영준씨,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와 딸 양지혜씨가 나란히 앉아 읊조렸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의식. 49일 전 시신 없는 장례식을 치렀던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상에 향을 꽂고 절했다.

남편의 옷가지를 태우다
영인 엄마의 눈물샘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엄마 김선화씨(왼쪽 두 번째)가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에서 49재를 지내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역시 미수습자인 양승진 선생님의 부인 유백형씨(오른쪽)도 고인의 유품을 태우는 동안 기도하고 있다. ⓒ 남소연
"양승진 선생님, 유백형의 남편, 양승진 선생님. 31년을 결혼생활 하면서, 당신하고 살면서 행복한 날도 있었고, 미운 정 고운 정 들어가면서 부부의 연을 맺어서 살아왔는데 이제 영원히 편안한 곳에 가셔서 잠드시고..."

아내는 말을 잊지 못했다. 떠나는 길에 입고 가라고 평소 입던 옷을 태우는 소전의식. 남편의 흰 셔츠와 사진에 조금씩 불이 붙었다. 영인군의 엄마 선화씨는 아들이 잘 입던 빨강 티셔츠와 남색 야구모자, 장갑을 챙겨왔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야구 할 때마다 끼던 장갑이 금세 타올랐다. 검은 연기를 피하지도 않고 각자 눈물을 훔쳤다.

"영인이 이놈은 꿈에도 한 번 안 나와요. 나는 너무 보고 싶은데. 사람들은 다 잘 지내느라 꿈에 안 나오는 거라고 하던데, 그런 거 맞죠? 우리 영인이 잘 지내는 거겠죠?"

"당신 속상할 까봐 안 나오는 거지. 당신 걱정할까봐..."
생일 맞은 아들의 제사상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부모인 박정순, 김선화 씨가 박 군의 49재가 열린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 대웅전에서 아들 영정 앞에 차를 올리고 있다. ⓒ 남소연
선화씨의 아쉬움을 정순씨가 달랬다. 서너 시간 배를 앓으며 낳았던 둘째 아들의 49재를 치른 선화씨는 "그래도 보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안방의 침대 머리맡에 작게 남편 사진을 뒀어요. 맨날 사진에 대고 말 걸지. 자기 전에 인사하고, 나갔다 와서 인사하고... 커피 마실 때, 과일 먹을 때도 "자기도 한 입 해" 이렇게 건네기도 하고."

남편의 옷가지를 태우고 제사상을 차리며 절을 한 하루. 백형씨가 안방 머리맡에 있는 사진 속 남편에게 전할 이야기를 품고 절을 나섰다.
양승진 선생님과 작별하는 날 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부인 유백형씨가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에서 49재를 지내며 기도하고 있다. ⓒ 남소연
박영인 군의 유품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49재가 열린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에서 스님이 고인의 유품을 태우고 있다. ⓒ 남소연
자꾸 들썩이는 어깨

앞서 남현철군의 49재도 엄수됐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찾은 엄마와 아빠는 아들의 봉안함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이제 정말 마지막이고 싶은" 눈물이 두 사람의 볼 위에 또르르 흘러내렸다.

49재는 현철군이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함께 자리해 예배를 지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사로 인해서 고통을 당한 모든 아이의 유족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이 땅에 이뤄지도록 인도해주셔서 진실이, 모든 것들이 빨리 파헤쳐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고, 그런 와중에 하나님께서 모든 유족의 마음을 위로해주시옵소서."

목사의 마지막 기도로 예배가 마무리됐지만, 엄마와 아빠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두 사람 시선의 끝에 아들의 유해 대신 유품과 흙(참사 현장 해저와 단원고에서 채취)으로 채워진 봉안함이 놓여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는 미리 준비한 작은 꽃다발을 들고 봉안함에 다가섰다. 작은 유리문 너머로 봉안함과 함께 현철군의 영정을 들고 찍은 친구들의 단체 사진이 보였다. 엄마는 아들의 봉안함, 그리고 나란히 놓여 있는 박영인군, 양승진 교사의 봉안함에까지 꽃다발을 붙였다. 뒤에서 꽃을 쥐고 있던 아빠의 어깨가 들썩였다.

"엄마와 아빠도 열심히 살게"
입술 깨문 현철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군의 아버지 남경원씨가 5일 오전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찾아 49재를 치르며 입술을 깨물고 있다. 왼쪽은 이날 49재에 함께한 육성철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 남소연
49재가 끝난 후 현철군의 아빠 경원씨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인이 된 것 같아요. 화도 초월해야 하고, 아픔도 초월해야 하고... 모든 걸 초월해야 하는 도인이 된 것 같아요. 근데 계속 아파요. 내 피붙이니까... 내 피붙이니까... 유골 하나 찾지 못했는데 저 빈 깡통 같은 봉안함을 두고 49재를 치르려니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하지만 이내 아빠는 마음을 다잡았다.

"(장례 후) 49일 동안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아들을 보내주려고... 안 보내주면 아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이제 좋은 곳으로 가라, 엄마와 아빠도 열심히 살게'라는 마음으로 왔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꽃을 준비한 현철아빠 세월호 미수습자 남현철 군의 아버지 남경원씨가 5일 오전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을 찾아 꽃을 올리고 있다. 아버지는 현철군과 나란히 있는 박영인 군과 양승진 선생님의 봉안함에도 꽃을 올렸다. ⓒ 남소연
아빠는 아들에게 "저 세상에서 한 번만 만나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전하며 자리를 떠났다.

"현철아, 하느님이 널 데려갔을 땐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우리 부자 사이를 갈라놓았을 땐 하나님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셨겠지. 좋은 데 가서 살고, 아빠도 열심히 살게. 나중에 저 세상에 갔을 때 꼭 한 번은 만나고 싶다. 그리고 꼭 한 번 안아보고 싶다. 제발..."

권재근·권혁규 부자를 기다려온 권오복씨는 이날 49재를 치르지 않았다. 권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나중에 목포에서 위령제를 할 생각"이라며 "다음을 기약하며 49재를 치르지 않았다. 유골을 못 찾은게 내내 아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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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월호 미수습자 49재... 청와대 100만원 후원
박영인 군의 생일이기도 한 49재 가족들은... 세월호 미수습자 박영인 군의 어머니 김선화 씨(왼쪽 두 번째)가 박 군의 49재가 열린 5일 오후 경기 시흥 대각사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 하는 동안, 박 군의 형 영준 씨(맨 오른쪽)가 허리 수술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 박정순 씨를 살뜰히 챙기고 있다. 이날 생일이기도 한 박 군을 위해 가족들은 생일 케이크(테이블 위 상자)를 준비했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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