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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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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서 있는 이곳부터 청와대까지는 집회를 할 수 없는 구역이 되었습니다. 교통 불편을 이유로 집회가 금지된 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고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시위가 가능한 건 우리와 같은 유령들 뿐입니다."

크로마키(색조 차이를 이용해 특정 피사체만 뽑아내는 촬영 기법) 촬영을 위해 바닥부터 천장까지 초록색으로 뒤덮인 70평(231제곱미터) 남짓한 공간. 100여 개의 형광등과 2m 높이의 대형 조명, 촬영 카메라가 모두 켜졌다. 그 앞에 선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사무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유령 집회'를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12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선 유령을 자처한 70여 명의 사람이 모여 평화 시위 보장을 위한 집회를 준비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이른바 '홀로그램(레이저 광 등의 빛으로 촬영, 물체를 3차원의 입체로 구현하는 기술) 집회'다.



'그림자 집회'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집회는 지난해 4월 스페인에서 세계 최초로 시도됐다. 공공 건물 인근 시위를 막는 법을 통과시킨 스페인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국제앰네스티(아래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기획한 이번 홀로그램 집회, 즉 유령집회도 같은 맥락이다. 공권력에 의해 차단된 길을 홀로그램으로 빚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메시지를 들고 행진하는 것이다.

12일, 13일 이틀간 촬영한 홀로그램 집회는 재편집을 거쳐 오는 24일 서울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가로 10미터, 세로 3미터의 스크린 위에 등장한다. 촬영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음성, 문자 등 각자의 메시지를 앰네스티 앞 카카오톡으로 보내면 된다. 카카오톡으로 취합된 메시지는 홀로그램 집회의 손팻말 문구 등의 이미지로 구현될 예정이다.

촬영 현장 가봤더니... 유령을 자처하며 몰려든 사람들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국제 인권운동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을 하루 앞둔 오는 24일 열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요구하는 홀로그램 집회 촬영현장이 공개됐다. ⓒ 유성호
ⓒ 유성호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 촬영에 참여한 이성호 만인만색 공동대표가 가지고 온 깃발에 녹색이 있어 촬영에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아쉬워하고 있다. ⓒ 유성호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 촬영에서 관계자가 참여자들의 동선을 알려주고 있다. ⓒ 유성호
"보라색 점퍼는 잘 안 나올 수도 있어요."
"집회할 땐 야외니까... 웃옷 입고하죠. 그게 더 현실감 있을 것 같은데."

쭈볏쭈볏 웃옷을 입고 다시 초록 바닥 위에 서는 다섯 사람. 첫 촬영에 나선 A조 첫번 째 팀이다. 두 사람의 손엔 '우리는 길에서 만나고 노래하고 걷고 싶다'라 적힌 플래카드가 들렸다. 빛이 투과되지 않는 암막 블라인드로 제작한 홀로그램 집회용 플래카드다.

이들은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 왼편 X표에서 오른편 X표로 열 걸음 행진하며 "평화시위 보장하라, 민주주의 보장하라, 공권력은 사과하라" 구호를 외쳤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드문 일반 참가자들이라 걸음이 엉키거나 구호를 버벅이기도 했지만, "여기가 거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감독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하자 차츰 호흡을 찾아갔다.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유령집회를 함께 작업한 양덕용 아트디렉터는 "크로마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인물들을 편집하고 CG(컴퓨터 그래픽)을 입혀 홀로그램 콘텐츠로 구현하는 과정"이라며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앰네스티에서 먼저 문의해 주셨다, 재밌는 작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구성의 미디어 그룹이라 참여하게 됐고, 좋은 의미로 진행하는 캠페인이기도 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장시간 촬영을 고려한 참여자들의 복장은 대부분 편한 차림이었다.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촬영에 나선 박채린(22)씨는 "나름 시위복장처럼 신경 썼다"면서 "(참가 신청 안내가) 뜨자마자 들어왔는데 금방 끝났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공권력이) 시위를 진압하는 것을 보면 너무 폭력적이다, 시위의 자유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참여하게됐다"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인터넷 선착순 접수로 참가자를 받았지만, 참가자가 갑자기 많이 모이면서 조기 마감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홀로그램 집회를 총괄 기획한 안세영 간사는 "특정 참가 그룹이 있는 게 아니다, 평소 집회 시위를 어려워했던 분이나 관심 있는 분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유령 집회) 취지였다"라면서 "연령대도 다양하고 가족 단위도 참여했다. 특별한 타깃층을 고려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가지 못하면 내 분신이라도"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 촬영 현장에서 참여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과 소녀상 이전 반대를 요구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 유성호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에서 참여자들이 평화 집회 보장을 요구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 유성호
'넘나 좋은 집회 시위'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이다'
'2년이 18년 같다. 아무 것도 하지마라'

5명, 또는 10명씩 나뉜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손팻말을 들었다. 즉석에서 쓴 글귀부터 집에서 미리 준비한 그림, 현수막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노랑, 주황 따뜻한 색채의 유화 그림 위에 '소녀상 철거? 감히 조건을 내건 사죄가 대체 무슨 사죄입니까'를 써넣은 작품을 들고 선 대학생 이지원(27)씨. 그는 위안부 피해자 한일 합의에 반대해 광화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이날 촬영을 위해 1시간을 대기한 그는 "헬조선, 헬조선 이야기하는데, 우리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말로 하는 것보단 직접 나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홀로그램 시위) 기회가 생겨 지원하게 됐다"고 전했다.

준비한 플래카드에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여 있어 크로마키 촬영 특성상 펼치지 못한 참가자도 있었다. 크로마키 촬영은 초록색 계열의 색이 화면에서 사라진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신진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만인만색의 공동대표 이성호(33)씨는 "함께 오기로한 분이 오지 못해 깃발이라도 펼치려 했는데 아쉽다"면서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내가 직접 (집회 장소에) 못 가도 내 그림자, 내 분신이 참여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왔다"고 말했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집회입니다. 그런데 경찰은 차벽과 물대포로 시민을 막고 있습니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로) 목숨이 위험해진 상태임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집회를 보장하십시오."

확성기를 들고 버벅거림 없이 멘트를 읽어내려가는 김샘(23)씨. 친구와 함께 신청했다가 선착순 제한으로 본인만 오게됐다는 그는 소녀상을 지키며 밤샘 노숙 농성을 이어온 평화나비네트워크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별보고관이 소녀상도 다녀갔다, 이후 쭉 집회의 자유를 생각해봤다"면서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인데, (한국 사회에선) 거부 당하는 부분이 많다, (이번 홀로그램 집회도) 그 항의 표시의 의미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유령집회 기획에 참여한 장덕현 앰네스티 이슈커뮤니케이션 간사는 지난 1월 마이나 키아이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적한 한국의 평화 집회와 결사의 자유 후퇴 상황을 언급하며 "집회 시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잘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일종의 항의하는 차원에서 집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반기문보다 낫다", "이 분이 UN 사무총장 해야").

한편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홀로그램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지만, 교통 방해를 이유로 금지 통고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경찰 측이 직접 앰네스티 측에 홀로그램 집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연락을 직접 받은 한 앰네스티 관계자는 "경찰 쪽에서 전화로 '집회인지 아닌지 고민했다'며 일단 허가하겠다는 통보를 했다"면서 "경찰이 스스로 신고제가 아닌 집회 허가제를 시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홀로그램 집회는 문화 행사로 등록돼 있고, 장소 자체가 서울시청 관할이기 때문에 경찰이 감독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 촬영 현장에서 참여자들이 종이에 손수 집회 시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문구를 적고 있다. ⓒ 유성호
ⓒ 유성호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집회 촬영에서 앰네스티 관계자가 참여자가 대사를 잘 볼 수 있도록 종이에 적고 있다. ⓒ 유성호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스튜디오에서 국제 인권운동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주최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을 하루 앞둔 오는 24일 열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요구하는 홀로그램 집회 촬영현장이 공개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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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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